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누가 모부투를 축출하려는가

(사진/실권 위기에 처한 자이르의 독재자 모부투 대통령. 그의 실각이 풍부한 지하자원을 노린 미국의 지원 탓이라는 것이 프랑스의 주장이다.)

자이르의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의 실각 가능성이 시시각각 높 아지면서 이를 지켜보는 프랑스와 미국의 신경전 또한 높아지고 있다. 현 재 모부투 대통령은 내전 8개월 만에 로랑 키빌라를 중심으로 한 반군에 의해 수도가 위협받으며 해외망명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언론들은 모부투 철권통치가 허무하게 쓰러지는 데 대한 비난의 화살을 미국에 돌리고 있어 주목된다. 반군의 파죽지세 뒤에 미국의 은밀한 지원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자이르사태는 다이아몬드 구 리 코발트 아연 등 자이르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노린 미국의 ‘경제제국 주의’ 탓이라며 <르몽드> <리베라시옹> 등 점잖던 신문들까지 원색적 비 난을 쏟아내고 있다.


프랑스, 군사 개입 기회 놓쳐

이런 비판은 지난 4월11일 빌 클린턴 대통령의 고향인 아칸소주 출신 측 량기사가 설립한 `‘아메리칸 미네랄 필즈’가 반군쪽과 약 1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조건으로 코발트 채굴권을 확보하는 등 북미쪽 광업회사들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면서 그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미 국무부는 이런 비난이 터무니 없는 것이라며, 지난 5월7일에는 자이르 사태 특사인 빌 리처드슨 주유엔대사를 파리로 급파해 프랑스쪽 비난을 누그러뜨리려 애쓰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뉴욕타임스> 보도를 통해 프랑스가 모부투를 지원하고 있으며, 미그기와 헬리콥터를 몰았던 세르비 아 용병들의 급료를 프랑스가 지불했다고 폭로함으로써 맞불을 놓았다. 물론 자이르내전을 프랑스와 미국의 대리전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이르 내전이 32년 독재정권의 부패에 대한 반발과 탈냉전 이후 힘의 공백상태가 빚어낸 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이르 내전은 성장 잠재력이 부각되고 있는 아프리카의 새로운 질서의 향방을 보여주는 지표 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의 전례없는 대미 비방은 반군이 압승한 자이르 내전 결과 아프리카에서 프랑스 지위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다. 즉 영국과 프랑스 등 식민모국의 배타적 영향력이 인정되던 아프리카 질서가 탈냉전 이후 미국 우위쪽으로 확실하게 기울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인 셈이다.

지난 63년부터 30여년 동안 해마다 평균 한차례 이상 직접 군사개입을 했 던 프랑스로선 이번 자이르 내전에도 군사개입을 원했지만, 미국 등의 미 지근한 태도와 파병이유로 내세웠던 르완다 난민들의 집단귀국으로 시기 를 놓쳐버렸다. 93년 소말리아 내전 개입 당시 15명의 미군병사가 수도 모가디슈 거리에서 참혹하게 처형됐던 미국은 불개입 입장을 견지하고 막 판에 사태의 평화적 해결의 중재역을 담당함으로써 오히려 영향력을 확대 하는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차기 자이르 대통령이 확실시되는 반군지도자 로랑 카빌라에 대한 미국과 프랑스의 인물평가와 사태의 해결 방안에서도 두 나라의 입장차이는 분명 하다. 동자이르에서 르완다 난민 학살 사실을 들어 카빌라를 “캄보디아 의 폴포트 같은 XX”라고 평가하는 프랑스는 카빌라가 군사적 공격을 중 단하고 모부투와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미국이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카빌라가 “그래도 교육을 받고 견문이 넓은 인물 ”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미국에 대한 의구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로 선 현재 반군쪽을 공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르완다에서 뼈아픈 경험을 잊을 수 없다. 3년전 프랑스는 르완다의 후투족 정부가 영어권이던 우간 다에 근거를 둔 투치족 반군에 의해 전복되면서 맹방 가운데 하나를 잃었 다. 이후 르완다에서 프랑스어는 제2외국어로 전락했고, 미국이 프랑스의 자리를 대신해 버린 것이다.


미국 영향력 증대로 프랑스 설자리 잃어

4천5백만 자이르인이 당장 영어를 쓰는 일은 없겠지만 프랑스에 대해 강 한 반감을 보이고 있는 카빌라이고 보면 자이르는 르완다의 재판이 될 수 밖에 없을 것같다.

이런 일은 탈냉전기 이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프랑스의 전통적 우방이었던 세네갈이 지난해 9월 미국과 군사훈련을 했는가 하면 세네갈의 영어학원은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로 줄을 잇고 있다. 프랑스 유학경험이 있는 콩고의 파스칼 리수바 대통령이나 가봉의 엘 하지 오마 르 봉고 대통령들도 미국 석유회사들과 석유시추계약을 체결했다.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영국과는 달리 배타적 영향 력 확보에 주력했던 프랑스는 자이르내전을 계기로 이제 아프리카정책을 완전히 재검토할 시점을 맞고 있다.

류재훈 기자/ 한겨레 국제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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