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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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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상 최고가의 경품. 바겐세일에 들어간 갤러리아백화점은 마지막날 공개추첨을 통해 1등 당첨자에게 2천9백만원짜리 한화콘도 회원권을 줄 계획이다.)
지난달 중순 김아무개(43·회사원)씨는 뜻밖에 횡재를 했다. 롯데백화점 이 실시한 경품잔치에서 1등으로 당첨돼 기아자동차의 3천㏄ 엔터프라이 즈 1대(2천4백만원 상당)를 공짜로 받은 것이다. 우연히 백화점에 들렀다 가 응모권을 써냈던 김씨로서는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왔다”고 밖에 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복권이 무색하다
그러나 김씨처럼 횡재를 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많이 나올 전망이다. 백화 점들이 앞다퉈 경품행사를 벌이고 있는 데다가, 갈수록 고액의 경품을 경 쟁적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몇백만원대는 보통이고 몇천만원대까지 치솟은 경품은 이제 복권이 무색할 정도다. 더욱이 복권은 돈을 내고 사 야 하지만 경품은 백화점에 한번 들르는 정도의 발품만 들이면 누구나 쉽 게 응모할 수 있다.
이달 들어 여름 바겐세일이 시작되면서 백화점들의 경품경쟁은 절정에 이 르고 있다. 지난 7월4일부터 바겐세일에 들어간 갤러리아백화점은 오는 2 0일까지 백화점을 찾은 모든 고객에게 물건을 사든 안 사든 경품응모권을 나눠주고 있다. 백화점쪽은 세일이 끝나는 날 공개추첨을 통해 1등 당첨 자에게 2천9백만원짜리 한화콘도 회원권을 줄 계획이다. 사상 최고가의 경품이다. 백화점쪽은 이밖에도 에어컨 2대와 2박3일 콘도이용권 20매, 선풍기 50대를 경품으로 내걸었다.
지난달 엔터프라이즈(기아) 승용차를 경품으로 내놓아 화제를 모았던 롯 데백화점은 이에 뒤질세라 이번 세일기간(4∼20일)에는 3천㏄ 뉴다이너스 티(2천4백만원 상당) 1대와 1천8백㏄ 쏘나타Ⅲ 1대, 아반테 2대 등 자동 차 4대를 한꺼번에 내놓았다. 당초 바캉스 해외여행 경품행사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 롯데는 경쟁사들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바겐세일이 시작 되기 직전 경품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20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에게나 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 경품응모권을 준다.
다른 백화점들도 수천만원대는 아니지만 고액 경품으로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오는 20일까지 백화점에 들른 모든 고객들을 상대로 추첨을 통해 레간자(1천8백㏄) 1대와 호주여행권 등을 준다. 엘지 백화점 안산점도 9일부터 13일까지 하와이 4박5일 여행권, 괌-사이판 4박 5일 여행권 등을 주는 경품행사를 벌인다.
백화점들은 경품을 주는 방법에서도 더 많은 고객유치를 위해 갖가지 아 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그랜드백화점은 세일기간 동안(2∼20일) 날마다 고객 가운데 6명씩을 추첨해 에어컨,캠코더,오디오,전자레인지,선풍기를 주고 있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자주 백화점에 들르게 하려는 것이다. 또 전체 응모자들을 대상으로 세일이 끝난 뒤 한번 더 추첨을 실시해 1백 14명에게 슬림형 에어컨,제주도 여행권,냉풍기,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 이 용권을 선물한다. 블루힐백화점은 7월1일부터 20일까지 5만원 이상 구매 고객에게 즉석식 행운카드를 나눠주고 있다. 5만원당 1장씩 최고 10장까 지 받게 되는 이 행운카드를 긁어 그림이 나오는 대로 선풍기(3천3백대) 와 휴대용 쇼핑백, 키친타올 등을 준다.
주유소·은행·음식점으로 확산
(사진/서울이동통신은 체납요금을 거두기 위해 경품을 내걸었다.)
백화점업계의 치열한 경품경쟁은 한마디로 불황이 불러온 새로운 풍속도 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들은 “유통업계에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제 ‘ 사바사바’ 판촉전(사은행사와 바겐세일을 번갈아 하는 것)만으로는 안심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사은행사와 바겐세일을 동시에 실시하는 이 른바 ‘사바동시패션’은 올 들어 보편화하고 있다. 지난해 10% 안팎의 성장률을 보였던 대형백화점들이 지난 4월 바겐세일 행사 때 대부분 마이 너스 3∼5%의 성장률로 사상 최악의 부진을 기록한 것이 그 발단이다.
때마침 지난 6월1일부터 개정된 공정거래법이 시행된 것도 고액경품경쟁 을 부추기는 데 한몫 했다. 그동안 총액 1천5백만원까지로 제한되던 경품 한도액이 폐지되자 경품의 가액이 경쟁적으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갤러 리아백화점 손재우 대리는 “다른 백화점에 손님을 뺏기지 않으려면 우리 도 경품을 안 줄 수가 없다. 앞으로는 아파트 한채를 주는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말한다.
경품제공이 다반사가 되다 보니 사은품 제공은 이제 뒷전으로 밀려난 듯 보인다. 그러나 사은품의 내용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주방용세제나 우산 , 냄비 같은 저가품은 이제 생색을 내기가 어렵게 됐고 압력밥솥, 휴대폰 , 애완동물에 이르기까지 고가의 제품들이 사은품으로 나오고 있다. 뉴코 아백화점은 6월23일부터 50만원 이상 구매고객에게 휴대폰(10만원 상당) 을 선물함으로써 바겐세일 기간에 육박하는 매출실적을 올리고 있다. 고 객들이 선호하는 특정 사은품으로 마케팅에 성공을 거둔 사례다.
경품이 처음 등장한 것은 프로야구 등 운동경기에서 관중을 유치하기 위 해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백화점뿐 아니라 경쟁이 치열한 다른 업종으로 도 경품이 점차 확산돼가고 있다. 유공은 7월1일부터 20일까지 4만원어치 이상을 주유한 고객들을 추첨해 3백명에게 바비큐그릴을, 5백명에게 선풍 기를 나눠주는 등 새로운 판촉전에 들어갔다. 고급음식점들도 손님들에게 업소용 즉석복권을 나눠줘 당첨되면 선풍기 등의 선물을 주고 있다.
경품은 독특한 마케팅기법으로도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제일은행은 CD기 의 이용을 늘리기 위해 지난 6월15일부터 최근까지 복권식CD기를 운영해 관심을 끌었다. 거래명세서에 당첨표시가 나온 고객들에게 7천원 상당의 찬합세트를 나눠주는 이런 방법은 외국에서는 오래 전에 등장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서울이동통신은 체납요금을 거두기 위해 경품 을 내건 케이스다. 오는 8월31일까지 밀린 요금을 내는 가입자를 대상으 로 추첨을 실시해 1명에게 제주도 2박3일 여행권(2장), 30명에게 무선호 출기가 내장된 시티폰단말기를 나눠주기로 한 것이다. 3백억원에 이르는 연체료를 받아내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신용불량자로 올려 불이익을 주는 대신 당근쪽을 선택한 이런 경품전략은 그 성과에 따라 다른 통신회사에 도 확산될 전망이다.
“사행심 조장 얄팍한 상혼” 지적도
물론 경품이나 사은품은 이를 제공하는 업체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손해 다. 그러나 이런 고객유치전략이 그대로 소비자에게 이익을 준다고만 보 기도 어렵다. 특히 고액경품에 대해서는 “사행심을 조장하는 얄팍한 상 혼”이라는 지적이 많다. 수만명의 고객 중 경품을 탈 수 있는 사람은 실 제로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이번 세일기간 동 안 전국 모든 지점에 들른 고객들 가운데 단 4명에게만 경품을 준다. 그 럼에도 소비자들에게는 “행여나” 하는 심리를 부추기고, 불필요한 구매 에 나서게 할 가능성을 그만큼 키운다는 지적이다.
사은품 행사도 그것이 악용될 경우 고객들의 주머니를 터는 결과를 가져 온다. 지난 3월 몇몇 백화점이 중고생들의 교복을 팔면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무선호출기를 경품으로 내걸고, 그 대신 교복가격을 크게 높 임으로써 소비자단체에 의해 고발을 당한 일도 있다. 어린이날을 전후해 서는 패스트푸드점들이 식사값을 올리고 대신 어린이에게 인기가 높은 게 임기 장난감들을 사은품으로 내거는 상혼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최 근 휴대폰을 사은품으로 제공한 뉴코아백화점쪽 관계자는 “7월4일까지 모두 5천여명이 핸드폰을 받아갔다. 휴대폰, 교자상 등 사은품을 받아간 고객들의 구매액이 전체 매출의 20∼3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사은품 이 충동적인 과소비를 부추기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품추첨이 일반화되다 보니 심지어는 사기꾼까지도 등장했다. “여행권 에 당첨됐으니 일정액의 세금을 내야 한다”고 속여 돈을 입금하게 한 뒤 , 가로채는 것이다. 물론 소비자들로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업소쪽이 경 품이나 사은품을 주는 대신 그만큼 가격을 깎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는 고가의 사은품이나 고액 경품 제공을 막을 장치는 어디에도 없다. 한 백화점의 마케팅부장은 “값을 깎아주는 것보다는 덤으로 받는 선물을 더 좋아하고, 값싼 선물보다는 가능성이 적더라도 고액의 경품에 더 기대를 거는 소비자의 공짜심리는 경품경쟁을 더욱 부추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 다. 현명한 선택, 그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