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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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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 대통령은 `경선 중립'을 말하지만 막후에서 이뤄진 일들은 이런 입장과는 완전 딴판이다. 7월5일 합동연설회 모습.)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이 일대 파란 속에 휩쓸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심’을 업은 민주계 모임인 정발협 지도부가 이수성 후보 지지를 표 명하면서 이회창 대세 뒤집기에 적극적으로 나섬에 따라 경선 판도가 크 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립을 표방했던 김 대통령 이 이회창 넘어뜨리기를 배후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경선구도 자체 가 뒤바뀌는 양상이다. 김 대통령의 등장은 자칫 이회창 후보와 김 대통 령간의 전면 대결로 비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한 여권 분열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는데…
물론 김 대통령은 아직 경선에 공개적으로 개입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표면적으로는 엄정 중립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월5일 김용태 대통 령 비서실장에게 “나는 어느 누구 편도 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김 실장은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김 실장은 이어 “김 대통령과 정발협 의 움직임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김 대통령은 공정 경선에 영향을 주 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동안 막후에서 이뤄진 일들은 이런 공식 입장과는 완전 딴판이 다. 김 대통령 문하생들로 구성된 정발협의 움직임을 조금만 살펴보면 이 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정발협은 7월 2일 “특정후보를 지지하지 않겠 다”는 공개선언을 했지만, 사흘 만인 5일 정발협 지도부 12명은 이수성 후보 지지를 결의했다. 이들은 이 후보 지지 서명을 한 뒤 최병렬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의 후보들을 묶어 1차투표에서 2등 후보를 밀어주자는 내부 합의각서까지 추진했다. 2차투표에서 이수성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뒤집는 전략을 다른 후보들을 상대로 치밀하게 진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심의 개입은 물증만 없을 뿐이지 거의 확실하다는 게 정가 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먼저 김 대통령은 4일 낮 정발협 간사장으로 이수 성 지지파인 서청원 의원을 청와대에서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서 의원은 정발협 주변에 나돈 얘기를 종합 하면 이수성 후보의 본선 승리 가능성을 강조한 뒤 “우리는 이수성 후보 를 지지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라고 김 대통령의 의중을 타진했다는 것 이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토대로 서 의원은 서석재 공동의장 등 정발협 간부들에게 “김심이 이수성에게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서 설득작업에 착수했다. 이로 인해 정발협의 활동중단 이후 이인제 후보쪽으로 상당히 기울던 민주계의 분위 기가 다시 이수성 후보쪽으로 급선회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청원 의원이 뒤집어썼다?
그러나 정발협 지도부의 이수성 후보 지지결의가 다른 후보들의 반발과 김심 개입 논란으로 비화되자, 서청원 의원은 7월7일 정발협 간사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서 의원은 사퇴의 변을 통해 “김심이 작용했다면 일부 민주계 인사들이 다른 캠프에 가서 활동하고 지지후보를 놓고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겠느냐”며 김심 개입 의혹에 대한 불끄기를 시도했다. 그는 이어 “당분간 어느 캠프에도 가지 않고 여의도에도 나타나지 않겠 다”고 말했다. 김심 배후설을 잠재우기 위한 극약처방을 취한 셈이다. 청와대쪽도 재차 ‘김심 중립’을 강조했다. 김용태 비서실장은 “분명한 것은 김 대통령이 누구를 지지하라고도, 지지하면 안 된다고도 말한 바 없다”고 말했으며, 김광일 특보는 “김 대통령은 지난 4일 서 의원에게 정발협 등 단체 명의의 특정후보 지지는 대통령의 의중으로 오해될 소지 가 있는 만큼 자제하라는 당부를 한 것으로 안다”면서 서 의원이 김심 왜곡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한마디로 모든 책임을 서청원 의원에게 뒤집 어씌워 몰매를 때린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먼저 민주계 의원 가운데 김심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서청원 의원을 김 대통령이 민감한 시기에 비밀리에 만난 것 자체가 김심의 개입 의사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 다. 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정말 중립을 지킬 의사라면 특정인사를 개별적으로 만날 게 아니라 중진 의원들을 몇명씩 공동으로 불러 공개적으로 당부의 말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바로 이 런 점 때문에 7월5일의 중립 선언은 전날 서 의원과의 비밀 회동을 은폐 하기 위한 알리바이 조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사실 김심 작용은 오래 전부터 감지됐다. 김 대통령이 지난 6월22일 유엔 과 멕시코 방문을 위해 출국한 직후 정발협이 느닷없이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이회창 후보를 대표직 사퇴를 놓고 정면으로 공격한 것 등은 김심의 표출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별로 없다. 정발협의 한 관계자는 “당 총재 의 뜻이 없다면 어떻게 총재가 지명한 대표를 후보도 아닌 우리가 먼저 흔들어 상처낼 수가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심은 이미 반이회창”
또 김광일 전 비서실장을 대통령 특보로 전격 임명한 것도 김심의 표출구 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평소 이수성 후보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진 김 특보는 임명 직후 박찬종 이한동 후보 등 주로 비주류 후보들을 접촉했다 . 김 특보가 얼마 전 이회창 후보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모 정보기관의 핵심간부를 불러 “그런 식으로 일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호통치는 등 친이회창쪽 인사 정리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김심과 관련이 있는 것 아 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런 점을 들어 김 대통령과 가까운 민주계의 한 초선의원은 “김심이 ‘ 반이회창’까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비이회창’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통령 주변의 움직임이나 언급이 누구를 도 우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선두 후보의 대세몰이에 제동을 걸려고 하는 것만은 분명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민주계의 한 재선 의원도 “ 최근의 여러 정치적 현상에 ‘이회창 지지는 아니다’라는 김심이 작용하 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심이 ‘비이회창’에서 ‘반이회창’으로 방향을 완전히 잡았는지에 대 해서는 민주계안에서도 아직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서청원 의원의 정발협 간사장 사퇴 등을 들어 반이회창까지는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내 놓고 있다. 어차피 방향을 잡았다면 다소의 비난과 이회창 후보와의 전면 적인 싸움을 각오하더라도 이수성 밀어주기를 화끈하게 펼치지 않겠느냐 는 것이다. 약간 후퇴하는 것으로 미뤄 김심은 아직 비이회창과 반이회창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미적대고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반이회창 움직임은 어차피 은밀하고 치밀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만큼 서 의원의 간사장 사퇴 등은 치고빠지기 수법이 아니겠 느냐는 지적이 우세하다. 실제로 92년 경선때 노태우 대통령은 반김영삼 후보 진영의 거센 반발에 따라 손주환 정무수석을 경질하는 제스춰를 쓰 기도 했다. 이회창 후보를 꼼짝 못하게 하려면 2차경선에서 표대결로 이 겨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경선 당일까지는 이 후보의 반발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김심은 이미 반이회창으로 정해졌지만, 별 일 아닌 듯 그렇지 않은 듯 위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회창 진영 ‘중대결단’ 으름장
이회창 후보쪽은 김 대통령의 발걸기 현상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가급 적 정면대응은 자제하는 모습이다. 아직 김심이 반대방향으로 완전히 돌 아섰다는 물증이 없는 마당에 정면 대결을 펼칠 경우 대세몰이에 제동이 걸리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세를 잡은 유리한 국 면에서 상대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한 먼저 싸움을 키워서 제로섬 게임을 하는 위험을 미리 안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이회창 후보 진영의 박성범 대변인은 “민주계 인사 12명의 의견이 정발 협 전체의 뜻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일단 사태 추이를 지켜본 뒤 대응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발협 지도부의 결정을 12인 민주 계 인사들의 개별적인 모임으로 평가절하는 셈이다. 이는 이들의 움직임 을 김심과 차단하려는 의도로 설령 김심이 반이회창이라 해도 대세몰이를 통해서 김심을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심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거나 김 대통령이 배후에 작용하는 것이 확연해질 경우에는 정면대응도 불사한다는 것이 내부 방침이다. 만일 뒤 집기 시도가 분명해지고 인위적인 판도 변화가 있을 경우 중대 결단도 마 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회창 후보의 한 측근은 “김심이 개입해서 인위적인 뒤집기를 시도한다면 우리는 굳이 맞서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 다”면서 “그런 식으로 하겠다면 자기들끼리 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 했다. 최악의 경우 경선 포기도 고려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대통령의 뒤집기 도박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우선 지금처 럼 김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주변 인사들을 내세우는 간접적인 방식으로는 힘의 결집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발협 안에서도 이수성 지 지파와 이인제 지지파가 갈리는 등 자신의 입장에 따라 김심에 대한 해석 이 달라 행동 통일을 기할 수도 없다. 또 이회창 후보를 꺾기 위해서는 나머지 5명의 후보들을 연대시켜야 하며, 최소한 민주계인 김덕룡 후보와 부산이 기반인 박찬종 후보를 동참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김심의 전면 등 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둘째는 정치적 명분이 약하다는 점이다. 선두주자를 뒤엎는 대항마를 김 대통령이 미는 이유가 지역주의 부활과 민주계의 기득권 유지로 비칠 가 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대구 출신인 유성환 의원조차 “이수성 후보 를 정발협이 선택하면 또다시 지역 대결을 하자는 것”이라고 비판할 정 도다. 대중 지지도나 대의원 지지도에서 이인제 후보에게 뒤지는 이수성 후보를 정발협이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본선에서의 승리라는 영남후보론 에 바탕하고 있는 한 이회창 후보에게 명분에서 뒤지는 것이다.
“김심 잘못 따라가다 바보 된다”
셋째는 김 대통령의 리더십 자체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 문이다. 엄정 중립을 선언한 관계로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리 더십은 민주계 안에서조차 힘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을 잘 아 는 민주계의 한 의원은 “김심을 믿고 따라가다가 김 대통령이 하루 아침 에 돌아서면 따라간 사람만 바보되는 것 아니냐”며 “상황에 따라 변신 을 잘 하고 방향을 잘 바꾸는 김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아는 선수로서 대통령이 직접 ‘나를 따르라’고 외친다 해도 그대로 따라가기 힘들 것 ”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김심이 어느 한쪽으로 결정됐다 고 보는 것 자체가 아직 이르다”며 “오늘은 이쪽으로 갔다가 내일은 저 쪽으로 가는 등 시시각각 변하는 게 김 대통령 속마음의 현주소일 것”이 라고 해석했다.
김종철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