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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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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해외브랜드의 무차별적 공략으로 한국 브랜드들은 거리로 밀려났다. 한때 의류수출 강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수출은 매년 10% 이상씩 감소하고 수입은 매년 50%씩 신장되고 있다.)
‘위기’. 국내 패션산업의 현황을 보여주는데 더 이상이 설명이 필요없 는 낱말이다. 80년대 세계 3대 의류수출대국이었던 한국의 의류수출액은 89년 87억달러를 최고로 매년 10%씩 감소해 지난해 39억달러까지 떨어졌 다. 그런데 89년 7천4백만달러에 불과했던 수입은 매년 56% 이상 급증, 지난해 14억달러를 넘어섰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3년 뒤인 2천년 한국은 의류산업 무역적자국이 된다.
한국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전쟁터
한때 국내 수출의 전초기지였던 섬유산업이 이 지경으로까지 떨어진 근본 원인은 우리 옷엔 ‘패션’이 없기 때문이다. 중·저가 의류에만 집중하 고 고급 패션분야는 사치, 낭비라는 손가락질을 하며 억압했던 결과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중·저가 의류는 80년대 말 이후 중국, 동남아 등 에 시장을 빼앗기고 국내에는 수입브랜드가 쏟아지면서 우리 브랜드는 이 도저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태로 무차별 난타당하고 있는 것이다. 수입브 랜드의 공격은 실로 가공할 정도다. 현재 섬유센터에 등록된 총 브랜드 1 천3백57개 중 해외 직수입 브랜드가 3백59개, 해외 라이센스 브랜드(외국 업체에 로열티를 주고 국내에서 생산하는 브랜드)가 2백28개다.
지난해 게스가 현대, 롯데, 신세계 백화점 등에서 올린 총매출액은 62억 원, 구찌는 18억3천만원, 루이비통 월매출액은 갤러리아 백화점에서만 5 억원, 페라가모 올해 목표액 80억. 이외 까르띠에, 질샌더 등의 지속적인 매출상종가, 곧 가세할 프라다까지. 한국은 마치 1백년 전 청·일전쟁 때 처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일본 패션브랜드의 전쟁터로 대여되고 있 는 것이다.
한국패션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수입브랜드 비율은 이탈리아가 37.5%로 1위, 프랑스가 2위(20.5%), 일본(12.6%)이 3위, 미국(10.9%)이 4위다. 최 근엔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 중저가 브랜드도 줄을 서고 있다. 진퇴양난이 다.
이 질식직전의 위기에서 우리 의류업계와 디자이너들이 해외시장 개척이 라는 적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어 한가닥 위안이 되긴 한다. 고유 브랜드 로 해외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는 대표적 업체는 ‘데코’다. 데코는 일본에 6개, 중국에 9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데코의 올해 일본 매출 액 목표는 1백억원이다. 나산은 중국베이징, 상하이 등에 매장을 개설해 중국 공략에 열을 올리는 한편 올해부터 홍콩과 일본 지역도 가만두지 않 을 계획이다. 이랜드는 뉴욕, LA, 상하이, 심천, 대만 등 세계 각지에 골 고루 퍼져있다. 이들 내셔널 브랜드들의 주공략 대상은 중국과 일본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잠재 의류시장이라는 점이, 일본은 세계 진출의 교두보 구실이라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적 브랜 드들이 판매거점 마련 차원에서 해외로 진출한다면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패션 선진시장에 매장을 마련하고 있다. 진 태옥, 이영희, 이신우씨가 프랑스 파리에 매장을 마련, 세계 패션 중심지 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트로아 조는 뉴욕에, 루비나와 김철웅씨는 오사카 에서 부띠끄를 운영중이다. 이들 디자이너들의 해외매장 운영은 해외컬렉 션 참가와 병행해 이뤄진다.
각개격파식 해외진출 험난한 여정
지난 93년부터 파리, 밀라노, 뉴욕, 도쿄 등 세계 4대 컬렉션에 활발히 참가하기 시작한 국내 디자이너들의 분전은 최근 더욱 두드러진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들 디자이너들의 해외시장 진출이 철저한 각개약진식의 개 인 위주라는 점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이미지 관리 차원이나 자기만족이 아닌 합리적 유통시스템에 승부를 건 수출전략과 정부 기업의 연계를 통 한 마케팅력이 보강되지 않는 한 이들의 해외진출은 아직도 험난한 여정 일 수밖에 없다.
한편 우리 브랜드의 해외시장 몰두는 역설적으로 외국상품에만 눈을 돌리 는 국내 소비자들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패배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 래서 지난해 돌풍을 일으킨 청바지 ‘닉스’와 올해 그 뒤를 이은 중저가 청바지 ‘잠뱅이’ 선풍은 반갑다.
아직도 패션업계의 발을 붙잡고 있는 백화점의 횡포, 유통구조의 빈약함 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외국처럼 정부와 기업의 협조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패션업계의 힘든 몸부림은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른다. 고군분투하 는 한국 패션의 화이팅을 기대한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