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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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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패션소 예행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모델라인 소속 모델들.
몇십초 동안의 무대를 위하여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하다.)
조명이 꺼지면서 강렬한 리듬이 공간을 채운다. 스테이지 끝에서 붉은 빛 이 엷게 뿌려지면서 무대 위에 모델이 모습을 드러낸다. 환상적인 의상을 걸친 모델이 도발적인 시선으로 관객들을 쏘아보며 무대 위를 걸어간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모델들의 워 킹이 모두 끝나면 무대에 참여한 모든 모델과 디자이너가 한자리에 나와 관객들의 환호에 답하는 피날레로 끝을 맺는다.
화려함은 순간, 뼈깎는 노력 있어야 생존
일반적인 패션쇼의 한 장면이다. 패션쇼 무대는 화려함의 극치다. 하지만 모델들이 나오고 들어가는 백스테이지를 가보면 황당함을 느낄 때가 많다 . 창고나 다를바 없는 초라하고 어두컴컴한 대기실(겨울에도 난방이 안 된 곳이 많다), 잔뜩 널린 옷 틈 사이에서 반나차림으로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고 액세서리를 챙기는 모델들, 쉼없는 연출자의 사인, 관계자들의 부산함.
일면 화려해 보이기만 한 패션세계는 바로 패션쇼의 뒤쪽과 마찬가지로 그 이면에는 고단한 일상과 치열한 경쟁, 뼈를 깎는 노력이 매일 계속되 는 쉴 틈 없는 전쟁터다. 전쟁의 대상은 기존의 관습과 지배문화이며 이 를 통해 얻는 전리품은 개인적 명성과 산업적 이윤을 포괄하는 브랜드다.
이 전쟁의 지휘관은 디자이너. 디자이너가 구상한 패션을 스케치하면(최 근엔 컴퓨터를 주로 이용한다) 패터너가 형지에 옮기고, 커터(재단사)가 형지에 맞춰 천을 재단하고, 재봉사가 바느질을 시작한다. 과거 디자이너 들은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다 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업구조 아래 에서도 디자이너는 제작 전체의 작업에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 각각의 전 문가들에게 일을 시키는 동안 조금씩 손질을 해가면서 자신의 감각을 토 대로 염두에 둔 이미지에 접근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마치 오 케스트라의 지휘자와도 같다.
디자이너는 권한을 가진 대신 그에 상응하는 무한책임도 함께 지닌다. 내 셔널 브랜드(기업체)와 디자이너 브랜드 공히 디자이너라고 하면 잠자는 시간 외에는 늘 머리 속에 옷을 구상하고 또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바쁘 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디자이너는 화려한 전문직으로 등장하지만 실은 그러한 고상함과는 달리 바느질, 미싱, 다림질, 마도메(옷의 끝처리) 등 을 직접 해야할 때도 많다. 잡지촬영이나 패션쇼가 있는 전날 저녁이면 단추를 달고 단을 꿰매고 액세서리를 챙기거나 순서를 정해놓기에 바쁘고 , 원단시장이나 부자재시장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야말 로 발로 뛰고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
당연히 생활은 불규칙하다. 1년에 몇번씩 치르는 패션쇼 준비중에는 밤을 새는 날이 더 많다. 항상 쫓기는 기분으로 산다. 그래도 디자이너들이 이 를 이겨내는 것은 옷을 만든다는 것이 새로운 이미지의 창조임과 동시에 자기를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리라.
위장병, 피부병은 디자이너에게 필수(?)
디자이너 김선자(50)씨는 “패션쇼는 6개월 전부터 준비한다. 옷을 만드 는 것 외에도 음악, 연출, 진행, 무대장치, 모델선정, 조명, 메이크업 등 신경써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1인10역을 해야 한다. 패션쇼 2달 전 부턴 전화까지 끊고 격리된 상태에서 오로지 쇼 준비에만 몰두한다. 1~2 주일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못할 때가 많다. 너무 고생을 해 ‘다음에는 쇼를 하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출산 때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엄마들처럼 또 쇼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식사를 거르기 일쑤여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위장병에 시달리고 가죽제품 이나 모피제품을 다루는 디자이너들은 피부병과 알레르기 질환이라는 직 업병(?)을 앓기도 한다. 이와 함께 끊임없는 창작압박은 디자이너의 천적 이다. 그리고 며칠 밤을 새워 내놓은 자신의 옷이 재고가 되어 되돌아 올 때의 쓰라림을 또 어떻게 표현할까? 또한 옷의 공정에 맞춰 오너로부터 미싱팀 제자까지 격의없는 친구가 돼야 하는 사교성도 갖춰야 한다. 디자 이너들은 독신이 많다. 일에 몰두하면 이성을 사귈 기회를 좀처럼 갖기 힘들고, 결혼 이후에도 가족의 동의와 협조가 없이는 하기 힘든 게 이 일 이다. <별은 내 가슴에>에서 디자이너 연이가 하는 사랑은 정말 드라마일 뿐이다.
디자이너들은 대개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상업성이 결여된 예술 성은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아무리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 해도 소비자 가 사지 않는 옷은 천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쉼없이 모방유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실 일부 국내 디자이너들이 외국 패션쇼 를 통해 선진디자인을 그대로 도용하는 경우가 최근까지 왕왕 있어왔다. 이처럼 디자이너의 삶이 피곤과 고난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 지 망생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62년 덕성여대에 처음으로 의상 학과가 개설된 이래 4년제 대학과 2년제 전문대학을 합쳐 의상관련 학과 가 개설된 곳은 1백36개교다. 여기에 패션학원도 30여곳에 이른다. 매년 배출인력은 대학 및 전문대학에서 1만여명, 전문학원 5천여명 등 한해 평 균 1만5천여명 정도다. 이들 중 13% 정도만이 전문 디자이너로 진출하고 있다(한국패션협회 자료). 디자이너로서의 경쟁은 그 출발선에서부터 시 작되는 것이다. 경쟁의 심도에 있어서는 모델세계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 모델은 이제 신세대 여성들의 최고인기 직종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그렇 게 녹녹한 일이 아니다.
가냘픈 몸매 강인한 체력이 모델의 조건
지난 5월1일 오후 ‘모델라인’ 지하 연습실. 백화점 패션쇼 연습에 한창 인 10여명의 모델들은 노래를 부르는 남자모델에게 ‘꺄악’하고 달려드 는 오빠부대 연출장면을 수십번도 넘게 반복했다. 보는 사람도 지겨울 정 도인 데다 가끔은 연출자의 신경질이 묻어나는 불호령에 고개를 푹 숙이 기도 하고, 한숨도 내쉰다. 점심시간 이들의 식사는 근처 식당에서 시킨 짜장면, 카레라이스 등이 고작이었다. 그릇을 다 비운 이는 아무도 없었 다.
모델경력 1년6개월의 김미옥(21)씨는 “힘들지만 내가 원하던 일이라 항 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나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옷을 입고 무대에 나설 때는 옷과 나 자신이 그대로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 같은 게 있다”며 힘든 내색을 비추지 않았다. 174cm인 그는 자신을 ‘아담(한 ) 사이즈’라며 “나만의 이미지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는 일이 없을 땐 선배들의 워킹은 물론 말과 행동, 눈빛 하나하나까지 눈 여겨본다. 그리고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미용체조와 메이크업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패션모델들은 여리고 가냘픈 몸매와는 달리 강인한 체력을 갖춰야 한다. 패션쇼에서 30초 안에 옷을 갈아입다보면 그것만으로도 녹초가 되고 만다 . 카탈로그나 광고, 잡지화보 촬영은 새벽에 시작해 밤을 꼬박 새울 때도 있다. 체력유지와 또한 긴장관계를 이루는 게 몸매유지다. 이는 모델로선 생명이다. 최근에는 패션쇼 무대에 노출이 심해지면서 가슴 성형 수술을 하는 모델들도 적지 않다. 또 패션쇼가 점차 종합예술화돼 가면서 모델들 에게 연기력을 요구하는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엄격한 자기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한마디로 모델 일을 즐기지 않는한 그저 시켜 줘도 할 수 없는 게 이 일이다.
‘모델라인’의 경우 4개월의 수련과정을 거쳐 정식모델이 된다. 한 기수 는 30명, 1년에 4번 모두 1백20명의 모델이 배출된다. 하지만 이중 모델 로 남는 인원은 10~20%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그저 “모델이었다” 는 자랑만으로 평생을 지낼 뿐이다. 국내에 등록된 패션모델 숫자는 1천 여명이 넘지만 이중 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2백여명 정도다.
모델 수입은 일정하지 않다. 패션쇼 1회 출연료의 경우 신인은 15만원선, 경력이 쌓이면 80~90만원, 박영선, 진희경, 이복영, 오미란 등 최정상급 모델의 경우 2백만원선까지 받는다. A급 모델의 한달 평균 수입은 2백50 만~3백5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몸매와 이미지를 가꾸기 위한 유지비가 만만찮고 일거리와 수입이 일정치 않아 경제적으로 항상 불안정한 위치다 . 모델이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더욱 투철한 직업의식이 요구된다. 모델라인 오창석 차장은 “최 근 모델지망생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무대의 화려함만을 생 각해 별생각 없이 이 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끼’라 는 막연한 착각보다 투철한 프로의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라고 말했 다.
패션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지 않는다
물론 패션업계는 이들 디자이너와 모델 외에도 액세서리디자이너, 텍스타 일디자이너, 컬러리스트(색채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전문가), 패턴사(디 자인 그림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입체재단을 하거나 샘플제작을 위해 패턴 을 제작하는 사람), 패션코디네이터, 스타일리스트, 머천다이저, 패션어 드바이저(패션상품 판매사원), 디스플레이디자이너, 패션일러스트레이터 등 점차 그 영역이 더욱 전문화, 세분화되고 있다.
패션은 이미지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창조하고 표출하는 이들 패션 전쟁 터의 전사들은 오늘도 전장으로 나서고 있다.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측정 하는 패션은 또한 그 나라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디자이너나 모델이 각고의 노력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낡은 것들에 대한 무한전쟁과 지배 문화에 대한 끝없는 반란을 통해 이뤄진다. 오늘도 무대 위에서건 작업실 혹은 연습실에서건 이들은 반란을 꿈꾸고 또 실천에 옮긴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