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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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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예 명창으로 국악계에서 주목받는 전인삼씨. 그는 판소리 대중화를 위한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통 속에서 온갖 것들이 나오는디….” 7월6일 KBS별관 공개홀 <국악 한마당> 녹화현장에서 전인삼(35)씨는 ‘흥부가’ 한 자락을 불러젖히는 데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소리가 여름철 우물 등물처럼 가슴팍에까지 와닿 는다. 흥부가 박타는 장면에서부터 놀부가 부자 흥부를 찾아오는 대목까 지였다. 그는 화자, 흥부, 흥부처, 놀부에 따라 약간씩 톤을 달리하며 소 리를 내지르는데 크고 작은 바위틈을 돌아 내리는 계곡물처럼 우르쾅쾅 울리다가 조근조근 속삭이기도 하는 등 쥐락펴락했다. 손에 든 부채를 ‘ 촤르륵’ 폈다 접었다 하고, ‘좋다, 얼씨구’ 추임새를 넣는 고수와 주 거니 받거니 화답하고. 넘실넘실 어깨춤은 보는 사람의 엉덩이를 들썩이 게 한다.
동편제의 적자 강도근 선생에게 사사
전인삼씨는 지난 6월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국악분야에서 그는 이미 신예 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 그는 송광록-송우룡-송만갑-김정문-강도근-전인삼으로 이어지는 동편제 적자라는 사실뿐 아니라 30대 중반의 ‘젊음’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앞으 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점이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이런 찬사에 대해 “아이고, 명창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명창, 난 아니여”라며 손을 내젓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원이 나를 키웠다 ”고 말하며 자신의 '대성'을 은근히 인정한다.
춘향이의 고향이자 동편제의 본고장인 남원에서 태어난 그의 집 주변에는 강도근 선생이 이끌던 국악원이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던 판 소리에 매료됐던 어린 전인삼은 한번 들은 소리는 그 자리에서 따라부를 정도로 타고난 소리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춘향제 가두행진에서 월 매 역으로 꽃차에 올라 박초월의 ‘이별가’를 부를 때는 할머니들이 졸 졸 따라다니며 “어디서 저런 기생을 사왔냐”고 할 정도였다.
그 길로 그는 강도근 선생을 찾아갔으나 스승은 한달을 가르친 뒤 “됐다 , 그만하면” 하고 말했다. 판소리 암흑기를 걸어온 스승은 “그 노력이 면 판검사는 물론 대통령도 될 수 있으니 판소리는 그만 두어라”는 것이 었다. 나중에 교장선생님까지 동원한 그의 열정에 굴복한 강도근 선생의 허락으로 제자가 된 그에겐 지난한 수련이 이어졌다. 추운 겨울 새벽 어 머니가 쥐어준 날계란을 쥐고 뒷산에 올랐고, 밤에 국악원이 문을 닫으면 다시 금암봉에 올라 자정까지 소리정진에 몰두했다. 그런데 갈수록 소리 가 안 나왔다. “급한 마음에 ‘목을 따서 확 긁어버릴까, 그냥 콱 죽어 버릴까’ 하고 생각했지라우. 인간이 덜 되야서 그런 것인디 ‘득음의 끝 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라우.”
서울 추계예술대학(국악과)에 다닐 때는 성창순 선생 집에서 사숙하며 귀 를 틔웠다. 군에 들어가서도 그는 제대할 때까지 누구나 기피하는 새벽 4 시 불침번을 3년 내내 맡아 5시까지 근무를 마친 뒤 기상시간인 6시까지 1시간 동안 지하벙커에 들어가 고함을 질러댔다.
“시대의 메시지 소리로 전달한다”
25세에 대전시립 연정국악원 단원을 시작으로 우석대에서 최연소로 강의 를 맡았고 전북도립국악원과 광주시립국극단에서 단원생활도 했다. 그러 다 91년 강도근 선생이 몸져 눕게 되면서 그는 자신을 키운 남원시립국악 단 단장으로 왔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스승은 그에게 “니는 6댄께(동편 제 6대) 남원 뜨지 말고 꼭 지켜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해 그는 1 0개월간 모든 걸 벗고 지리산 골짝 봉화산으로 입산수도에 들어가기도 했 다. “소리엔 그 사람의 삶과 노력, 분명한 헤게모니가 있어야 하는데 송 만갑, 이동백 선생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저는 귀가 콱 막혀버린다 말씨. 나는 숭만 내지 택도 없지라.” 이 때문이었다.
“소리는 시대가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책임이 있다”는 게 그의 생 각이다. 그래서 그는 올 가을 전봉준의 삶을 그린 장효문의 장편 서사시 에 작창(作唱)을 해 판소리로 풀어볼 계획이다. 앞으로 판소리 대중보급 과 함께 영어 판소리 작업도 연구할 계획이라는 그에겐 또 동편제 7대를 길러내야 하는 과업도 지워져 있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