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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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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의 화신으로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정덕희 교수는
여성들의 행복에 관한 파랑새 심리를 적절히 활용했다.)
“참석해 줘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대들로 하여 나는 존재하거든요. 제 강의를 들으려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여세요∼용. 옷벗으라는 얘기는 안 해요. 제가 처음에 고졸 여직원에게 강의를 했는데, 아 글쎄 내 강의를 듣고 사람들이 난리 버거지를 친겨. 그래서 이랬지. 얘들아 울지 마∼앙. 내가 있다∼앙.”
개그가 아니다. 정덕희 교수(44·경인전문대)가 서울방송 <신바람 스튜디 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강의하는 모습이다. 가성에 사투리에 종횡무진으 로 넘나드는 말장난에 청중(시청자)들은 배꼽을 잡는다. 그는 청중들에게 ‘그대’ ‘나’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방송어법 은 그에게 맥을 못춘다. 참석자들은 이런 무례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 . 오히려 그의 무례는 강연을 재밌게 하는 양념일 뿐이다. 여기에 과장된 몸짓, 급격한 억양의 높낮이 변화가 청중들을 내내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다. “재미있다. 코미디언보다 더 웃긴다.” 정 교수에 대한 참석자 들의 즉흥적인 평가다.
시청자 사로잡는 이색적 표정·말투
(사진/웃음 명강사의 원조로 꼽히는 황수관 교수는 사회적 현상으로 떠오른 건강 열풍에 힘입어 명사의 반열에 올랐다.)
‘웃기는’ 강사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정 교수만이 아니다. 선구자격 인 연세대 의대 황수관 교수를 비롯해 전 고려대 철학과 교수 김용옥씨, 국악인 김준호씨, 연세대 교육학과 이성호 교수 등도 ‘웃음 명강사’의 반열에 올라 있다. 웃음의 강도와 방법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재미있는 강의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근엄한 표정과 딱딱한 어조로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강의하는 사람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 진 듯하다.
웃음 명강사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은 말할 것도 없이 각자 특유의 유머에 있다. 전문가들은 유머의 요소로 말투, 표정, 몸짓 따위를 든다. 김진배(39) 유머개발교육원장은 “정덕희 교수나 황수관 교수가 평범한 표준말로 강의했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다. 정 교수의 충청도와 북한사투리 흉내, 황 교수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 리가 인기의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 교수의 과장된 몸짓이나, 황 교수의 자유자재로 변하는 표정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라고 한 다.
그러나 단지 유머 요소만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회적 성취를 갈망하는 여성들의 심리, 건강에 대한 불안감, 자녀교육에 대한 무력감 따위의 절박한 문제를 풀어내는 강사들의 개인적인 능력이 탁월하 지 않았다면 그런 인기는 기대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여기에 스타를 발 굴·제조해 상품가치를 높임으로써 시청률을 높이려는 방송사의 상업적 이해관계가 뒷바침한다.
정 교수의 강의를 잠깐 더 들어보면 이렇다. “영양사 1천명 앞에서 강의 했는데, 내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침 탁탁 튀기면서 칭찬을 하더라구요. 그분들이 여기저기서 내 칭찬을 해서 여기까지 온 거유. 또 시청률 나쁘 면 그 자리에서 끝나유. 여러분이 리모컨을 눌러 줘서 그래유.”
그의 강의 주제는 ‘함께 살아 즐겁고 함께 살아 행복하다’였다. 그는 강의 내내 자신의 성공한 예를 통해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 거운지 보여주려고 애썼다. 참석자들은 그의 솔직한 자화자찬 앞에서 신 데렐라의 화신을 본다고 한다. 대부분이 가정주부인 청중들은 성공한 여 자의 경험담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정 교수가 특별히 내세 울 만한 학력도 없고, 한때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던 별볼일 없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는 사실은 그의 인기에 극적 요소를 더해준다. 강연 중간에 ‘녹색지대’의 <사랑할거야>라는 노래를 참석자들과 같이 부른다든가, 강연 마지막을 자신이 지은 시를 읽으며 장식하는 것은, 강의에 연예적 요소를 도입하는 탁월한 발상이다.
사회적 필요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
그에 대한 세간의 평은 무조건적인 예찬론과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혹평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평범했던 정씨가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우리도 희망을 가졌다”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가 예찬론의 한축을 이룬다. 반면 “코미디언 같은 동작과 목소리가 역겹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영 종잡을 수가 없다”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여성론을 펼친다” 따 위의 비판도 있다.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인기를 가늠하게 해준다.
정 교수의 인기가 중년 여성들의 행복에 대한 파랑새 심리에 기대어 있다 면, 황수관 교수의 인기는 건강이란 품목에 기댄 바 크다. 현직 의대 교 수라는 권위와 그의 유머있는 화술, 의학에 대한 대중적인 접근방식이 그 의 인기몰이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사실 그가 주창하는 건강법은 ‘웃으 며 살자, 밥을 잘 먹자, 몸에 맞는 운동을 하자’ 따위의 뻔한 상식에 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같은 말을 해도 쉽고 단순하게 표현하는 능력 을 갖고 있다. “하루 세끼를 꼭 먹되 아침은 일꾼처럼, 점심은 황제처럼 , 저녁은 거지처럼 먹어라”라는 식이다. 웃는 표정, 화난 표정, 멍청한 표정들을 자유자재로 표현하기도 한다.
황 교수는 최근 잇따라 등장한 ‘웃음 명강사’의 원조로 꼽힌다. 한때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가 평안도 사투리에 ‘이게 뭡니까’라는 말로 히 트를 치기도 했지만, 황 교수보다는 비교적 점잖았고 덜 웃겼다. 사실 전 문가로 하여금 시청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게 한다는 것은 방송사의 입 장에서는 일종의 모험이다. 전문가들은 기껏해야 토크쇼에서 사회자의 보 조를 받아야만 자신의 전문 영역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 만 그는 직접 강의 형태로도 경이적인 시청률을 올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 지난 2월25일 아침에 있었던 대통령 특별담화의 시청률은 27.4%이었던 반면에, 같은날 저녁에 있었던 황 교수의 신바람 건강법은 28.6%를 기록 했다.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며 가장 최근에 등장한 국악인 김준호( 37)씨는 앞의 두 강사와 선명히 대조되는 독특한 측면이 있다. 그는 교수 라는 직함을 갖고 있지도 않고, 전공분야도 고리타분한 것으로 인식된 국 악인이다. 바로 그가 그동안 미미한 시청률 때문에 방송에서 외면받았던 국악을 아침 주부시청자 시간대에 진입시킨 것이다. 그의 강연을 재밌게 하는 것은 독특한 표정이나 급격한 억양변화, 극적인 요소 따위라기보다 는 기발한 강의내용이다.
기발한 강의내용으로 국악 대중화 기여
(사진/방송가에서 소외받던 국악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킨 국악인 김준호씨는 재기 넘치는 비유을 다양하게 동원한다. )
그는 우리 민족의 가락이 삼박자 위주로 짜여 있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한 다. “딸도 셋째딸이 좋다고 하지요. 33인이 독립선언을 한 것도 3이라는 숫자가 길하기 때문이죠. 화장실 노크도 삼세번입니다. 외국에서는 화장 실 노크를 딱딱딱딱 네번 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싸움박질, 가령 가위바위보를 해도 삼세번은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이름에도 ‘ 삼’이 들어가죠. 우리 민족이 ‘3’이라는 숫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겠죠. 그래서 굿거리 장단과 같은 삼박자 음악이 탄생한 겁니다.” 과거 와 현재를 넘나들며 친숙한 것에 대한 기발하고 다양한 예시를 통해 참석 자들을 재밌게 만드는 것이다. 김씨는 “친숙하지만, 모르고 지내왔던 그 런 사례들을 짚어줌으로써 청중들이 발견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고 인기 비결을 설명한다.
‘흔들리는 부모, 방황하는 아이들’이란 주제로 웃음에 버무린 강의를 들려준 이성호 교수도 김준호씨와 거의 같은 지점에 위치한다. 그는 교육 이라는 실용적인 관심사에 대해 교육학자로서보다는 자신이 자식을 키우 면 느꼈던 일을 생동감있게 묘사해 인기를 모았다.
지난 5월말 서울방송의 <명의특강, 건강하십니까>에서 특유의 속어를 구 사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도 웃음 명강사에 속 한다. 그는 강연 첫회에서 한복을 입고 칠판에 ‘똥과 건강’이라고 크게 써놓고는 ‘똥구멍’ ‘똥색깔’ 따위의 적나라하고 직설적인 언어를 구 사해 나갔다. 부부생활에 대해 강의할 때는 ‘꼴리면 하고 안 꼴리면 안 한다’라는 말을 해, 방송언어로 적합하냐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비방송인 전문가들이 부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맞서고 있다. 지금까지 권위적인 집단에 속했던 전문가들이 일반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전문 분야에 대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방송사의 안이한 상업적 전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방송사들이 깊이있는 교양프로 제작에 힘을 기울이기보다는 몇몇 유명인의 반짝 인기 에 힘입어 시청률을 올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밑천이 떨어진 강사들이 자 신의 영역을 넘어선 내용을 강의하거나,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다 보니 벌 써부터 억지로 웃기려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또 일단 한번 뜨면 한 강사를 과도하게 상품화하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밑천 떨어지면 억지 웃음 강요한다”
하지만 당분간 ‘웃음 명강사’에 대한 수요가 하나의 추세로 정착돼 나 갈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다. 문화방송 <10시! 임성훈입니다 >의 최병륜 프로듀서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심사를 이야기하 는 사람은 많았다. 문제는 전달방법이었다. 사회 밑바닥에 흐르는 부드러 워지고 가벼워지는 풍조가 웃음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 다. 또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방송의 속성상 앞으로도 보 기 드문 목소리나 화술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갈 것같다”고 내다봤다. 웃음 명강사들의 주가가 당분간 상종가를 칠 것이 라는 얘기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