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은 ‘CIA’

(사진/기업 가운데 가장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삼성. 정보수집뿐만 아니라 분석.가공 능력도 탁월하다.)

삼성그룹의 막강한 정보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정보수집의 핵심조직은 비서실 소속 기획홍보팀. 이들은 각기 출입처를 정해놓고 기자들처럼 매일 출입처로 나가 정보를 수집한다. 나름의 학연 과 지연에 따라 정·관계는 물론이고, 군부 등에 이르기까지 주요 정보원 을 일상적으로 접촉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챙기는 것이다. 계열사 정보팀 에서도 일상적인 정보활동이 이뤄진다. 삼성생명의 방대한 영업조직은 정 보수집과, 여론동향을 탐지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정부가 삼성그룹에 자료요청하기도

그러나 삼성의 정보맨은 홍보팀 소속 직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그룹 직원 모두가 정보맨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장급 이상 직원들은 중 요한 정보거리가 있으면 즉각 위로 보고한다. 해외지사에서도 정보를 전 담하는 직원이 수집한 정보를 본사로 올려보낸다.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수집된 중요한 정보는 다시 회장 비서실로 보내져 분석되고 재가공된다. 지난해 정부가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담(ASEM) 준비를 위해 컨벤션센터 문제를 논의할 때 긴급하게 자료를 부탁한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삼성물 산 해외조직을 이용해 각국의 컨벤션센터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달라고 요 청한 것이다. 삼성의 조직망이 갖고 있는 정보력에 대한 정부의 평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삼성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삼성의 정보력이 다른 재벌그룹의 정보력을 압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점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보는 아무 데서나 줍는 것이 아니 라, 정작 필요한 자료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해 이를 수집, 가공해야 의 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삼성물산의 정보팀을 통해 삼성이 실명제 실시를 미리 알지 않았 느냐”는 물음에 “그것은 대통령의 선거공약 아니었느냐”고 간단히 비 껴갔다. 실명제 실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부터 대비해왔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설령 실명제 전격실시 몇시간 전에 소 식을 들은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제보에 의존하는 정보수집은 기업경 영에 큰 도움은 못 된다”고 그는 잘라 말했다.

실제로 삼성은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다음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무엇으로 보는지 여론을 체계적으로 조사·정리하고,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면 대통령의 선거공약과 핵심 참모들이 지향하는 정책과 제를 면밀히 분석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나 문제점에 대해 미리 검토한 다고 한다.

비서실 기획팀의 한 과장은 “신규사업진출의 경우 해외지사를 통해 외국 의 사례를 조사해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닥칠 환경에 대비하다 보면, 정 부의 정책방향이 어느 쪽으로 향하게 될지는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되더라 ”면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이 논의될 때 필요한 의견을 내고 , 결정된 정책에 대한 대응방안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그룹에는 정부부처가 협회에 요청한 자료를, 협회가 다시 삼성쪽에 요청하는 경우도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정보의 수집방법에 대해서도 “정보의 99%는 공개되는 내용에 바탕 을 두고 있는 만큼 정보수집을 음험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 했다. 정부의 정책자료, 업계에 올라오는 각 기업들의 정보, 외국언론의 보도내용 등 공개된 자료에서 사실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는 것이다. 이처럼 일단 공개된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고 부족한 나머지 1 %만을 관계와 학계인사 등을 통해 직접 취재한다는 것이다.


막강헌 로비력도 정보력에서 나와

그러나 삼성그룹의 이같은 막강한 정보력은 언제나 로비 등으로 얼룩져 온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정부가 PCS사업자를 선정할 때, 삼성은 경쟁사 의 약점을 정리한 자료를 배포하고 발족하지도 않은 회사의 경영계획을 언론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지난 95년 6월에는 삼성중공업 직원이 기아자 동차 공장 앞에서 막 출고된 봉고트럭을 무단 촬영하다가 발각되기도 했 다.

삼성의 로비는 특별히 집요하다. 삼성은 평소부터 인명록을 구축해 놓았 다가, 사안이 닥치면 누구에게 로비를 집중할 것인지 선택한다. 학계 인 사들에게는 제자인 직원을 보내 설득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지난 92년 좌절되는 듯했던 삼성의 자동차산업진출이 2년 뒤 여·야의 반발을 잠재 우고 끝내 성공한 것에서 보듯 삼성의 로비는 주도면밀한다. 한마디로 여 론까지 움직이는 총력전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런 삼성그룹의 조직력을 “삼성공화국”으로, 회장 비서실을 “CIA같다”고 표현하기도 했을 정도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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