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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 승용차에 부과된 과태로 납부전쟁 4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30일 양병호(30·회사원)씨는 지겨운 공 문을 또 받았다. ‘강제집행예정통지서’라는 제목의 공문은 마치 자신이 엄청난 죄인인 양 착각이 들 정도로 살벌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8월6일까 지 서울지방검찰청 집행과에 출두해 과태료 전액 3만원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수사기관의 끈질긴 추적수사는 물론 금융기관 거래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3만원. 대기업 사원인 양씨에게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양씨의 발 길은 서울지방검찰청이 아닌 우체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93년 11월18일 경남 창원 현장에 내려가 있던 양씨에게 집에서 전화가 왔 다. 구입한 지 이제 두달 남짓 지난 프라이드 승용차가 안 보이는데 혹시 차를 몰고 갔냐는 것이었다. 분실이었다. 경찰에 자동차도난 신고를 내고 하루이틀 시간은 흘렀지만 미처 자동차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 탓에 고스 란히 차를 날리고 꼬박꼬박 월부금을 낼 판이었다. 그러나 12월에 접어들 자 서울 마장동 견인차량보관소에서 날아온 한통의 우편물이 양씨의 근심 을 활짝 걷어내주었다.

양씨의 프라이드 승용차가 주차위반으로 견인돼 견인차량 보관소에 보관 중이라는 것이었다. 양씨는 전화를 걸어 도난된 경위를 설명했다. 경찰서 에서 도난신고접수증을 발급받아 오면 보관료를 안 내도 되나 견인비용은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 프라이드 승용차는 다시 양씨의 든든한 다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근 4년 동안 계속될 공문서 공방의 시작일 뿐이었다.

자동차를 찾아온 지 보름쯤 지났을까, 중구청 교통지도과에서 주차위반 과태료를 내라는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양씨 에게 구청직원은 아마도 견인차량보관소에서 서류가 도착하기 전에 과태 료납부통지서가 발송된 것 같으니 통지서를 폐기하라는 답변이 흘러나왔 다.

그러나 3∼4개월이 지나 잊을 만하면 과태료납부 통지서는 어김없이 다시 날아왔고 양씨는 이때마다 설명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지만 과태료납부 통지서는 계속 날아들었다. 안 되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견인차량보관소에 전화를 걸었다. 관련서류를 찾아달라는 부 탁에 당시 기록은 전산화가 되지 않아 어렵다는 담당자의 답변은, 양씨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기다려보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처음 승용차를 찾아올 때 콘솔 박스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영수증 한장이 근거가 되어 양씨 는 관련서류를 되찾을 수 있었다. 3일이나 걸렸다.

다시 중구청에 전화를 하고 다시 견인차량보관소 직원이 설명을 보태고 한 끝에 구청직원은 납득하는 눈치를 보였다. 95년 3월3일 중구청에서 또 한장의 공문이 날아들었다. ‘주차위반과태료 부과취소 통보’라는 제목 이 선명했다. ‘이번에야 끝났겠지….’ 그러나….

96년 7월1일 양씨의 가족은 기겁해야 했다. 당시 양씨는 경남 포항에서 근무중이었다. 이번에는 검찰에서 공문이 날아든 것이었다. 이번 ‘과태 료 납부(독촉)서’에는 담당 검사의 이름까지 찍혀 있었다. 경찰이 찾아 도 놀랄 텐데 검찰이라니 놀랐을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양씨는 공문서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담당 검사는 일단 과태료를 납부 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후에 구제를 받으라는 거였다.

양씨는 따를 수 없었다. 구청의 잘못을 왜 시민이 떠안아야 하는지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양씨는 벼르고 별러 휴가원을 냈다.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삯이면 이 지 루하고 분통터지는 공방에서 해방될 수도 있었다. 양씨는 대학시절을 생 각했다. 이만한 일에 눈을 감기 위해 그 어지러운 80년대를 버틴 것이 아 니지 않은가. 작은 것일수록 철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구청 민원실 문 을 열었다. 담당자에게 또한번 지루한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길이 없단다.

구청이 잘못한 것이니 구청이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분명히 남기고 포항 으로 돌아 내려왔다. 법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야 양씨는 검찰로부터 다시 공문을 받았고 내용증명 우편을 구청으로 보냈다.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각오 앞에 중구청은 어이 없는 공문 한통을 보내왔을 뿐이다. 그 공문에는 그동안 한번도 설명되지 않았던 부과가 취소된 건 말고 또 한차례의 주차위반 사실이 적혀있을 뿐 이었다. 물론 그 주차위반 날짜는 같은 날짜 같은 장소였다. 도난당해 버 려진 자동차에 두번의 주차위반 딱지 발급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건 은 도난을 이유로 과태료 부과가 취소되고, 다른 건은 취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가 발부된 사실을 양씨는 받아들일 수 없다.

사흘간의 창고작업에도 자신의 일처럼 서류를 찾아준 서울 마장동 견인차 량 보관소 김동헌씨.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지 모를 이 지루한 싸움은 김 동헌씨 같은 공무원을 늘려가게 될 것이고 자신과 같은 희생자를 줄여줄 것이라고 양씨는 믿고 있다.

윤승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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