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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주장 |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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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작은 외국문화’의 이해를 읽으며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보았다. 우리에게 작은 문화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 독서모임 에서 활동했다. 저녁 늦게 모임이 끝나면 출출한 배를 움켜쥐고 주변의 호떡집을 찾아가곤 했다. 그곳이 가장 싼 값에 요기할 수 있는 곳이었으 니까. 서로 호주머니 사정이 뻔했기 때문에 우리는 비싼 어묵은 먹지 않 았다. 어쩌다 객기를 부려서 비싼 어묵을 먹는 날에는 선배를 불러내 뒤 처리를 감당하도록 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주위에서 절제된 자유를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 다. 공중도덕을 이야기 했다가 핀잔을 듣기 일쑤고, 차례를 지키는 게 미 련한 행동이 되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해야 스스로가 빛난다는 착각에 사는 사람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무조건 술은 퍼마셔야 최고라 여기며 쓸데없는 ‘치레문화’에 헛돈을 쓰고 있다. 쓰레기종량제를 악 용해 남의 집에 오물을 버리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런 데서 ‘작은 문화 ’의 지킴이들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 것일까. 그것은 보고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정의에 대 한 잘못된 배움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의 작은 문화는 버려야 할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정의는 근본이치를 따져서 인간을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사회정의란 옳고 그름의 문제 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다가온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선택의 기 준마저도 권력과 부, 나이 등 봉건적인 잣대라는 것이다.
잘못된 잣대는 빨리 버릴수록 좋다. 낡은 전통으로 미래를 예비할 수 없 으며 그것이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은 후손에게도 불행이다. 지금이라도 아 름다운 작은 문화를 일궈야 한다. 그렇게 작은 문화를 만들어 나갈 때 사 회정의도 실현되고 공동체도 회복될 것이라 믿는다. 성숙한 민주사회는 단지 희망사항이 아니다.
이재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2동 1144-32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