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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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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여점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본만화 번역물. 잔인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 만화 주인공이 멋지게 보였어요. 남자답고 화끈하잖아요.”
중학교 중퇴생인 김아무개(15)군은 중학생 폭력서클 ‘미들스쿨(MS)’파 를 결성한 뒤 학생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상습적으로 금품을 빼앗오다 지 난 7월4일 경찰에 구속됐다. 김군은 “일본만화 <파워클럽>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살고 싶어 폭력서클을 조직했다”고 털어놨다.
청소년들이 일본 만화 주인공의 행태를 그대로 모방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등, 일본 만화가 학원폭력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일 본 만화의 수법을 모방해 폭력조직을 결성하는가 하면 행동강령까지 만들 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등 우리 청소년에 파고든 일본만화의 폐 해는 이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하철 교사폭력 장면도 그대로 노출
지난 92년부터 중·고생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캠퍼스 블루스> 는 학교 폭력서클의 대명사가 된 ‘일진회’의 교범으로 꼽힌다. 학교별 로 싸움을 가장 잘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일진’들의 싸움을 주제로 한 이 만화는 한 권투선수가 조직을 만들어 폭력을 일삼는 축구부원 등의 머 리를 깨진병으로 찌르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축출한다는 내용이다. 일진 들은 조직의 서열을 정하기 위해 주먹다툼을 벌여 대장을 정하고 두목끼 리 결투해 승자가 상대조직을 접수하는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만화 내용은 그대로 우리 청소년들의 폭력 행태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 ㄱ중 일진회 ‘짱’인 노모군(14·중3년)은 동네 야산에서 인근 ㅇ 중학교의 일진회 짱과 ‘지는 쪽이 부하를 바친다’는 조건으로 싸움을 벌였다. 싸움에서 진 노군은 같은 학교 일진회 후배들이 짱 대접을 해주 지 않자 후배 3명을 마구 때려 전치 2∼3주의 상처를 입혔다. 또다른 일 본만화 <용(龍)>은 학교 폭력배들이 폭력조직의 의식과 행태를 배우는 교 과서가 되고 있다. 이 만화에서 무도전문학교 폭력서클 회원들은 선배에 게는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고 심지어 목욕탕에서 선배를 만나면 무 릎을 꿇어 인사한다. 반면 후배들에게는 각목으로 줄줄이 기합을 줘 기강 을 잡는다.
<할렐루야 보이>의 경우 지상에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이 고교에 다니면서 담뱃불로 살을 태우는 등 방법으로 폭력학생을 혼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 다. <남자의 바다> 주인공은 폭력행위를 훈계하는 담임교사에게 권총을 겨누는가 하면 담임교사와 애인을 일진회원 30여명과 함께 지하철 안에서 무참하게 폭행한다. <좋은 친구들>에서는 폭력서클간 싸움에서 잭나이프, 맥주병, 야구방망이 등의 흉기가 난무한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일본 만화 가운데 이처럼 흉기를 들고 편싸움을 벌이는 등 학원폭력을 묘사한 만화는 <요새고교> <캠퍼스 파이터> <파워클럽> 등 줄잡아 50여종에 이른 다.
이런 일본 폭력만화는 국내에서 해적판으로 대량 번역·출판된 뒤 만화방 이나 책대여점, 학교 앞 문구점 등을 통해 학생들 손에 들어가고 있다. 서울대 교육연구소 조용환 교수팀이 최근 밝힌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생들은 주당 평균 2.8시간이나 일본만화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 5학년생의 43.7%, 중학생 49.3%, 인문고생 35.2%, 실업고생 49.8%가 일주일에 1∼2시간씩 일본 만화책을 보고 있으며, 일주일에 6시간 이상 만화책을 보는 학생도 전체의 10%를 웃돌았다. 서울YMCA가 지난 1월 발표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서대여점의 평균 보유도서수는 8천권 정도 인데 그중 만화가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 대다수가 일본 번역만화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여점 만화 대부분 해적판, 인터넷 만화도 인기
한 중학생은 “만화방에서 4백원씩 주고 빌려서 친구들과 돌려본다. 한반 의 절반은 거의 매일 일본 만화를 읽는다”면서 “아이들이 만화에 나오 는 폭력장면을 재미삼아 해보거나 친구를 때리면서 ‘빠샤’하는 소리까 지 흉내내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특히 최근에는 청소년들 사이에 인터넷을 통한 일본 만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만화의 일본식 발음인 망가(manga)나 애니메이션의 아니메(anime) 등의 키워드를 치면 일본 만화와 관련한 수많은 사이트가 뜬다. 이 가운 데 가장 인기가 많은 <신세기 에반겔리온>에는 잘린 목이 피흘리며 날아 다니는 장면이 나오며, <나디아> <건버스터> 등도 일본 만화 특유의 폭력 성과 선정성으로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화와 일제 전자오락 게임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오락 매체 뿐만 아니라 영화와 비디오, 텔레비전 드라마 심지어는 코미디 프로 에도 일상적으로 폭력장면이 등장하고 있다”면서 “이런 전반적인 폭력 문화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잘못된 인식을 은연중 청소년들에 게 심어주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창은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