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한겨레21

록뮤지컬 <모스키토>에 관심 집중

대선국면에 접어들었다. 국민회의, 자민련은 이미 김대중, 김종필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고, 신한국당 후보경선도 이제 막바지다. 후보의 후 보도 토론회에 내세우는 나라이니, 여당 후보가 결정되는 7월21일 이후에 는 곧바로 ‘누가누가 대통령 되나’ 열기에 모두 빠져들 판이다. 그런데 또 한쪽에선 연일 ‘일진회’가 신문지면을 장식한다. ‘일진회, 일진회 ’ 욕들도 많이 하지만 대통령 되려는 이유가 만일 세력확장과 이권다툼 에만 그친다면 약한 학생들의 돈을 빼앗는 아이들과 ‘1진’이 되겠다고 머리를 들이박는 영감님네들과 무엇이 다를지.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들춰낸다

우리나라 정치세태를 청소년의 시각에서 풍자한 록뮤지컬 <모스키토>(번 안 이상범, 연출 박광정, 예술감독 김민기)가 대학로에서 바람을 일으킨 지도 꽤 됐다. 지난 5월5일 막을 올려 오는 8월3일까지 계속되는 극단 학 전의 이 록뮤지컬은 두달 남짓한 지금까지 9천여명의 관객이 들었다. 객 석 1백80석의 소극장 무대임을 감안하면 연일 만원이었던 셈이다.

지난 7월3일 목요일 <모스키토> 무대를 찾은 날, 연극무대의 주관객인 대 학생들의 방학과 중고생들의 기말시험이 맞물려 예상보단 관객이 적었다. “삐삐는 진동으로…” 등의 안내멘트 뒤 “이 연극은 2시간40분”이라는 말에 객석은 “와”하고 환호가 터진다. 일단 최소한 본전(입장료 1만5천 원, 학생 1만2천원)은 뽑겠다는 생각 때문 아니었을까? 불꺼진 무대는 처 음 블루톤의 조명에 우울한 색소폰 소리로 시작된다. 우리 정치와 청소년 들이 처한 현실이 그렇게 음울한 건가?

무대가 환해지면서 힙합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청소년(?)들이 몰려나와 랩 송을 부른다. “사고, 시험, 스모그, 스트레스”라는 반복적인 외침, “ 한강다리 덜렁덜렁, 도시가스 펑!/ 아황산가스! 오존경보!/ 입시제도 또 바뀌지/ 맘대로 하라 그래 구워먹든 삶아먹든” “과외비가 너무 비싸 조 기유학간대, 북한 애들 굶어 죽고 수입코너 매진/ 코 위에 여드름 턱쪽에 새로 두개/ 탤런튼 안 되겠어, 가수로 바꿔봐?” “암으로 간 동기놈이 벌써 두놈/ 공장하는 후배놈도 부도가 났대지?/ 청문회 백날 해봐라/ 참! 5조면 공이 대체 몇개야?” 등 오프닝 무대부터 ‘모스키토’라는 이름처 럼 우리 사회 이 구석 저 구석을 콕콕 찔러댄다. 극단 학전의 전작 <지 하철 1호선>의 원작자인 독일 그립스 극단의 를 번안한 <모스키토>의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정치권에 대 한 혐오와 불신감으로 다가올 총선 투표율이 저조한 것으로 예상되자 집 권당인 통일한국당은 대책에 고심하다 5백만이 넘는 청소년들에게 선거권 을 부여해 한바탕 세몰이를 하겠다는 발상을 해낸다. 이에 각 정당들은 청소년들의 표를 얻으려 혈안이 된다. 그런데 개성 강한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새서울 고등학교에도 선거바람은 불어온다. 결국 스스로 자신들의 정당을 결성, 선거에 참여키로 한 이들은 기성정치 비판의 의미를 지닌 ‘모스키토’를 당명으로 정하고 통한당의 음모와 방해 속에도 활발한 활 동을 벌이지만 선거가 진행될수록 이들도 점점 기성정치인들을 닮아간다. 이들은 이런 자신들의 모습에 좌절감을 느끼나 그 속에서 다시 희망의 의 미를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총선 개표결과가 발표되는데.


청소년들, 기성정치 비판하며 정치참여

얼마 전 막을 내린 <지하철 1호선>처럼 매공연 무대 옆쪽에 간이의자를 설치해야될 정도까진 아니지만 주말에는 극장이 미어터진다. 그리고 관객 들의 상당수가 중고생들이다. 일선 중고등학교의 단체관람 요청도 끊이지 않는다. 원래 자기표현에 솔직한 이들이어서인지 중고생들로 가득 찬 토 요일 낮 공연 때는 마치 방송사 가요프로그램을 연상시킬 정도로 웃음과 비명(?) 소리가 자지러진다.

“이리 깨지고 차이고/ 질질 끌려 교실로/ 입만 뻥긋했다간 아구창이 작 살/ 반성문에 근신, 부모님께 연락하고/ 이게 나의 인생, 이게 너의 인생 / 우린 개 돼지가 아냐/ 기계부속품도 아냐/ 우린 살고 싶어, 사람답게만 ” “자율학습 방송수업 방과후엔 또 자율학습/ 독서실 미니버스가 우릴 잡으러 왔네/ 월말, 중간, 기말고사, 모의고사, 쪽지시험/ 만기출소 기다 리는 우린 장기수” “우리 어머닌 파출부/ 아버진 도시 미화원/ 동생도 있어/난 대학 같은 건 생각없어/ 당장 돈 벌어서 식구들을 도와야 하거든 / 그런데 대학 못 나오면 앞날이 뻔하대/ 장가는 꿈도 꾸지 말래는군” 등 청소년들의 고단한 삶이 노래로 나온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이 연극에 빠져드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는 점 외에도 13명의 배우들이 44명의 등장인물을 맡아가며 무대를 장악 하고, 5인조 록밴드 ‘노코멘트’의 라이브가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등 연극으로서의 재미가 그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일단 쉴새없이 웃 겨댄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엔 우리 정치의 일그러진 모습이 빼곡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목소리만 크다고 되는 것은 아냐/ 줄을 잘서서 제대로 바쳐야지/ 점쟁일 찾는 우리의 이 심정을 국민은 모를거야, 유권자는 몰라” “은혜 를 잊진 말아야지/ 돈대준 기업엔 특혜를 줘야 하지/ 갱제를 돌아가게 하 는 일이 바로/ 금배지 의원님의 본연의 임무” “난 몰라, 기억도 안 나/ 우리야 알면서도 뚝 잡아떼는 거지만/ 진짜 치매환자가 이천만명이 넘어 요/ 치매환자는 바로 너희 같은 유권자들야” “통탄 시러버서, 나라꼴 보세요? 국회는 깡패소굴입니다. 국회간판을 여의도 구치소로 바꿔야 합 니다. 아니면 여의도 정신병원으로 바꾸든지”

이런 노래와 대사 외에도 <모스키토>에는 공약남발에서 탈취, 문서변조, 폭로, 테러, 불순세력으로 몰아대기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러한 것들 이 과거 우리 사회의 논픽션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 연 극은 청소년들이 아닌 정치인, 대권주자들이 봐야할 연극이다. 연극이 끝 난 뒤 옆자리의 관객에게 물어보았다. “어떠했냐”고. 그(유창수·21· 고려대 정외3)는 “조금 유치하다”고 했다. 뒤에 한마디는 붙였다. “재 미있긴 하지만”


구태 여전해도 희망은 자라고 있다

<모스키토>는 많은 아쉬움을 갖고 있다. 좀더 마조히스트가 되고 싶은 이 들에게 <모스키토>는 언저리만 쿡쿡 건드릴 뿐이다. 모스키토의 침이 그 리 날카롭지 않아 물려도 별로 아프지 않다. 조금 가렵기만 할 뿐. 우리 정치현실과 청소년들의 삶은 둘다 연극보다 더 극적이기 때문이다. <모스 키토>에서 악역(?)을 맡은 최대권은 선거에 패하자 모든 걸 털어버리고 아내와 함께 설악산으로 가 지나온 인생을 되새기며 가곡을 부른다. 그 품에 안긴 아내는 더없이 행복해하고. 그러나 우리 정치인 중엔 그렇게 순진한 사람도 없고 그렇게 철없는 부인도 없다. 우리 사회가 <모스키토> 에 나오는 부패한 정치인만큼만 됐어도 우리 사회가 <모스키토>만큼은 됐 을 텐데.

평일 오후 7시30분. 토·일·휴일 4·7시30분. (문의: 02-763-8233)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