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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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을 발표하는 안기부.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야권은 오익제씨 사건이 일찍 터진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안기부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욱 그렇 다.
최근 정치권에 대한 안기부의 정보수집 활동이 눈에 띄게 강화하고 있다 는 조짐들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오익제씨 월북사건을 계 기로 안기부가 ‘대선 정치’에 본격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 되고 있다.
‘내곡동 기자’ 활동이 심상찮다.
그동안 안기부의 정보정치 망령에 시달려온 야권은 이미 ‘안기부 경계경 보령’을 발동했다. 특히 국민회의는 12월 대선이 다가오면서 안기부의 정보정치가 재현되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야권이 이처럼 대선을 4개월이나 앞둔 시점에서 안기부에 대한 조기 경계경보에 들어간 것은 최 근 오익제씨 월북사건 수사과정에서 정보정치의 ‘검은 발톱’이 드러났 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국회와 정당 주변에 대한 안기부의 정보 수집 활동이 강화된 사실과 함께 야권을 오싹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국회와 정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안기부는 국회와 정당을 출입하는 정보요 원들을 위해 미주빌딩 등 여의도에 2곳의 사무실을 갖고 있다고 한다. 대 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주 목적 이라는 것이다. 현재 국회와 정당을 출입하고 있는 안기부 정보요원들은 모두 10여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국회와 여당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정치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평소에도 공공연히 정보수집 활동을 내 세워 사실상 ‘정치사찰’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안기부 정보요원들은 수시로 의원회관과 국회본관을 출입하며 각 방을 드 나든다. 신한국당에는 마치 제집 드나들듯 한다고 당 관계자들은 전한다.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기간중에는 경선주자별로 안기부 담당자가 정해져 후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체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때도 안기부 요 원이 행사장에 나타난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홍구 고문이 동우빌딩에 서 경선 사퇴선언을 할 때나 이한동 고문이 국회 후생관 2층에서 경선 출 마식을 할 때도 예외없이 안기부 요원들이 나타났다. 안기부 요원들은 당 시 신한국당 대선후보들과 인사를 나누기까지 할 정도로 까놓고 정보를 수집한다. 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안기부 정보요원들이 신한국당 후보 들이 기자간담회를 하는 장소에 들어와 기자들과 같이 메모를 하기도 하 는 것을 봤다”며 “당에서는 이런 안기부 요원들을 ‘내곡동(안기부 본 부 위치) 기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내곡동 기자들은 각 당과 주요 정치인의 세세한 정치일정까지 챙긴다.
안기부의 정치정보 수집은 필연적으로 정치개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 정치권은 우려하고 있다.
“수사협조요청서냐 공갈 협박이냐”
안기부는 마침내 지난 정치권에 대해 ‘칼날’을 들이댔다. 안기부는 국 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이 오익제씨 월북사건과 관련해 발표한 ‘기획입북 설’의 제보자를 찾아낸다며 국민회의에 대한 수사착수를 공개리에 발표 한 것이다. 안기부의 수사착수가 알려지자 국민회의 내에서는 “안기부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용공음해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 난의 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선거때마다 안기부의 기획사건에 직면했던 국민회의로서는 당연한 반응일런지 모른다.
사실 오익제씨 월북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안기부의 석연치 않 은 태도는 정치적 오해의 빌미가 된다. 안기부 제1차장 출신인 신한국당 정형근 의원의 안기부 수사기밀 유출의혹에 대해서는 아예 즐기는 모습이 었다. 반면 안기부가 국민회의에 보낸 ‘수사협조 요청서’는 말이 ‘협 조 요청’이지 일종의 통첩성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더욱이 국민회의쪽 에 안기부의 수사협조 요청서가 전달되기 전인 지난 20일 저녁 김시복 안 기부장 특보는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일부 기자들을 상대로 ‘언론플레 이’를 했다. 김 특보는 일부 기자들과 만나 “국민회의쪽에 문서를 전달 했으니 아마도 대책회의를 열고 긴장하고 있을 것”이라며 국민회의에 대 한 수사착수 사실을 넌즈시 공개했다. 김 특보는 또 “김대중 총재는 오 씨와 전혀 통화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오씨가 지난 7월 중순 부터 김대중 총재 비서실 및 아태재단과 23차례를 통화한 것으로 밝혀졌 다”고 수사내용을 흘렸다. 김 특보의 이날 발언은 언론에 의해 ‘공안당 국은 오씨가 국민회의 총재 비서실 및 아태재단과 23차례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다’는 내용으로 대서특필됐다. 김 특보는 PK(부산·경남)출신으로 언론담당 특보를 맡고 있는 인물이다. 국민회의 김영환 의원은 “안기부 의 김시복 특보가 기자들에게 수사중인 사실을 흘린 것은 공안정국을 조 성해 야당을 음해하고 국가안보를 선거에 이용하려 한 ‘정치적 공작행위 ’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수사기밀 유포는 안기부법 9조 위반
안기부가 야당에 협조받을 일이 있다면 비공식·비공개로 해야 함에도 야 당 당사로 공개적으로 수사관을 보내고, 다른 한편에서는 안기부 고위간 부가 언론에 이를 흘리는 것은 안기부의 ‘신종 정치행위’이자 ‘색깔공 세’라고 국민회의쪽은 주장한다. 제1야당 대변인에 대한 안기부의 조사 는 단순한 의원 개인에 대한 조사가 아니라 김대중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 를 겨냥한 '안기부가 선거개입 발톱’이라는 것이다. 국민회의는 안기부 가 수사사실을 흘린 행위 등은 특정정당 또는 정치인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하는 의견을 유포하거나,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찬양 또는 비방하 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는 안기부법 제9조(정치관여의 금지)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안기부는 또 정 대변인이 ‘기획입북설’의 제보내용을 전달했음에도 25 일에는 정 대변인에 대해 안기부로의 출석을 요구하는 공문까지 발송했다 . 이 와중에 국회를 출입하는 안기부 요원들은 오익제씨 사건이 대선에 미치는 파장을 분석하기에 골몰하고 있다. 신한국당의 한 의원 보좌관은 “며칠 전 국회 출입 안기부 요원이 의원회관으로 찾아와 오익제씨 월북 사건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물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회의에 대해서는 이렇게 신속하게 수사의 칼날을 빼어든 안기부가 신 한국당 정 의원의 수사기밀유출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정 의원은 오씨 월북사건이 나자 자신이 안기부장이나 안기부 대변 인이라도 된 듯이 안기부의 수사진행상황을 떠벌이고 다녔다. 오씨 사건 과 관련해 언론에 보도된 공안당국의 ‘야당 정치인 내사설’ ‘김대중 총재의 오씨 월북 사전인지설’ 등은 모두 정씨의 작품이다. 야당이 정 의원에 대해 강도높게 문제 제기하자 안기부는 마지못해 최근 정 의원에 대해 ‘구두경고’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안기부의 정치개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 선 이후 한때 안기부의 정치개입이 줄어드는가 했으나 최근에는 부활의 조짐이 역력하다.
‘권력의 사병’이라는 오명 벗어야
안기부가 여전히 ‘권력의 사병’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은 김현철씨 사 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안기부 운영차장인 김기섭씨가 주요 안기부 정 보를 김씨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 씻기기도 전에 권영해 안기부장이 지난 5월 워커힐호텔 빌라에서 김현철씨와 김기섭씨 등과 회동했다. 지난해 4 월 총선 때에는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 출마하는 무소속 및 야당후보 진영 관계자들이 신한국당 홍재형 후보의 탈법선거운동 사례를 모아 공동기자 회견을 가지려 했으나 안기부 관계자가 이를 중지시키기까지 했다. 지난 95년도에는 지방자치제를 연기하려는 음모를 띤 공문을 보낸 사실이 폭로 돼 통일원 장관이던 김덕 전 안기부장과 당시 안기부 1차장인 정(현 신한 국당 의원)씨가 물러났다.
기회가 되면 고개를 드는 안기부의 ‘정보정치 망령’이 오는 12월 대선 을 앞두고 또다시 고개를 들고있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예전과 마찬가지 로 그저 숨죽이고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김성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