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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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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일 비서는 김일성 주석 사망 3주기인 7월8일 이후 어떤 ‘통 치플랜’을 선보일까? 김 주석 사망 뒤 ‘유훈통치’라는 이름 아래 ‘김 일성 방식’대로 북한을 이끌어온 김 비서가 ‘3년 탈상’과 함께 어떤 계획을 제시할지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새로 선보일 ‘김정 일 플랜’이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 등 국제사회에도 큰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분적 개방과 개혁 가속화될 것
물론 이에 대한 예측은 아직 구구각색이다. 그러나 중국의 마오쩌둥이 19 58년부터 3년 동안 현재 북한의 상황과 비슷한 대기근 속에서 수백만~수 천만명(아직도 정확한 숫자를 모름)의 아사자를 내면서도 사회주의 혁명 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문화대혁명, 미국과의 관계개선 등으로 나라를 이끌어갔듯이, 북한 역시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이런 점진적 개혁 노선은 농업에서의 사적 재량권 확장, 공업에서는 경제 특구 정책 확대 등으로 대표되며, 군-당-정의 인사문제도 새 체제 형성의 핵심적 요소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김정일 시대’에 예상되는 가장 큰 변화는 농업정책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부터 농업생산량의 증대를 위해 협동농장 농민에게 일정 비율 이상 의 수확은 재량껏 처분할 수 있는 일종의 사유재산제도인 ‘분조도급제’ 를 부분적으로 실행해왔다. 이에 대해 북한의 한 경제관리는 “분조도급 제의 실시는 우리로서는 혁명에 가까운 조처였다. 그러나 예상 밖의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라고 밝혔다. 북한의 분조도급제는 중국이 농산물 생산 증가를 위해 1977년부터 시행한 ‘농가생산 청부제’와 같은 제도다 .
당시 재기에 성공한 덩샤오핑은 농민들이 진흙 오두막에서 가족 전체가 담요 한 장으로 버티다가 가난과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상황을 보고 “가 난이 공산주의는 아니다”라면서 집단농장체제인 인민공사제도를 무력화 했다. 덩의 개혁은 각 농가에 토지를 할당해주면서 수확량의 일정 부분은 국가에 팔고 나머지는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게 하는 ‘농가생산 청부제’ 였던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수확량 증대에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농민들의 삶이 윤택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해 북한도 이 제도를 시 험적으로 도입해 성공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 분조도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일부 협동농장에서는 해외에 가 족이 있는 농장원을 동원해 종자와 비료를 요청하는 편지를 띄우는 등 전 에 없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에 김정일 비서가 ‘새 플랜’으로 이 제도를 전면 채택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 나 북한에서 ‘분조도급제’가 전체 농가로 확산되어 성공을 거두기까지 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현재 비료가 절대 로 부족할 뿐 아니라, 미국의 카터재단에 농업기술개발자문을 요청할 정 도로 농업기술이 낙후돼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시대에 예상되는 또 하나의 변화는 경제정책 부문이다. 사실 농촌 경제제도의 변화는 북한 전체의 경제제도가 바뀌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자들은 개방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는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다.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음모”라는 것이 다. 따라서 북한경제정책은 개방이 아닌 개혁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 현재 북한에서는 이미 몇가지 개혁안이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각 개별 사업체의 단위별 경영과 이윤분배 그리고 자유 로운 상품개발과 판매수익금의 분배보장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 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어떻게 사회주의 이론에 맞 는 용어로 포장시키느냐가 과제라는 것이다.
경제는 풀고 정치는 묶는다
‘수정’이나 ‘후퇴’라는 단어를 단호히 거부하며 ‘주체사회주의 경제 발전’만을 외치던 북한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연결하는 새로운 ‘조정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활성화가 무 엇보다도 시급한 북한으로서는 결국 몇단계의 시험과정을 거치면서 경제 개혁을 실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는 묶고, 경제는 풀어놓는’ 정책 만이 북한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시대의 남북관계는 어떨까. 사실 북한의 농업정책이나 경제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제조건은 남한과의 관계개선이 다. 북한의 경제관리들은 “남한과의 경제협력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북 한의 경제가 회생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 정치일꾼’들은 “김영삼 정권에게선 기대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입장 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한 고위관리에 의하면 “김영삼 정권 때만큼 대화가 단절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박정희, 전두환, 노 태우 때도 비선은 가동됐는데 오직 김영삼 정권 때만 비선이 가동되지 않 아 물밑대화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의 사실여부는 확인 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남쪽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뒤에야 본격적인 남 북대화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만큼은 충분히 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은 남 한의 대선이 끝난 뒤인 내년 신년사를 통해 새로운 정권과의 남북대화와 경제협력 문제 그리고 통일방안 등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제의를 해올 것 으로 전망된다.
경제개혁 혁명2세대가 주도한다
김정일 시대에 예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변화는 당·정 고위간부의 개편 이다. 김정일 비서는 지난 3년간 당과 행정기관인 정무원의 고위간부에 대해 아무런 인사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이른바 ‘유훈통치’의 영향이다 . 강성산 총리가 집무불능 상태에 있어도 그를 경질했다는 공식발표는 없 었다. 따라서 김정일 비서는 승계를 전후로 총리와 노쇠한 부총리들을 경 질하고 경제전문가인 혁명 1.5세대와 2세대로 교체함으로써 좀더 역동적 인 경제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새 총리에는 김정일 비서를 오랫동안 보좌했던 연형묵 전 총리나 적극적 개방파인 김달현 전 총리가 유력하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 시대가 사회기강의 해이와 민심의 이반이라는 불안요소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심거리다. 계속되는 식량난으로 유민이 늘어나고, 농민과 공장노동자 사이에 빈부의 차가 커지고 대도시와 소도시 사이의 생활수준 과 식량배급의 격차가 점점 심하게 벌어질 경우 무조건적인 상명하달식의 통치체제에는 한계가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갈레스=이충렬/ 해외특별기고가·소설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