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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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평양의 오익제씨. 오씨의 월북사실을 알지 못했던 안기부는 월북과정을 3일 만에 밝히는 발빠른 정보력을 보여줘 오히려 의혹을 사고 있다.)
“아버지는 이 고난의 현실을 박차고 벗어나고만 싶다. 그것이 죽음을 의 미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조금도 두려울 게 없다. 다만 그것이 작 은 파도에 그칠까 두려울 뿐이다.… 지금 고향에서는 홍수가 나고 가뭄이 겹쳐서 기아에 허덕인다는데 더 주저할 것 없이 굶어죽어도 같이하고 싶 을 뿐이다.”
단어 하나만 다른 편지 왜 옮겨썼나?
지난 8월15일 월북한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씨가 북한에 있는 딸 오천녀 씨에게 쓴 편지의 한 대목이다. 누가 봐도 그가 월북 또는 방북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현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오씨는 월북을 결행하기 오래 전인 이미 지난해부터 이같은 뜻을 공공연하게 표명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오씨가 월북 과정에서 베이징까지 동행했던 전금관광여행사 대표 김충자(57)씨에게 건 넨 ‘북녘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미 지난해 8월 국내의 한 잡지에 실렸던 것으로 확인됨으로써 드러났다.
이는 오씨가 오래 전에, 최소한 1년전부터 입북할 결심을 굳힌 채 국내외 의 여러 형편을 보아왔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씨의 월북동기를 밝히는 단서가 됨과 동시에, 만약 안기부가 그의 월북가능성을 사전에 파 악하지 못했다면 중대한 정보판단의 오류를 범한 것이라는 책임논란을 불 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오씨의 편지는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의 기관지인 <통일샘> 96년 9∼10월 호 명사수필모음란에 ‘고향에 두고 온 딸에게 보내는 나의 독백과 같은 편지’라는 제목으로 모두 3쪽에 걸쳐 실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샘> 편집부 강은규(30)씨는 오씨의 글이 실리게 된 경위와 관련해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들의 애절한 사연을 싣기로 하고 청탁을 했더니 (오씨가) 원고를 우편으로 보내왔다”며 “다만 편집과정에서 내 용이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 두어 문단을 삭제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 했다.
실제로 <통일샘>에 실린 오씨의 글은 김충자씨에게 건넨 글과는 조금 다 르게 “사람은 누구나 한번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데, 기왕에 죽으려면 명 예롭게 생을 마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연 어와 같은 미천한 생명의 회귀본능 탓일까. 여생이 길지 않은 지금 기왕 에 죽으려면 고향을 찾아보고 사랑하는 너의 어머니도 만나보고 고향땅에 묻히고 싶구나. 그리운 고향땅을 밟아보고 사랑하는 처자식을 만나만 보 면,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대목 등 2개의 문단이 빠져 있 다. 하지만 오씨가 이산가족의 방북을 막는 정부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면 서, “더 늦기 전에 북의 가족을 꼭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전체적 맥락은 똑같다.
그렇다면 오씨는 왜 이 편지를 월북 직전에 다시 옮겨썼으며, 또 그것을 김충자씨에게 건네준 것일까? 김씨는 “오씨가 참고삼아 읽어보라고 건네 준 것”이라고 밝혔을 뿐, 지금으로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 할 길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씨가 최초의 원고를 김충자씨에게 그대로, 또는 복사해 넘겨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충자씨에게 넘겨진 오씨 의 편지는 국내의 한 문구업체에서 생산된 공책용지에 쓰여 있는 데 반해 , 강은규씨는 “필체는 같아 보이지만, 당시 오씨가 넘겨준 원고는 2백자 원고지에 쓰여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김씨에게 건넨 편지에는 “1997 년 8월4일 LA에서”라고 분명히 적혀 있어 어떤 의도에서든 최근에 그가 편지를 다시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씨가 쓴 두개의 편지 사이에는 우연찮게도 단어 하나가 다르다 는 점이 특이하다. <통일샘>에 실린 글에는 “너에게 아버지의 마음이나 마 전하고 싶은 생각에서 이 글월을 보낸다”고 쓴 부분을 “너에게 아버 지의 마음을 미리 전하고 싶은 생각에서 이 글월을 띄워 보낸다”고 바꾼 것이다. 글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아 뒷글은 오씨가 북녘의 딸에게 최근 월북을 앞두고 편지를 실제로 보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기회있을 때 마다 “법 어기더라도…”
더욱이 오씨가 긴 글을 옮겨쓰면서도 절묘하게 단어 하나를 바꿀 만큼 치 밀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애초부터 오씨가 이 편지를 북의 딸에게 실제로 보내기 위해 썼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족회의 박기상(39) 사무차장은 이와 관련해 “오씨는 기회만 닿으면 법 을 어기고라도 북한의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공공연히 밝힌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오씨가 그런 원고를 <통일샘>에 넘겨 준 것도 어쩌면 공개적인 매체를 활용함으로써 그런 뜻을 (북한쪽에) 알 리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남한에서 대표적인 민간 통일운동단체인 민족회의의 기관지라면 북한에서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입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오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불법입북할 뜻 을 암암리에 밝힌 것으로 보인다.
오씨의 글이 이미 공표됐었다는 점은 그가 월북한 진정한 동기가 “가족 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늠케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가 비록 평양에 도착한 이후 북한에 대한 찬양 일색으로 나오고 있지만, 북에 남겨놓고 온 가족에 대한 절실한 애정이 배어나온 그의 글은 그가 자신의 본래 의도와는 관계없이 북한 정권에 의 해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을 가능성을 높게 한다.
문제는 그의 월북 가능성을 과연 안기부가 사전에 알지 못했을까 하는 점 이다. 오씨는 자신이 쓴 편지에서 “몰래 방북을 할지도 모를 요주의 인 물로 지목당해 출국정지까지 당한 일이 있다”고 밝혔다. 그런 오씨가 입 북의지를 공공연히 밝힌 글을 썼는데도 안기부가 오씨의 월북사실을 사전 에 탐지하지 못했다면 그동안 주의를 너무 소홀히 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 문이다. 안기부는 <통일샘>을 정기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 씨의 글을 분명히 체크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법무부는 오씨가 출국금지 대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아니라고 답변 하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출국금지 대상일 경우는 본인에게도 통 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기관 통보 대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대외비라 알려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관계기관 통보대상은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고, 단지 기관간의 협조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외부적으로도 공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기부가 오씨의 집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발부받은 영장청구서에 기재된 내용은 안기부가 그동안 오씨를 추적해오지 않았느냐는 강한 의문 을 불러일으킨다. 안기부는 우선 오씨의 출생부터 시작해 천도교 종교활 동은 물론, 89년부터 시도된 북쪽과의 접촉과정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 었다. 이런 내용은 오씨가 종교단체 대표였고, 북쪽과의 접촉은 대부분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긴 하다. 그러나 오씨 월북 이후 3일 만에 이 정도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고 보기는 어 렵다. 오씨가 그동안 진보적인 통일관을 여러 차례 피력해왔으므로, 최소 한 ‘요주의 인물’로 분류해 그동안의 행적을 주시해왔다고 보는 게 타 당할 것 같다.
‘북한간첩’ 단정은 무엇을 의미하나
게다가 안기부가 지난 8월4일 오씨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 15일 입북하기 까지의 과정을 파악하고 있는 부분은 오씨에 대한 주의 정도가 상당했음 을 보여준다. 이것이 안기부의 뛰어난 정보력을 방증하는 것이라면, 안기 부가 이미 지난해에 공표된 오씨의 편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 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안기부는 오씨 월북에 뒤어어, 오씨를 사실상 “북한의 간첩”으로 단정 짓는 표현을 영장청구서에 쓰면서 공안열풍을 다시 한번 몰아칠 태세다. 그러나 안기부가 오씨의 월북을 사실상 방치한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최 소한 그런 위험인물에 대한 주의를 그토록 소홀히 해온 데 대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