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7월17일 제 166호 한겨레21

골프, 허영과 대중화의 두 얼굴

(사진/우리나라에서 골프는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잘못 정착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골프가 이땅에 들어온 지 1백년이 되어간다. 구한말 영국인 선교사들의 티샷으로 시작된 골프가 어느덧 1백년의 세월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골프는 비약적인 성장을 계속했다. 그리고 지금, 골프 열 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골프는 최상의 스포츠라는 찬양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런 예찬론자들에게 골프채를 한번도 잡아보지 않은 사람은 팔불출일 뿐이다. 물론 팔불출로 불리는 이들이라고 할말이 없는 것은 아 니다. 그들은 골프를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의 향락이라고 비난한다. 골프라는 스포츠에 대한 이런 극단적인 평가가 공존하는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골프 인기, 프로야구 제압

골프는 흔히 마약에 비유된다. 한번 맛을 들이면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물불을 안 가리고 골프장을 찾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아무리 추상 같은 금족령을 내려도 이들의 골프장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 신분을 감 추고, 외압을 넣어서라도 주말이면 골프장에 부킹을 시도한다. 심지어 해 외로 나가서까지 골프채를 휘둘러야만 직성이 풀린다. 골프 경력 6년째라 는 한 대기업 간부는 “한동안 골프를 치지 않으면 금단현상처럼 몸에 조 급증이 온다”고 말한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마음은 늘 골프장의 ‘그린 ’ 위를 달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골프인구 증가는 가히 폭발적이다. 지난 한햇동안 골프장을 찾 은 사람은 놀랍게도 8백97만9천명에 이른다(표1 참조). 우리나라 사람 5 명 가운데 1명이 이른바 ‘필드’를 찾은 셈이다. 지난 80년 이후 골프장 입장객수가 연평균 17%대의 고속성장을 해온 결과다. 지난해 같은 기간 프로야구장을 찾은 사람 4백49만8천명의 두배다. 엄청난 숫자다.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골프가 프로야구보다 훨씬 인기높은 스포츠인 것이다. 한 경제연구소 자료는 골프장 입장객수가 오는 98년 1천만명을 넘어서고. 20 05년에는 2천6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골프장도 빠르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골프장은 96년 말 현재 회원제로 운영하는 프라이비트 코스 86곳과, 일반에게 개방하는 퍼블릭 코스 22곳 을 합쳐 모두 1백8곳에 이른다(표2 참조). 지난 90년 55곳에 그쳤던 골프 장이 6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여기에 현재 건설중인 골프장 69곳(프라이비트 47곳, 퍼블릭 22곳)까지 합치면 2000년께는 2백곳을 훌 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골프장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 른 골프인구를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골프장 증설이 불가피하다”고 강조 한다.

지금의 골프 열기는 사실 이런 수치를 뛰어넘는다. 평일 낮에도 서울 근 교의 골프장에 가보면 수백대의 승용차들로 주차장이 미어진다. 도심의 스포츠센터나 골프연습장에서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딱 딱 하는 공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울의 경우 90년까지 3백여곳에 불과했던 실내 골프연 습장이 지금은 1천1백여곳에 이른다. 찾는 사람도 다양하다. 초등학생부 터 직장인, 주부, 심지어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이 넓다. 출근 1시 간 전에 꼭 회사 근처 골프연습장에 들러 공을 친다는 김아무개(34)씨는 “골프를 하고 나면 몸이 가뿐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말한다. 그 는 자기가 연습장에 끌고온 동료만도 5명에 이른다고 자랑했다.


“골프는 인생이요 사업”

이른바 부킹난은 이런 골프 열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 골프장 의 1일 수용규모는 5만여명 정도다. 퍼블릭 코스를 포함해도 골프인구의 3%밖에 수용하지 못한다. 부킹경쟁이 치열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주말에 골프를 즐기려면 거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보통 주말이면 골프장 마다 4백여명의 골퍼들이 몰려든다. 회원과 비회원을 포함한 숫자다. 골 프장들이 대개 1천명 가까운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 살 인적인 경쟁은 차라리 당연하다. 우리나라 골프장 회원들의 평균 주말이 용률은 40%를 넘지 못한다. 골프장협회쪽은 “최소한 한달 전에 부킹해달 라”고 통사정을 할 정도다.

사람들은 왜 이처럼 골프장에 몰려드는 것일까. 골퍼들은 한결같이 “골 프만한 운동이 없다”고 주장한다. 맑은 공기를 쐬며 18홀 그린 위를 5시 간 가까이 걷노라면 몸의 건강은 물론이고, 정신의 정화까지 이룰 수 있 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경제적 이득도 만만찮다. 삼성전자 이아무개(37) 부장은 “골프는 인생이요 사업”이라고까지 말한다. 멀리 떨어진 홀컵에 공을 들여놓기까지 겪는 과정이 인생의 회로애락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홀 곳곳에 함정이 있고, 승부를 뒤집는 반전이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란 끈끈하고, 두터울 수밖에 없죠. 불과 네다 섯 시간을 들여 오랜 친구를 만드는 거죠. 그런 만남은 곧바로 사업적 이 익으로 연결됩니다.” 그는 골프를 통해 건강과 사업이라는 두마리 토끼 를 낚아채는 셈이다.

그러나 아무나 그런 골프의 마력에 빠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 에서 골프는 여전히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다. 초기 투자비 또한 엄청나 다. 이점은 골프 관련자들도 주저없이 인정한다. 그리고 그런 한계가 한 국 골프의 특수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골프가 대중화된 미국이나 영국에 서는 골프를 놓고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프로골퍼는 그런 현실을 “한국 골프의 아킬레스힘줄”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10달 러, 우리 돈으로 8천원 정도면 필드에 설 수 있고, 영국도 사정이 비슷합 니다. 골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친근한 스포츠인 거죠. 그러나 우리는 골프를 즐기는 데 너무 비싼 대가를 치릅니다.”


돈이 많아야 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치려면 우선 회원권이 있어야 한다. 헌데 그 회원권 값이 웬만한 서민아파트 한채 값과 맞먹는다. 몇몇 골프장만 살펴보더라 도 기흥골프장 회원권이 기준시가로 9천9백만원, 뉴코리아골프장이 8천5 백만원, 양주골프장이 7천2백만원을 호가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싼 축에 든다. 은화삼골프장은 2억2천5백만원, 서울골프장은 2억2천3백50만원이다 . 시세는 보통 기준시가보다 5백만∼1천만원 가량 높다는 현실을 고려하 면, 회원권 자체가 큰 재산이다. 골프가 돈 많은 사람들의 놀음이라는 비 난이 이유없는 편견만은 아닌 것이다..

필드에 진출하는 데도 비용이 만만찮다. 초보자가 ‘머리를 얹기’까지( 골프계에서는 처음 필드에 서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는 대략 석달 정도 의 연습기간을 거친다. 흔히 인도어(In door)라고 부르는 실내골프장에서 기본동작을 배우는 것이다. 이때 인도어의 회원가입비가 월 20만원이고, 초보자면 레슨비 10만원 가량이 추가된다. 쿠폰을 이용한 시간제 회원이 나, 이용하는 시간마다 돈을 지급하는 비회원의 경우도 수업료는 비슷하 다. 골프장비를 갖추는 것도 만만찮다. 요즘은 값이 많이 내렸지만 괜찮 은 골프채값이 1백만원을 호가한다. 여기에 신발도 장만해야 하고, 골프 채를 넣는 가방도 사야 하고, 옷도 사야 한다. 이것저것 갖추려면 줄잡아 2백만원은 족히 든다.

마침내 필드로 나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또 별도의 비용이 든다. 그린피라 부르는 골프장 입장료만 보더라도 웬만한 수입이 아니면 부담스럽다. 대 기업이 운영하는 한 골프장의 경우 평일에 회원이 내야 하는 그린피는 4 만7천5백원이다. 비회원이라면 8만7천원을 내야 들어설 수 있다. 여기에 골퍼를 도와주는 캐디에게 주는 캐디피와 팁을 더하면 상당한 액수다. 한 골퍼는 “회원이 아니라면 정규코스 18홀을 도는 동안 평균 20만원은 쓸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계산을 따르면 그린피 8만∼9만원, 캐디피 5만∼6만원이 당연히 준비돼야 한다. 중간중간 캐디에게 점심이나 음료수를 제공하거나 동료를 접대하는 데 드는 경비까지 합치면 20만원은 훌쩍 넘어간다.


골프장 업주들도 ‘죽는 소리’

이쯤되면 골프장이 떼돈을 벌 것 같은데 사정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 히려 골프장업주들은 적자에 허덕인다고 아우성이다. 나라에 뜯기는 세금 이 많기 때문이다. 한 업주는 “그린피를 올려 골프 대중화를 막는 주범 은 바로 정부”라고 열을 올린다. 18홀 골프장을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 은 평균 7백10억원 정도다. 토지매입비 1백50억원, 건설공사비 3백30억원 , 시설비 및 기타 비용 70억원에 공과금 1백60억원을 합친 액수다. 공과 금이 전체비용의 25%를 차지한다. 골프장이 완공되는 즉시 부과되는 공과 금의 종류는 모두 8종이다. 취득세 70억원, 퍼블릭 코스 조성기금 (6홀기 준) 30억원, 개발이익부담금 15억원, 부가가치세 미환급 25억원, 농지조 성부담금 5억원, 농어촌특별세 3억원, 환경개선부담금 7억원 등등. “골 프장 하나 지었더니 사방팔방에서 하이에나가 달려든다”는 업주의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게다가 골프장에 대한 취득세 세율은 1천분의 1백50 으로 일반세율의 7.5배다. 카지노나 증기탕 같은 사치향락시설에 부과하 는 고율을 골프장에도 매기고 있는 것이다.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나 카지 노에서 도박을 하나 마찬가지라는 정부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정부와 골프의 긴장관계는 김영삼 정부 들어서 더욱 날카로워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김 대통령 자신은 “내가 안 친다는 것이지 언제 남에 게 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말하지만, 공직자들에겐 골프장 금족 령이나 다름없다. 실제 골프장에 나갔던 공직자가 나중에 홍역을 치른 경 우도 있다. 지난 93년 서울의 한 세무서장이 골프를 쳤다가 벽지로 전보 발령됐고, 95년 6월에는 일과시간에 업자들과 골프를 친 대전시의 고위공 무원이 직위해제를 당하기도 했다.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비서관도 94년 초 친구들과 필드에 나갔다가 호통을 듣기도 했다. 95년 8월에는 전 두환 전 대통령과 골프를 친 당시 정동수 강원경찰청장이 좌천되기도 했 다. 이 때문에 “골프장에 가면 출세길 막힌다”는 비아냥이 관가에 회자 됐다.


몰래 드나드는 공직자들

그러나 공직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골프장 출입을 멈추지 않는다. 물론 얼굴이 알려진 장·차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및 정부투자기관장 등은 골프를 자제한다. 그러나 상당수 고위 공직자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필드를 찾는다. 그들은 우선 절대로 자기 차로 골프장에 가지 않는다. 차 량번호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골프장에 플레이어 이름을 등록할 때는 가짜 이름을 댄다. 골퍼들은 그런 이름을 스포츠네임이라고 부른다. 내무 부의 한 간부는 “솔직히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골프장 출입을 막을 수 있는 때는 지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공무원이라고 골프를 치 지 말라는 것은 낡은 사고라고 단언한다. 그만큼 골프가 대중화됐다는 것 이다.

이제 어쩌면 골프가 귀족스포츠냐 대중스포츠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한참 철지난 얘기인지 모른다. 최근 한국YMCA에서 서울시내 직장인들을 대상으 로 골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5%가 “시간과 돈이 허락하면 골프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골프를 치기 힘든 조건이 문제일 뿐이지, 골프 자체에 대한 열망은 이처럼 높다. 우리의 골프는 지 금 사람들의 조건과 소망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 이란 게 앞으로 유리하게 바뀔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7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