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승용차 시장 피가 튄다

(사진/주차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선출고 승용차. 수출이 줄고 내수시장이 어려워지자 자동차 3사는 내수 우위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승용차 내수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현대, 대우, 기아 등 완성차업체 들의 ‘승용차 3국지’가 갈수록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는 서로 1위 자리를 장담하고 있고, 올해 들어 3 위로 처져 절치부심하던 기아자동차도 2위 탈환을 위해 `7월 ‘대반격’ 을 준비중이다.

대우차는 지난 4월 승용차 내수시장 1위에 등극하겠다는 야심을 이루지 못했지만 5월에는 목표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 “각종 자료 를 보면 현대가 승용차 내수시장 1위를 뺏기지 않기 위해 지난 4월중에 엄청난 밀어내기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판매 정상화가 이뤄진다면 대우 의 1위 입성은 확실하다.” 대우자동차 김종도 홍보이사의 장담이다.


5월 1위 목표 대우 신차 앞세워 맹공

그러나 현대차는 코웃음친다. “신차 출시에 따른 특수는 길면 6개월, 짧 으면 1~2개월 정도에 그친다. 대우가 지난해 11월 중순 내놓은 소형승용 차 라노스는 이미 엑센트에 처졌다. 4월1일부터 출시된 중형 레간자도 출 시 초기에는 선풍을 일으키는 듯했지만 5월 들어 소나타Ⅲ에 밀리고 있다 . 대우의 1위 꿈은 이미 물건너 갔다.” 대우는 1위는커녕 2위를 지키기 도 힘들 것이라고 오히려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올 1월부터 승용차 내수시장 2위 자리를 대우에 내준 기아는 반격의 칼을 갈고 있다. 기아는 대반격 D데이를 세피아 후속모델인 준중형 승용차 S- Ⅱ(프로젝트명)가 본격 출시되는 7월로 보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서호 홍 보담당 상무는 “5월 말 포텐샤 후속모델인 T-Ⅱ를 시작으로 7월 초 S-Ⅱ , 10월 6~9인승용 미니밴 KV-Ⅱ로 이어지는 신차 퍼레이드가 진행되면 2 위 탈환은 시간문제”라고 장담한다. 기아는 하반기부터는 월간 승용차 판매량이 현재의 2만대 수준에서 3만대 이상으로 껑충 뛸 것으로 기대하 고 있다. 이달 말께 자동차판매전담회사인 기아자판(가칭)을 출범시키는 것도 대반격전의 일환이다. “기아자판이 출범하면 판매부터 애프터서비 스에 이르기까지 고객에 대한 통합관리가 가능해진다. 내수시장 본격 공 략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다.”

변수는 판매실적을 실제보다 부풀리기 위한 밀어내기식`‘선(先)출고’와 제살깎기를 각오한 무이자 할부판매 같은 변칙 플레이가 어느 정도 사라 지느냐 여부다.

지난 4월 이후 현대와 대우가 업계 정상자리를 놓고 난타전을 벌이면서 자동차 영업사원들이 가상의 고객을 만들어 실제로는 팔리지 않았는데도 팔린 것처럼 위장하는 선출고가 기승을 부렸다.

대우는 지난 5월15일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발표한 4월중 승용차 등록대 수(신차 기준) 실적을 토대로 현대가 4월중에만 5천~6천대에 달하는 대규 모 밀어내기를 했다는 주장이다. 신차가 공장에서 출고돼 등록하기까지는 대략 10일 정도의 시차가 있다. 예를 들어 3월 말에 출고된 승용차는 보 통 4월 초에 등록하게 된다. 출고시점과 등록시점의 차이로 업체에서 발 표하는 판매실적과 협회의 등록대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 들은 통상 월중에 판매되는 차량의 25%가 다음달에 등록되는 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현대는 3월과 4월에 각각 3만4천95대와 4만7천87대의 승용차 를 팔았다고 발표했다. 4월분 판매실적에서 5월로 등록이 넘어가는 것을 뺀 뒤, 3월 판매량에서 이월등록되는 것을 합하면 대략 4만3천8백여대가 된다. 이는 현대자동차의 4월중 등록대수 3만8천1백53대에 비해 5천6백여 대나 많은 것이다. 대우는 이들 차량이 모두 밀어내기로 선출고된 `‘거 품’이라고 지적한다.


“거품을 걷자” 협회 등록대수 공개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대우 역시 4월 판매실적 4만5백21대 가운데 2천6 백여대의 허수가 발생한다. 기아는 가장 적은 1천4백여대의 차이가 난다. 결국 현대, 대우, 기아 모두 판매실적을 실제보다 부풀렸다는 지적을 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동차회사가 의도적으로 밀어내기를 하지 않더라도 판매실적에 얽매여 있는 영업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밀어내기를 하는 것 이 우리 현실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영업소 직원들은 판매실적이 많으 면 많을수록 대당 판매수당이 많아지기 때문에 항상 밀어내기 유혹을 받 게 된다. 영업소 직원이 자발적으로 밀어내기를 하는 규모는 전체 판매량 의 10% 정도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자발적인 밀어내기를 감안하더라도 현대차의 경우는 회사가 의도적으로 대규모 밀어내기를 한 혐의가 짙다. 자동차공업협회가 승용차 등록대수를 공개발표하기로 한 것은 이런 거품 을 걷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몽규 현대자동차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업계에서 실적 부풀리기가 앞으로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보는 사람 은 많지 않다. 그러나 전보다 어려워질 것은 분명하다.

대신 무이자 할부판매 같은 출혈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5월 들 어 무이자 할부판매를 중단했던 현대차는 지난 9일부터 다시 재고가 많은 아반떼와 엑센트, 97년형 소나타, 97년형 마르샤에 대해 24개월 무이자 할부에 들어갔다. 대상은 현대그룹 임직원과 그 친인척으로 한정시켰다고 하지만 사실상 일반인을 제외할 방도는 없다. 정상 할부판매의 이자율은 연 6~13.9%이다. 아반떼 승용차를 24개월 무이자 할부로 파는 것과 2백만 원은 선금으로 받고 나머지 8백만원을 연리 8%에 24개월 할부로 파는 것 을 비교하면 70만원 가까운 금리부담이 회사에 돌아온다.


무이자 할부 채권구입 등 변칙판매 성행

대우는 구형 프린스에 대해서만 무이자 할부판매를 하고 있다. 신차를 무 이자로 파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대우도 현대가 오는 9월 초 경승용차 M X를 출시하는 것을 겨냥해 이달 한달간 한시적으로 티코에 대해 할부이자 를 13.6%에서 6%로 깎아주고 있다. 대우는 판매실적을 늘리기 위해 계열 사를 동원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계열사 임직원이나 그 가족이 대우차 를 살 경우 차량값의 30~50%를 무이자로 융자해주고 차값의 9~20%에 달하 는 지하철채권을 현금으로 사주고 있다.

수출시장은 갈수록 좁아지고 내수는 정체상태를 맞고 있는 한계상황에서 실적 부풀리기와 출혈경쟁을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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