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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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국 가요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신중현.)
이정엽/ 대중음악평론가
몇달 전 신중현 트리뷰트 공연이 열렸다. 그 자리에 모인 뮤지션들은 한 국 록의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뒤 열린 ‘자유’ 공연에서는 산울 림, 조용필, 시나위, 넥스트 등이 한국 록의 정통을 확인하였고, 후레자 식뻘인 언더그라운드 밴드들까지 한자리에 불러모아 대동단결을 과시했다 . 그렇다면 몇년 전부터 말만 앞선다고 핀잔을 받기도 했던 한국 록이란 게 실체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정통의 계보를 세우고자 하는 것은 이 제 한국의 록이 나름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증거일까. 어쨌든 한국 록의 시발점이 신중현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 다.
록의 뿌리찾기, 신중현을 세우다
신중현은 미8군 무대에서 다양한 미국의 대중음악을 섭렵했다. 1962년 그 를 주축으로 탄생한 ‘애드4’는 한국 최초의 록 밴드로 기록된다. 역시 미8군 출신인 김홍탁의 ‘키보이스’는 신중현을 정통으로 하는 뿌리찾기 와중에서 그 공헌이 가려지는 감이 없지 않다. 아무튼 신중현의 공헌은 미국의 가요인 록을 주체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일 듯하다. 그에 의해서 사 이키델릭 록, 블루스 록 등 60년대 록의 최신 사조는 그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한국적 색채를 얻었다. ‘신중현과 엽전들’의 1집에 수록된 <미인>은 하드 록의 기타 리프와 블루스의 음계(펜타토닉)를 한국식으로 해석해낸 명곡이다.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당시 록은 김민기로 대표되 는 포크와 함께 박정희 정권의 탄압대상이 되었다. 신중현은 대마초 연예 인이라는 멍에를 지고 지하 고문실로 끌려가야 했다. 이로써 자생적 록 문화의 싹이 짓밟히게 된 것이다. 이 빈공간을 메운 것은 그룹사운드라고 불린 캠퍼스 밴드였다. 이미 70년대 초부터 결성되기 시작했던 캠퍼스 록 밴드들은 포크와 함께 청년문화의 한축을 이루었다. 그중에서도 산울림, 작은 거인(김수철), 송골매 등이 두드러진다. 산울림은 유아적 감수성을 거친 기타와 몽환적인 오르간 위에 실었으며, 송골매는 인상적인 하드 록 기타 리프를 내세우며 텔레비전을 장악했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이들이 대학 출신이면서도 더이상 대학의 분위기를 대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학은 80년대로 접어들면서 포크로부터 이어지는 민중가요를 통해 엄혹 한 사회현실에 맞섰던 것이다.
청년문화 형성… 헤비 메탈의 지위 격상
조용필이 주류의 자리에서 록 넘버 몇곡을 발표하는 정도인 상황에서 새 로운 활력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왔다. 70년대 포크 청년문화의 흐름 중 하 나는 신촌 언더그라운드로 이어졌다. 조동진과 이정선을 대부로 한 동아 기획 사단은 방송 출연을 자제하는 프로페셔널 뮤지션 집단이었다. 들국 화는 바로 이 공동체에서 탄생했다. 포크, 블루스 등 80년대 언더그라운 드의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한 이들은 당시 젊은이들의 감성을 적절히 대 변한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같은 곡을 발표했다. 80년대 록을 이끌 던 또다른 축은 헤비 메탈이었다. 검은 옷과 긴 머리, 시끄럽고 복잡한 사운드, 고성의 보컬, 속주 기타 테크닉 등은 록이라고 하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이다. 메탈은 파고다극장 등에서 고등학생을 중심으 로 하위문화를 형성하기도 했고 시나위와 같은 밴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 그런데 이들은 마치 애비없는 자식과도 같은 뿌리없는 음악문화로 출발 해 이른바 정통 록의 지위를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는 한국적 상황의 아 이러니한 산물일 것이다.
(사진/80년대 한국 록은 정통 록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젊은이의 감성을 대변한 들국화.)
90년대 들어 메탈은 공동체로서는 활력을 잃었으나 지금까지도 많은 마니 아를 확보하고 한국 록의 적자(適者)로 자리잡고 있다. 한편 메탈 공동체 의 일원들은 가요계의 각 장르(특히 록 발라드)로 흩어졌다. 그런데 댄스 로 떠나간 과거의 일원이 록에 새로운 충격을 가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시나위의 멤버였던 서태지가 94년 강력한 메탈과 랩을 결합시킨 <교실 이데아>를 발표한 뒤 ‘록의 부활’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90년대의 록 음악은 주류 네트워크와 언더그라운 드, 대학가와 소극장 등 다양한 영역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한두가지 딱 지로 포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서태지에 이어 주 류질서의 전복에 나선 삐삐밴드(뒤에 삐삐롱스타킹)와 패닉, 민중가요의 감성을 록의 힘과 결합시켜 새로운 활력을 보여주는 안치환과 윤도현, 대 형 콘서트를 통해 거물로 자리잡은 넥스트, 80년대 메탈의 영향 아래에서 성장한 크래쉬와 노이즈가든 등은 90년대 록의 대표적인 얼굴들을 구성한 다. 흥미로운 것은 95년경부터 홍대 앞 클럽 무대를 중심으로 나타난 움 직임이다. 이들 클럽 공동체에서는 아마추어 이상의 성과를 내놓기도 하 고 있으며 인디 레이블 설립 등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일에도 분주하다.
주류음악과의 대결은 이제부터
90년대 한국 록은 록의 죽음이 당연시되는 영·미의 상황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록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선언으로 글을 맺으면 될까. 그러나 가요판 전체에서 조망해 본다면 록 신(scene)의 힘 은 주류 네트워크에 비해 미미하기 그지 없다. 현재 한국의 록음악은 60 ∼70년대 영·미처럼 대중음악 전체를 대표하는 음악도 아니고 청소년 문 화 전부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이런 기준을 들이대는 예측 자체 가 온당하지 않다. 다만 지금 한국 록은 다양한 흐름들이 서로 만나며 창 조적인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만 확인하도록 하자. 그것은 주류 대 중음악에 대항할 만한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작은 단 위에서 의미있는 다양한 노력들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인디 팝/록, 인디 레이블, 언더그라운드 클럽, 실험적 록 등은 모두 진행되고 있는 이런 노 력의 다른 이름들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