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엽서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한겨레21

<한겨레21> 164호를 말한다


공동선 세워야 학교폭력 추방

표지이야기 ‘죽고 싶어요. 언니들이 무서워요’를 충격적으로 읽었다. 우리 사회의 폭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갈수록 폭력이 노골 화되고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는 것은 사회를 지탱하는 공동선이 무너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폭력은 사회의 지향을 잃어버린 우울한 세태 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교폭력의 해결책은 몇개의 폭력서 클을 해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신성한 의사당에서 난투극을 벌 이고,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행태가 먼저 극 복되어야 학생들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폭력이 문제의 해결수단으로 이용되는 가운데 사회적 체계와 관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될 리 없 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아직도 학교폭력에서 비켜 서 있다고 하지만 언제 위험에 처할지 모를 일이다.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 해자로 둔갑할 수도 있다. 학생들 모두가 예비 희생자들인 현실이다.

김현수/ 서울시 관악구 신림8동 567-20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안식처를…

요즘 들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자살에 이르는 안타까운 일들이 부쩍 늘 고 있다. 누구든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번쯤 학교폭력을 당해보았을 것이 다. 그래서 그때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에 나를 지켜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엄청난 불안과 절망감을 해소 할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에 청소년들은 신음하고 있다. 한 인 간의 심신을 파괴하는 폭력은 가정, 군대, 직장 등 우리 사회의 도처에 있다. 그 가운데 학교폭력은 사회화 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인성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심각하다 할 수 있다. 학교폭력이 원 천적으로 근절되기 바라는 마음이지만 최소한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따뜻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만이라도 곳곳에 세웠으면 한다. 폭력이 두려워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의 어두운 곳을 채우 고 목숨을 끊는 등의 악순환이 이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 처럼 악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할 책임이 기성세대에게 있다 김연기/ 인천시 부평구 십정2동 493-49 17/4


실상만 요란하고 해결책은 없다

가판대에 있는 표지이야기를 읽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구입했다. 그런데 기사내용을 보니 요즘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폭력기사와 별반 다르지 않 아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학교 폭력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날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을 보여주는 모습의 하나다. <한겨레21>이 정말 학교 폭력을 걱정하고 없애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좀더 근원적인 문 제를 다뤘어야 한다. 그렇게 선정적으로 다룬 기사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남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여학생들이 있다 는데, 그것이 단지 강한 여성이 되고 싶은 모방심리에서 비롯된 것일까. 요즘 학교는 학생들에게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학교 안에서 부 대끼는 많은 문제들은 해결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교사들도 있지만 역부족 일 수밖에 없다. 진지한 접근을 통해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담았으면 한 다.

진청/ 나우누리 맑은청


한국의 전통 가족 미국에서 복원?

지구촌 ‘로키산맥에도 노란 민들레가 자란다’를 읽으며 우리의 전통 가 정의 형태가 미국에서 복원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핏줄’은 지나 치게 가늘고 짧다. 내 자식이 아니면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현실이다. 주위에서 그렇게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와 가정이 많음에도 같은 겨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미국의 가족관이 부러운 것은 생명과 가족에 대 한 커다란 사랑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낳은 정’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지 않고 ‘기른 정’으로 한 인간의 앞날을 밝혀주는 그런 사랑 말 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상처를 보듬고 살아야만 하는 아이들을 기꺼이 끌 어안아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 미국의 부모에게 우리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대가족의 전통이 무너지고 핵가족화되는 가운데 가족 간의 사랑과 존경마저 단절되는 느낌이다. 드넓은 가족을 만든 미국인들 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해외입양아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길 바라는 마 음 간절하다.

정영분/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평해공업고등학교


지금은 동포애로 서로를 안아야

지구촌을 읽는데 괜히 마음이 뜨거워졌다. 입양아 수출국 1위라는 불명예 에 대한 것이나 구조적 원인에 대한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족 감상주 의라 해도 좋다. 민족이라는 뜨거운 느낌이 용솟음쳤기 때문이다. 지구촌 곳곳에 퍼져 있는 우리 민족의 모습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새롭 게 확인해 준다. 그들을 민족의 품으로 안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 절박한 것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북녘동포들에 관한 문제다. 어떤 논리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밝힌 지가 언제인 데…. 정부가 국민 모두의 마음과 정성을 한데 모아 북한에 보낸다는 소 식을 듣고 싶은 것은 속절없는 바람일 뿐인가. 북한동포를 방치하는 것은 민족에 대한 재앙일 수밖에 없다. 우리 민족의 웅비를 보고 싶다.

박승미/ 광주시 남구 월산4동 929-29


그것은 문화적 사대주의 아닌가

논단 ‘작은 외국문화의 이해’를 유감으로 생각한다. 세계화를 위해 외 국의 문화나 에티켓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필자의 의도는 충분히 이 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화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지 옳고 그름을 함부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국민을 불친절하다고 보 는 외국인들의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 산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외국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해 야지 어느 한쪽만의 일방적인 이해로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고 생각한다. 필자의 의도와는 무관할지라도 문화적 사대주의의 한 시각 을 보는 듯해 뒷맛이 게운치 않다.

김경진/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2동 744-27 3/1


반갑다, <한겨레21>의 한글 꼭지명!

<한겨레21>의 변화와 지향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차례를 모두 우 리말로 바꾸어서 꼭지를 담아냈다는 것은 작은 것이지만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세상보기, 초점, 표지이야기, 정보산전, 지구촌…. 얼마나 자연스럽고 정감있는 말들인가. 다른 잡지나 신문들도 외국어에 경도된 경직된 언어관에서 과감히 깨어나 우리글과 말을 사랑하고 공유하 는 데 앞장서길 바란다. 이왕 시작한 것이니 기사내용에 나오는 이니셜도 확실하게 없애면 어떨까 한다. 물론 상당한 개선이 보이나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이다. 그냥 이름을 쓰자. 약어 같은 신조어를 될 수 있는 한 사용하지 말고 말이다. DJP보다는 김대중-김종필 연합이 훨씬 정확하 고 쉽게 이해되는 거니까. 꼭지명을 한글표기로 바꾼 것은 우리말·글 살 리기의 시작이라 믿고 싶다. <한겨레21>을 바른 글쓰기의 표준으로 삼고 싶은 독자들의 바람을 채워주기 바란다.

김남철/ 전남 여수시 둔덕동 주공아파트 6-50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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