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한겨레21

애당초 ‘귀족 오락’으로 출발

골프가 언제 처음 시작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12세기 로마와 13세기 네덜란드에서 지금의 골프와 비슷한 운동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온 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Kolff’라는 운동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골프의 시작은 스코틀랜드 목동들 사이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목동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양치는 막대기로 작은 돌멩이 를 치고 논 데서 골프가 유래했다는 것이다. 목동들 사이에서 시작된 골 프는 귀족들에까지 번져 1457년 영국의 제임스 2세가 골프를 금지시켰다 는 기록이 있다. 제임스 2세는 귀족과 대신들이 너무 골프를 빠져 국사 처리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골프를 금지했다.

1754년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코스 6홀이 개장됐다. 정규코스는 아니지만 세계 최초의 골프장이었다. 이 코스는 지금 골프의 발상지로 여 겨지고 있으며, 현재의 골프 규칙이나 에티켓은 모두 여기서 만들어졌다. 골퍼라면 이곳에서 한번 플레이를 하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골프가 도입된 것은 1900년 영국인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도입연대로 보면 일본보다 오히려 앞선다. 선교사들은 처음 원산에 소규 모 골프장을 만들어 놓고 골프를 즐겼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골프채를 손 에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선교사들이 잇따라 서울과 부 산, 원산 등에 소규모 골프장을 만들었지만, 그들만이 즐기는 곳이었다. 골프장다운 코스는 일본인에 의해 1921년 6월1일 문을 연 9홀 규모의 효 창코스가 최초였다. 그후 1924년 청량리에 처음으로 18홀 규모의 코스가 만들어졌다. 이어 29년에는 일본인 주도로 조선골프연맹이 결성됐다.

한국인 최초의 골퍼는 박용균으로 꼽힌다. 기독교 신자이며 은행가였던 그는 외국인 선교사들과 교류하면서 골프에 심취했다. 박용균이 국내 첫 골퍼라면 해외에서 골프를 배운 첫 인사는 전 서울시장을 지낸 윤치영으 로 알려진다. 그는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하던 1920년 무렵 골프를 배웠다 고 한다. 한국 최초의 여자골퍼는 배귀자이다. 40년대 초에 활동한 그는 악극단 창시자로도 유명하다. 한국 최초의 프로 골퍼는 연덕춘이다. 그는 37년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외에서 8위를 차지했고, 41년에는 우승을 차지 해 일본골프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 골프는 27년 유릉 군자리코스가 생기면서 본격화한다. 지금의 어린 이대공원 자리에 있던 옛 서울컨트리다. 이곳에서는 망국의 한을 풀지 못 한 영친왕 이근이 땅과 당시 일화 2만엔을 내놓아 착공했고 기부금을 얻 어 29년 6월22일 개장했다. 영친왕은 이곳에서 골프를 치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이방자 여사의 회고록은 전한다.

개장 이후 서울컨트리는 여러 차례 수난을 겪는다.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제는 식량조달과 송유조달을 이유로 컨트리를 폐장했다. 이후 해방이 되었지만 다시 6·25를 만나 폐허가 됐다. 수복 뒤인 53년엔 골프 에 뜻있는 사람들이 서울컨트리를 재건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당시 재건 동의자는 이기붕, 백두진, 장기영 등 18명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현 한 국골프협회의 정관이 마련되고 집행부가 구성됐다. 당시 골퍼는 1백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이른바 장안의 멋쟁이들이었다. 골프를 칠 수 있는 여 건은 재력과 사회적 신분을 두루 갖춰야 했다. 규칙과 에티켓을 지키지 않고 신사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골프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만 큼 예의가 중시됐다. 서민은 감히 넘겨다볼 수 없는 귀족스포츠였고, 서 울컨트리는 금단의 구역이었다. 골프가 귀족스포츠라는 인식은 이때부터 깊게 뿌리내리게 됐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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