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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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하세계의 록밴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처음으로 앨범을 내는 프로다 칼로의 보컬 김현.)
“우리는 꿈을 꾼 것 같았다. 멋진 조명에 건물 5층 높이의 세트, 그 위 에는 스피커들과 가슴을 울리는 사운드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 고 있던 곳은 무대에서 저만큼 떨어진 곳에 마련된 3-4m 크기의 무대였다 . 메인 밴드들이 중간중간 세팅할 시간에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열심 히 공연했다. 대형 공연을 위한 ‘말뚝이’로 뽑힌 것만해도 영광이었으 니까….” 지난 6월5일 <자유2> 공연에 참가했던 크라잉 너츠의 기타리스 트 이상면(22)씨의 유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자유2> 공연을 보며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처음에는 언젠가 나 오겠지 했다. 공연이 끝나갈 무렵엔 모아서 한꺼번에 보여줄지 모른다는 기대도 가졌다. 결국 그들의 모습은 방송에서 단 1초도 보이지 않았다. 지하에서 땅밑을 달리는 록밴드의 ‘두더지’들은 화려한 조명 아래서 ‘ 선탠’을 즐기려 한다. 하지만 지상세계가 그들에게 허용하는 것은 무대 한구석에서의 풀 죽은 ‘선탠’일 뿐이다. 햇볕에 을 향한 바람은 그들이 ‘두더지’일 뿐이라는 사실만 확인해 줄 뿐이다.
땅위로 솟은 ‘두더지’들의 옹색한 선탠
그러나 일부 록밴드는 방송국과 거대 기획사의 울타리에서 명멸을 거듭하 는 댄스뮤직을 밀어내고 대중음악계의 주류를 탈취하려 한다. 대중음악의 패왕 노릇을 한 서태지가 있었고, 넥스트가 대중적인 한국 록의 기수로 불리고 있다. 또한 하드 록, 헤비 메탈로 80년대 하반기를 풍미했던 시나 위, 블랙신드롬, 무당 등이 건재하다. 강산에, 윤도현, 안치환 등도 록을 전면에 내걸고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주류에서 비주류로 옮겨오거나 몇번의 강렬한 ‘선탠’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들과 함께 지하공동체를 일구었던 크래쉬, 옐로 치킨, 멍키헤드, 노이즈 가든 등은 몇장의 앨범을 발표해 일정한 지명도를 확보한 상태다. 그리고 신촌 등지의 클럽엔 ‘지 하세계’를 지켜온 수많은 록밴드들이 있다.
언더그라운드의 진가를 원색 그대로 보여주는 록밴드의 일상은 고난의 연 속이다. 밴드 활동으로 상업적 성공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한국적 현실에 서 무리일는지 모른다. 최근 밴드의 활성화를 부르짖는 정상급 밴드와 로 커들은 ‘마음은 록이지만 몸은 발라드’였던 음악인들이다. 때문에 언더 그라운드의 록밴드들은 지금도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마저 떠안고 있다.
멕시코 혁명시인의 이름을 딴 4인조 밴드인 프로다 칼로. 블루스풍의 하 드록을 연주하는 팀으로 96년 6월에 결성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적 뿌리는 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컬을 맡고 있는 김현(32)씨 는 그때부터 음악생활을 시작해 롤링스톤즈, 프리버드 등 예닐곱 팀의 ‘ 헤쳐 모여’를 경험했다. 재정적인 후원자가 없는 그는 공백기에 전속 작사가, 선원 등으로 일하며 활동비를 모으기도 했다. 밴드활동을 하면서 도 일용잡부, 디제이로 일을 해 생활비와 연습실 사용료 등를 마련한다. 다른 맴버들도 기타강사와 일용잡부로 일하며 꿈을 일구고 있다.
최근 프로다 칼로는 언더그라운드 옴니버스 앨범 <프라이데이 애프터누운 4집>에 참여해 관록과 연주력을 인정받았다. 10여년의 음악생활에서 처음 이었다. 다른 록밴드와 함께 만든 ‘독립 음반’이지만 앨범을 통해 대중 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그는 요즘 또하나의 큰일을 벌이고 있다 . 대안의 작은 소리를 모아 대중음악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10여개 밴드를 모아 ‘아름다운밴드연합’을 결성한 것이다. “다양한 가치를 받 아들이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사회비판·저항 등의 이미지로 또하나의 획일화를 이루는 것에 반대한다. 이슈가 강조되기보다는 음악에 대한 진 지한 자세를 공유하는 가운데 창조적인 뮤지션으로 거듭날 기반을 마련해 야 한다.” ‘아름다운밴드연합’(02-745-3283)은 오는 9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출범공연과 인터넷방송국 등을 통해 새롭게 대중에게 다가 설 예정이다.
록밴드들은 대형 음반사의 눈에 띄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탈 꿈을 꾸기도 하지만 그것은 곧 음악적 시련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배드 테이스트의 리 더로 활동한 원종우(28)씨는 음악적 전환기를 마련하기 위해 최근 유학을 결심했다. “국내 록밴드를 음반사도 기피하고 마니아들도 외면하는 가운 데 음반을 내는 길은 직접 반드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음반 대행사가 나타 나 앨범을 냈다.그런데 음악적 회의와 갈등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시 류에 따르는 음악으로 방향을 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로커로서의 정체 성에 심한 회의를 한 끝에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당분간 접기로 한 것 이다.
오버 진입 원천 봉쇄…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록밴드들은 공동으로 운명을 개척한다. 뮤지션들은 음반판매와 공연수입 으로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수년 동안 강력한 사운드와 뛰어난 테크닉을 익혔어도 앨범으로 대중을 만날 기회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원 천적으로 막혀 있다. 설령 그 험로를 개척했다 해도 충분한 보상이 따르 는 것은 아니다. 스래시 메탈 밴드 크래쉬의 리더 안흥찬씨도 그런 경험 을 했다. “1집 앨범이 10만장 정도 팔렸다는데 밴드에게 온 돈은 한푼도 없었다. 공연수입으로 악기나 사고 차비나 하는 정도였다. 가난한 밴드가 대형 음반사를 먹여 살리는 구조는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그는 밴드생 활 초기에 일용잡부직을 전전했다. 심지어 지하철 철로변의 자갈을 교체 하는 일도 해봤다. 요즘도 안씨의 한달 용돈은 5만원을 넘지 않는다. 크 래쉬는 요즘 넥스트의 신해철이 설립한 록밴드 음반 전문 프로덕션 ‘사 이렌’에서 독집앨범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음반사와 대중에게 소외받는 록밴드는 생활고에 시달린다. 연습실이 없는 밴드는 서대문합주실을 유료로 이용한다. )
넥스트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확고한 대중적 기반을 갖고 있다. 앨 범 20만장 판매는 예사로운 일이고 공연장에는 수천명이 몰린다. 그런 신 해철씨가 록음반 제작자로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일찍이 무한궤 도에서 로커로 기량을 발휘하다 솔로로 전환해 명성을 얻었다. “고통스 러움을 참아가며 솔로 활동을 한 것은 궁여지책이었다. 당시에도 밴드를 결성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록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에 수긍할 수 없다. 다만 음악적 관심이 다양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게 나의 지조다.” 그는 신인 밴드 발굴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밴드 가 살아야 대중음악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다. 오버가 없으면 언더도 있을 수 없다. 언더와 오버의 경계를 허물고 순환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고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는 98년 상반기까지 록밴드 다섯팀의 앨범을 내놓을 계획이다.
록 전문 프로덕션이 등장해도 많은 록밴드에게 길이 열린 것은 아니다. 결국 언더그라운드의 록밴드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디 레이블’에 기댈 수밖에 없다. 신촌의 클럽 드럭과 재우스 등에서 독립 앨범을 제작했지만 유통의 어려움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라임라 이트(대표 김재선)가 제작과 유통을 아우르는 ‘인디 레이블’을 표방하 며 활동에 나섰다. 요즘 옴니버스 앨범을 만들고 있는 김재선(37)씨는 “ 인디 레이블이 활성화돼야 주류 음반시장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대형 음반사에서 앨범 한장에 잘해야 5,6백원의 인세를 받는 실정에서 1만장을 판다해도 음반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디로 만들어 팔면 적어도 한장 에 3천원은 기대할 수 있다. 인디 레이블이 붐을 일으킬 수 있도록 마니 아들이 국내 록밴드 음반을 가까이 해야 할 것”이라며 비주류 음악인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신촌에 있는 클럽은 수많은 록밴드의 거의 유일한 음악적 분출구다. 하지 만 안정적인 공연 무대로 자리잡기엔 여건이 너무나 열악하다. 식품위생 법과 공연법의 올가미에 씌여 감시의 눈길을 피해다녀야 하며, 안정적인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밴드에 대한 대우도 기대에 못 미칠 수밖에 없다 . 대부분의 록밴드는 노개런티이며 받는다 해도 기껏해야 교통비 2만∼3 만원 정도가 고작이다. 클럽 재머스에서 밴드공연을 맡고 있는 홍재현씨 는 “언제 경찰이 닥칠지 모르기에 항상 조마조마하다. 취미로 음악을 하 는 대학생 등의 뮤지션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실정이다. 적자를 면치 못해 도 록음악이 좋아서 하는 것이다”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이런 식 의 밴드 운영이 록음악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클럽 공 연을 자주하는 한 뮤지션은 클럽 공연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말한다. “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따르면 한 클럽을 공동으로 경영해 제대로 된 무대 를 마련해야 한다. 식음료에 밴드의 몫을 어느 정도 넣는다면 연습실 한 시간 이용료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연수익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클럽이 전업밴드의 장래에 희망을 주지 못하면 록음악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하세계의 록밴드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한국 사회에서 록음악에 대한 담론은 무성하지만 문화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거리 밴드의 앨범이 유명 팝가수의 앨범보다 비 싸게 팔리는 일본을 마냥 부러워 할 수는 없다. 외국 록음악의 계보를 줄 줄 꿰는 마니아들도 국내 언더그라운드 밴드 10팀 정도도 헤아리지 못한 다. 앨범 제작의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방송과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록밴드의 홍보수단은 공연포스터가 유일하다. 다만 최근 들어 월간 Fanzi n공이 마니아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밴드와 팬의 연결고리 노릇을 톡톡 히 하고 있다. 하지만 낮에는 일용잡부로, 밤에는 클럽으로, 틈나는 대로 유료 연습실을 찾는 뮤지션들의 일상을 음악에 집중할 길이 열리지 않는 다면 록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김수병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