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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지성 |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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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정치질서 고착시킬 것”
그러나 6월항쟁의 성과물로 국민적 합의에 의해 쟁취된 대통령직선제의 변경은 결코 정치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특히 장기적으로 정치세력화 내지 정치적 진출을 꾀해야 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등 진보진영으로서는 정치권 내의 권력구조 개편논의를 강 건너 불로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
이와 관련해 전국연합 민주노총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전교조 등 대표적 인 노동·사회운동 단체들은 소장 정치학자들의 연구단체인 한국정치연구 회(회장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최근 펴낸 <정치비평> 2호를 통해 서면토 론 형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개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결론부터 말해 정치권의 내각제 개헌 논의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매우 비 판적이고 부정적이다.
우선 내각제 논의 등장 배경에 대해 이들은 내각제가 기성정치권이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는 데서 비롯된 정략의 산물이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또 내각제가 장기적으로 검토할 대안적 권력구조이기는 하나 현 정치권의 수준에서는 시기상조이며, 진보사회운동의 발전이란 측면에서도 내각제는 기회라기보다는 걸림돌의 측면이 훨씬 강하다고 비판한다.
전국연합 황인성 상임집행위원장은 “내각제 논의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 보다는 기성정치 질서유지와 이해배분을 위한 정치권의 당리당략적 차원 에서 제기된 것”으로 “정당정치의 미성숙, 지방자치 경험부족, 보수일 색의 정치지형, 재벌의 막강한 정치개입력 등을 감안할 때 내각제는 오히 려 현재의 보수적 정치질서를 고착시키고 재벌의 국회 지배를 심화시킬 것이며 정치를 더욱 부패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의 김유선 정책국장은 “집권 가능성이 희박한 정치권 내 모든 세력이 자신의 권력 지분을 보장받기 위한 것으로 앞으로 정치권의 내각 제 선호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연내 개헌가능성은 거의 없지 만, “내각제가 대선국면에서 정치권의 권력분점을 조건으로 한 합종연횡 의 중요한 카드로 활용될 것”이라는 것이다.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은 “김대중 총재나 신한국당 후보든 대선에서 독자적인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지거나 극도의 혼전양상이 전개될 경우 내 각제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으며, 전교조 유상덕 전 부위원장 은 “DJP연합이 정권교체에 성공했을 때는 내각제 개헌 가능성이 훨씬 높 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정 기간 대통령제 유지” 공감
내각제가 진보운동 진영의 정치세력화에 유리한 조건이라는 진보진영내의 일부 의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했다.
참여연대는 “내각제가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 더라도 재벌집단의 정치개입 증대라는 부정적 측면을 상쇄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볼 때 내각제는 ‘기회’보다 ‘배제’ 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환경운동연합 최열 사무총장도 “ 권력분산 형태가 시민사회운동에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정치권 수준에서 볼 때 재벌과 직업정치인의 유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내각제는 일본 에서처럼 사회변화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 역시 같은 견해다.“현단계에서 진보세력에게 내각제를 통한 정치세력화 는 사회민주주의 정도의 정치강령으로도 군소정당 수준을 넘기 어렵다. 오히려 지역주의, 금권정치 등의 강화로 보수세력에게 더욱 안정적 토대 를 마련해주는 결과를 빚을 것”으로 보았다.
요컨대 내각제가 원론적으로는 소수집단의 정치 진출에 유리한 제도이나 현 단계 한국의 정치상황에서는 오히려 진보진영의 족쇄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의 정치의식 성장과 참여 증대, 낡은 정치 질서의 타파를 우선적 목표로 하여 일정 기간 동안은 대통령중심제가 유 지되면서 정치세력의 변화를 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데 의견들이 모아지 고 있다
한편 학계토론에 참여한 김동춘(성공회대) 김수진(이화여대) 박찬욱(서울 대) 손호철 교수 등도 현 단계에서 내각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부각되 는 권력구조로 보고 내각제 실시에 대체로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현 상황에서 내각제가 실시될 경우 지역할거구도의 고착화, 보스정치의 영속 화, 정경유착의 가속화 등 최악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손호철) 는 것이다.
현재 논의되는 내각제는 내각제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고리로 각 정파가 어떻게 권력을 나눠갖느냐라는 정략적 성격이 짙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 에서는 적어도 지금 제시되고 있는 집권세력의 국가경영론, 세대교체론과 야권의 수평적 정권교체론, 그리고 기성정치권 밖의 독자후보론 가운데서 하나의 정치적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진보적 사회운동의 발전을 전 제로 올해 대선에서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태도를 결정해야 할 진보진영 에는 더욱 그러하다. “민주발전의 중요한 계기로” 주장되는 정권교체론 과 상황에 따라 실현될 수도 있는 야권의 정략적인 내각제 수용(또는 내 각제를 고리로 한 여권 일부와의 타협)을 어떻게 정리해낼 것인가는 그래 서 실천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