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의원님! 가셔야겠습니다"

92년 11월17일 오후 7시쯤 경부고속도로 동대구 톨게이트 앞. 대구로 들 어오던 차량을 일일이 확인하던 사복차림의 건장한 청년 10여명이 톨게이 트를 막 빠져나와 대구 시내쪽으로 접어든 쏘나타 승용차 한대를 가로막 고는 탑승자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 한동안 실랑이 끝에 중년 신사를 대 기해둔 다른 차에 태우고는 고속도로쪽으로 다시 향했다.

이들이 ‘모신’ 사람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처남인 김복동 민자당 의 원이었다. 김 의원은 민자당을 탈당하고 국민당에 입당하겠다는 기자회견 을 하기 위해 대구 지구당사로 내려가던 길이었으며, 김 의원을 도중 납 치한 괴청년들은 안기부 요원들이었다.

여권으로서는 대통령 인척이자 당시 거물급 의원이었던 김씨의 탈당이 김 영삼 후보의 당선에 가져올 악영향을 몹시 우려했다. 이에 따라 김씨에 대한 물밑 회유와 설득을 위해 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온갖 노력을 다 했으나 먹혀들지 않자, 급기야는 안기부를 행동대로 직접 동원했던 것이 다.

이처럼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여당의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서는 더 욱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최초의 자유경선이라던 당내 후보 경선에 출마 할 예비 후보를 안기부가 나서 조정했던 것이다. 당시 민자당의 다수

계파였던 민정계의 대부 박태준 최고위원이 노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 고 경선 출마 의사를 굽히지 않자, 서동권 안기부장이 박씨를 직접 만나 결국 포기하도록 협박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박 최고 위원 대신에 민정계의 변방에 있던 이종찬 의원이 김영삼 후보의 상대자 로 정해졌다. 또 대선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이뤄진 부산 초원복국집 사 건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선거대책을 점검한 이 모 임에 안기부 지부장이 참석한 것이다. 이규삼 당시 부산 지부장은 이 자 리에서 “언론계통에는 제가 제일 강하게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 는 밑에 있는 기자애들 때문에…”라고 말했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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