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연변의 쉰들러’희선이 가족의 동족에게 열린 가슴

(사진/북한식량 난민들을 돕는 희선이 엄마. 너무 많이 몰릴 때는 밉기도 하지만 동포를 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국경을 넘어온 북한주민을 돕는 희선이 엄마·아빠는 늘 헐렁한 옷차림으 로 다닌다. 원래 소탈한 성격 탓도 있지만,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만강을 넘어온 사람들에게는 옷도 곧 양식이 된다. 북한에 들어가 옷을 팔아 양식을 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되돌아갈 때 가 능한 한 옷을 몇겹씩 껴입고 강을 건넌다. 희선이 아빠는 이들을 위해 마 을을 돌며 옷을 모으지만, 옷의 ‘공급’이 ‘수요’에 훨씬 못미치는 게 현실이다. 다음은 희선이 엄마와의 일문일답이다.

-언제부터 도강하는 북한주민을 도왔나.

=벌써 몇년 됐다. 처음엔 조선 주민이 가끔씩 넘어오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들을 돕는 게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지금은 꽤 부담이 된다는 얘기 같은데.

=지난해 7월 이후부터 도강하는 조선인이 급격히 늘었다. 지금은 1백여 가구가 사는 우리 동네에 하루 평균 열댓명 정도씩 드나들고 있는 실정이 다. 특히 우리 집은 거의 하루에 한명 이상씩 들른다. 이들이 저녁에 불 쑥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이제 기본이 됐다. 요사이는 벌건 대낮 에도 북조선에서 온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식당을 찾아와 음식을 구걸한 다.

-중국 공안과는 문제가 없나.

=사실 중국법에 따르면 위법이다. 따라서 대낮에 손님들이 찾아오게 되면 중국 공안의 눈치를 살피느라 우리들로서는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주로 무엇을 요구하나.

=대부분은 배가 너무 고파 건너온 사람들이다. 개중에는 그냥 밥만 먹고 가는 사람도 있고, 쌀을 얻어가는 사람도 있다. 또 병든 가족을 위해 약 을 구하러 오는 사람 등 다양하다. 특이한 점은 이들 대부분 소기의 목적 을 이루면 다시 북조선으로 돌아간다.

-마을에선 날로 느는 북조선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나.

=예전에 식당은 음식이 남으면 개·돼지에게 다 줘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남은 반찬들을 깨끗이 모아 비닐봉지에 싸놓는다. 저녁이면 으레 누군가 가 와서 밥을 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다.

-그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끔은 밉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잘 좀 살지. 왜 그렇게 못살아 가지고 우리를 괴롭히나 하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다. 우리 밖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런 감정은 사라진다. 우리처럼 같 은 동족이 아니라면 그들을 누가 도와주겠는가. 한족이 돕겠는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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