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한겨레21

김 대통령 해외순방 또 물의

(사진/클린턴을 만난 김 대통령. 5시간 이상 기다리는 수모를 참아야 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또 다시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유엔환경특별총회 참석과 멕시코 방문과정에서 굴욕적인 외교행태를 보여주는가 하면 청와대 공보비서가 순방중 무단귀국하는 초유의 해프닝 도 발생했다.

김 대통령은 경제도 어렵고 국내 정치상황이 매우 유동적인 국면에서 해 외순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일부 참모들의 반대의견에도 지난 6월22일 8 박9일간의 일정으로 미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환경특별총회에 참석하고 멕 시코를 국빈방문하기 위해 출국했다.


일부 참모들 반대에도 해외순방 나서

일이 안 되다 보니 예상치도 못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애초 6월26일 오전 11시40분(현지시각)부터 갖기로 했던 클린 턴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클린턴 대통령이 외증조부 장례식 때문에 뉴욕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저녁 8시로 늦춰진 것이다. 뉴욕에서의 출 발시간이 5시간 이상 연기돼 다음 방문국인 멕시코에 27일 새벽 1시가 넘 어서야 도착하는 중대한 외교적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애초부터 무리한 한-미 정상회담 추진이 결국은 외교적 망신을 초래한 셈 이다. 정상회담에 소극적인 미국에 굴욕적인 수모를 당해가며 정상회담을 ‘애걸’해 김 대통령 출국 1주전에야 가까스로 약속을 얻어냈다. 한-미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외무부와 주미 한국대사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등 외교부서는 한달 이상 매달려야 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당은 일제히 “한-미 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의전과 격식에서 홀대받 고 국빈방문하는 멕시코에 새벽에 도착하는 결례를 범했다”며 ‘굴욕외 교’와 ‘사대외교’를 비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뉴욕에서는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언론의 보도태도에 불만을 품고 중도에 멋대로 귀국하는 외교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외교가에서는 “도대체 대통령 해외순방의 공식수행원이 중도에 무단귀국 한다는 일이 상상이나 할 수 있느냐”며 “후진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추 태의 극치”라고 혀를 찼다.

무단귀국의 추태를 자행한 인물은 청와대 출입기자실인 ‘춘추관’장인 박영환 공보비서관(1급). 지난 87년부터 김영삼 대통령의 상도동에 들어 간 뒤 김 정권 출범 뒤 4년여 동안 보도지원 업무를 담당하면서 1급까지 고속 승진한 ‘YS(김영삼)가신출신’이다.

김 대통령의 미국방문을 수행했던 청와대 일부 출입기자들이 6월26일 한- 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특별한 현안도 없는 데 무리하게 클린턴 대통령 과 만나려고 저자세를 보일 이유가 있느냐”는 기사를 쓰자 박씨가 발끈 했다. 술을 마시고 기자실에 들어온 박씨는 “기자들과 상종을 못하겠다. 근거도 없이 기사를 쓴 데 대해 귀국해 언론사를 제소하겠다”며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박씨는 “사표를 쓰겠다”며 고함도 질렀다. 이를 본 윤여준 청와대 공보수석 등이 말렸으나 박씨는 막무가내였다. 박씨는 의 전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여권을 가지고 오도록 한 뒤 다음날인 6월27일 미 뉴욕에서 일반비행기편으로 멋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박씨는 이에 앞서 해외순방 직전에도 청와대를 출입하는 지방지 기자에게 행패를 부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출입 지방지인 아무개 기자가 박씨에게 “미국에 특파원이 있어 수행취재를 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하 자 박씨는 “왜 항상 티를 내느냐”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해 한 바탕 소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박영환씨 94년 해외순방에서도 추태

박씨는 이번뿐 아니라 이미 지난 94년 대통령 해외순방 때에도 추태를 부 린 ‘전과’가 있는 인물. 박씨는 지난 94년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수행 때 투숙호텔에서 최고급 양주인 ‘발렌타인 30년’짜리 술을 마시는가 하면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외무부 직원과 말다툼을 벌이는 등 말썽을 부렸다(<한겨레21> 94년 12월8일치 참 조).

이번 박씨 사태는 김 대통령이 귀국한 뒤인 지난 7월3일 뒤늦게 보고돼 박씨가 낸 사표를 ‘의원면직’ 형식으로 처리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일반 부처 공무원들은 “공무수행중 무단 직무이탈을 한 공무원을 파면하 지 않고 의원면직 처리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 청와대 주변에서는 박씨가 다른 이유로 그만둘 기회를 엿보다가 언론의 보도태도를 꼬투리 잡아 그만둔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의혹의 시선도 있 다.

애초부터 필요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던 이번 김 대통령의 해 외순방은 결국 국민들에게 씁쓸한 뒷맛만 남기고 말았다. 그리고 김 대통 령의 해외순방 때마다 해프닝이 뒤따라 외교 관계자들 사이에선 해외순방 노이로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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