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한겨레21

‘타도 미제’를 말하지 않는다

‘김일성 탈상’ 이후 김정일 체제는 그간 진행되던 미국과의 관계개선 속도를 더한층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점진적 개혁노선을 택할 ‘김정일 플랜’과 미국의 동북아정책이 서로 높은 보완성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

김정일 체제가 이후 어떤 모습을 취할 것인지는 지금까지 간간이 비친 개 혁조처를 통해서도 쉽게 진단할 수 있다. 이미 국가권력장악에 성공한 김 정일 비서는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체제수호를 위한 주민불만 해소와 국 제관계 개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실제로 기업조직의 인센티브제 도입, 국경자유시장 탄생, 암시장의 묵인, 해외자본 유인정책 등 그간 시 행된 개혁조처는 중국과 미국이 권고하는 ‘개혁개방’에 신중히 접근하 고 있는 모습으로 읽힌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한 새로운 현상들 에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정보량 러시아 능가

사실 그동안 미국은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을 주도하면서 철저하게 차 단되었던 대북정보를 상당한 수준 파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민간단체·국제기구들의 북한 방문 및 현지활동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정 보와 실상을 알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고위 외교관은 최근 미국의 대북정보량이 러시아를 능가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미 핵회담 이래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미국이 수시로 북한과 관련한 정보협조 를 요청해왔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 우리보다 더 상세히 북한 상황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는 러시아가 미국에 북한정보 협조요 청을 해야할 판이라는 게 그의 평가이다. 축적된 대북정보를 바탕으로 분 명한 ‘두 개의 한국(조선)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미국은 최근의 대북 관계 속도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의 외교개선은 동북아에 대한 미국의 야심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이 다.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중국과 러시아 견제, 미-일 동맹 유지, 독자적 한반도 세력확대라는 3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때 북한과의 관계개선 은 한반도에 대한 세력확장뿐 아니라 중·러 견제에도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내부적으로 북한에 대해 연착륙-경착륙(하드랜딩)이란 대립 적 목소리를 내면서도 실제 초점은 연착륙에 맞추고 있다.

북한으로서도 김정일 체제의 조기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대적이다. 북한의 개혁 더 나아가 개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 국의 봉쇄’가 풀리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체제의 북한은 수교단계에까지 이른 대미관계를 좀더 전향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 이다. 이에 따라 외교계에서는 김정일 비서의 공식 권력승계 뒤 행할 최 우선 사업으로 북-미 연락사업소 개설을 꼽고 있다. 또 지난해 김일성 주 석 사망2주기를 맞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대남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한 북한 고위인사는 “미국은 우리가 군부를 설득할 수 있도록 명분과 신뢰 성이 있는 확신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한 권력 내부에 강온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개혁을 주창하는 온건파의 입지강화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김정일체제 확고 소모적 체제경쟁 그만둬야

미국뿐 아니라 동북아 4강들의 공통된 대북정책 특징은 북한체제에 대한 간섭을 삼가거나 자제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와 함께 김정일체제라는 실 재적 틀 속에서 대북관계를 유지하며 영향력을 증대해 가려 한다. 이런 주변환경은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김정일 정권의 경제개혁 구상과도 일치한다.

이같은 국제관계를 고려해볼 때 이미 체제경쟁이 끝난 북한을 상대로 정 치적 논리에 의해 소모적 경쟁을 하는 것은 한시바삐 조정돼야 할 것같다 .

뉴욕=이창주/모스크바대 경제학부 교수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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