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김현철, 금융실명제 우롱

(사진/김현철씨가 비실명계좌를 운영했던 것으로 확인된 외환은행 서울방송지점. 60억원을 입금했다가 `10여일 만에 인출해갔다.)

김현철씨가 지난 93년 6월 말 측근인 박태중씨를 통해 관리해 온 서울 여 의도 외환은행 서울방송지점(당시 출장소)의 비실명계좌에서 60억원의 뭉 칫돈을 급히 인출해 간 것으로 확인돼 현철씨가 금융실명제 실시계획을 사전에 알고 비자금을 은닉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현철씨가 박태중, 이성호 전 대호건설 사장 등 측근들을 통해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1백여개의 가차명계좌에 은닉한 혐의를 포착하고 계좌추 적을 벌이고 있는 검찰도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외환은행을 상대로 관련 계좌에 대한 조사를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출장소에 60억’ 은행직원들에 화제

박씨가 문제의 비실명계좌에 60억원을 입금시킨 것은 인출 10여일 전인 9 2년 6월 중순께. “60억원은 수억원에서 수천만원, 1백만원짜리까지 여러 장의 수표로 입금됐다. 출장소로서는 대단히 큰 금액이었기 때문에 직원 들 간에 화제가 됐다. 박 국장(박태중씨가 대선 당시 나라사랑실천운동본 부 사무국장이어서 주변에서 그를 국장이라 불렀다)은 입금 당시부터 오 래 맡기지는 못할 돈이라고 말했지만 막상 인출할때는 은행 간부들 이 모두 아쉬워했다.” 은행 관계자의 증언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박씨 는 인출된 60억원을 모두 수억원짜리 수표로 나눠 찾아갔는데, 당시 창구 직원들 사이에서는 `‘눈먼 돈이 빠져나간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 문제의 비실명계좌는 보통예금통장. 정상적인 돈이라면 단 며칠 간이라도 이자가 거의 없는 보통예금에 넣어 두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

박씨가 외환은행 서울방송출장소와 거래를 시작한 것은 92년 12월 대통령 선거 전후로, 60억원이 입출금된 계좌 외에도 서너개의 비실명계좌가 더 있었다. 거래 시작 당시부터 은행 창구직원들 사이에서는 박씨가 현철씨 의 대리인이라는 것이 공지의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치자금이니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마라”는 간부들의 지시에 따라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박 씨는 통장 개설 뒤 한번에 1억~2억원씩 뭉칫돈을 거래했다. 박씨가 직접 은행에 온 적은 한번 정도밖에 없고 대부분은 여의도 한서오피스텔 12층 에 있었던 현철씨 사무실 여직원들이 오거나 은행직원들이 직접 사무실에 가서 돈을 갖다주거나 받아왔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씨가 60억원을 인출한 93년 6월말은 금융실명제 시행을 위한 정부의 실 무준비작업이 극비리에 시작된 시점이다. 93년 8월12일 금융실명제가 전 격 단행되기 바로 한달 반 전이다. 7월부터는 김용진 재무부 세제실장(전 과기처 장관)을 팀장으로 재무부, 한국개발연구원, 국세청 직원들로 구성 된 실무작업팀이 과천과 강남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합숙에 들어갔다. 당 시 현철씨는 현 정부의 국정 전반에 대한 기획 및 조정작업에 깊숙이 개 입하고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터였다.


“대선 잉여금과 당선축하금 중 일부”

현철씨가 실명제 계획을 미리 알고 비자금을 은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대통령의 대표적인 경제개혁 조 처라는 점에서 이같은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대통령의 대표적인 경제개혁 조처라는 점에서 이같은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대통령의 아들이 금융실명제를 형해화시킨 ‘장본인’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것은 뻔한 일 이다.

김씨의 비실명계좌들이 개설된 시점은 92년 말 대선 전후. 비실명계좌를 드나든 자금들은 현철씨가 92년 말 대선에서 쓰고 남은 잉여금과 대선 뒤 에 기업체들로부터 받은 당선축하금 중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현철씨 는 박씨를 통해 외환은행 외에도 모은행 마포지점 등 여러 다른 은행에도 가차명계좌를 갖고 있었다. “당시 외환은행 간부들이 박씨의 운용자금이 다른 은행에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예금유치를 위해 로비를 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출장소에 거액의 자금이 드나들 경우 금방 드러나 곤란하다 며 박씨쪽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안다.”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

곽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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