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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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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블랙>은 기묘한 이야기다. 해적판 <X파일>? <X파일>이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일들이 <맨 인 블랙>에서는 한없이 우습고 유치한 장난 으로 귀결된다. 외계인이 지구에 들어와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다닌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하지만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맨 인 블랙’의 제 이(윌 스미스)에게는 그저 컴퓨터 게임 같다. 광선총으로 외계인을 무찌 르고, 외계인을 만난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는 따위의 재미있는 일.
하긴 <맨 인 블랙>의 원작은 로웰 커닝햄의 ‘어둡고 폭력적’인 만화. 제작자인 월터 파크스와 로리 맥도널드, 그리고 감독인 배리 소넨필드가 매력을 느낀 것은 이상하게 음울하면서도 희극적인 <맨 인 블랙>의 분위 기였다. “일상세계에서 아주 독특한 전쟁을 수행한다는 내용에 매력을 느꼈다”는 파크스의 말처럼 <맨 인 블랙>은 평범한 일상 뒤편에 자리잡 은 환상의 영역에서 생사를 건 전투를 보여준다. 전혀 위중한 상황처럼 느껴지진 않지만.
정부의 비밀조직 ‘맨 인 블랙’의 임무는 우리 이웃에 사는 외계인의 출 입과 범죄행위를 감시하는 일이다. 제이는 자신만만한 뉴욕경찰 출신. 어 느 날 외계인 범인을 쫓다 ‘맨 인 블랙’ 요원 케이(토미 리 존스)에게 발탁된다. ‘맨 인 블랙’은 세상의 모든 것과 인연을 끊고 살아가야만 한다. 영웅이지만 누구의 찬사도 받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 재하지 않는 영웅. 이는 배트맨이나 슈퍼맨과는 전혀 다른 고독한 존재다 .
하지만 배리 소넨필드는 지나치게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신나는 여흥거리 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에겐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다르게 철학 이 있다. <아담스 패밀리>에서 미국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풍자 했던 것처럼 <맨 인 블랙>에서는 지구가 중심이라고 믿는 우월감을 여지 없이 부숴버린다. 우주에 침입한 외계인 에드가는 지구에 망명한 외계인 의 신비한 구슬을 뺏고 그를 죽인다. 구슬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바로 은 하계.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은하계를 돌려받은 외계인이 하는 일이란 기껏해야 구슬치기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무엇이 누구 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고, 반대의 상황 역시 가능하다. “인간은 이 세상 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아무런 실마리도 갖고 있지 않다”는 소넨 필드의 말처럼 우주의 다양하고 심오한 진리 앞에서 우리는 좀더 겸손해 져야 하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뻔한 블록버스터 영화 속에도 때론 이렇게 깊은 진리가 숨어 있다는 게 기특하다.
김봉석 기자/ 한겨레 씨네21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