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큰 기쁨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한겨레21

아버지 살린 친절한 노점상

거리의 노점상을 보는 그의 눈길이 따사롭기만 하다. 만난 적이 한번도 없지만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 샘솟는다.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 한다면 언제든 과일 한꾸러미, 길보드 차트에 오른 카세트 테이프 한개라 도 사든다. 5개월째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대신해 노점상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은 것이다. 병석의 아버지는 화목한 가정의 통증이다. 그 래도 가족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친 것은 순전히 노점상의 친절 덕분이다.

동화작가 오옥주(30)씨. 그가 노점상들에게 공감과 연대의 마음을 가진 것은 5개월 전부터다. 겨울 막바지인 지난 2월 중순. 마지막 한 차례의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친구분의 집안잔치에 다녀오신다던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감감무소식이었다. 평소에 약주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였기 에 걱정은 컸다. 이리저리 수소문했지만 허사였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밖 에 별다른 방책이 없었다. 가족들이 초조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전화벨 이 울렸다. 용산역 부근의 어느 노점상이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준 것이 다.

아버지가 피를 흘리며 다니니까 모셔 가라는 소식이었다. 약주가 과했던 아버지는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혀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노점상의 위치 를 확인하기도 전에 안타깝게 전화가 끊어졌다. 잠시 뒤 다시 전화가 왔 다. 막무가내로 집에 가신다기에 더이상 붙들 수 없다며 조속한 대책을 주문했다. 노점상은 생계가 걸린 리어커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었을 것이 다. 가족들은 아버지를 가까운 경찰서에 모셔다 달라고 부탁했다. 노점상 은 한참 동안 리어커를 비워야 함에도 아버지를 용산경찰서에 모셔놓고 돌아갔다. 노점상과 두번이나 전화통화를 했지만 경황이 없어 연락처도 파악하지 못했는데, 경찰서에도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 여겼던 아버지의 상처는 뇌출혈로 판명돼 중환자로 두달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고혈압 증세가 있던 아버지가 술을 마 시고 머리에 상처를 입은 게 화근이었다. 퇴원을 한 뒤에도 아버지는 거 동이 불편하고 기억과 인지능력에 장애가 생겼다. 가끔씩 가족들을 기억 하기도 하지만 순간일 뿐이다. 손녀딸 샘이의 재롱에도 웃음을 터뜨리지 못한다. 물론 그렇게 좋아하던 술은 떠올릴 수조차 없다. 정상 회복은 불 가능하다는 게 병원의 최종 진단이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노점상의 친절이 아니었다면 아버 지는 더 악화된 모습으로 가족들에게 나타나셨거나, 돌아가셨을 수도 있 었을 거예요. 주위에 그렇게 넉넉한 분들이 있다는 게 참으로 기뻤어요. 아버지의 기억력이 회복되면 노점상을 찾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 설령 그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노점상의 친절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 다. 그는 주위의 삶에 윤기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단다. 노점상의 넉넉한 마음도 언젠가 그의 동화 속에 나올 것이다.

김수병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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