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재계·노동계 정치자금 근절 한마음

(사진/장충공원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노동절 행사. 정경유착을 근절하자는 노동자의 염원을 담은 정.재계 인물의 캐릭터가 등장했다.)

“선거자금 좀 그만 걷어가라!” <한겨레21>의 예고(157호)에 따라 재계 는 지난 8일 지금까지 정치권의 대선자금 모금관행에 조용한 반기를 들었 다. 정치자금에 관한 한 일체 언급을 않는다는 재계의 금기가 일단 깨진 것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월례회의를 통해 “앞으로 돈 안드는 선거를 함으로써 기업인들이 선거로 인해 더이상 불 미스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고 밝혔다. 손병두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이와 함께 “학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치권의 제도개선 작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재계도 노 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전경련의 선언은 이미 예고된 것처럼 오는1 6일 부설 자유기업센터 주최로 열리는 ‘돈 적게 드는 정치풍토 조성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통해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재계, 정책토론회 열어 정치권에 메시지 전달

그렇다고 해서 재계가 앞으로 있을 정치권의 선거자금 요구에 정면에서 거부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치권 특히 여권의 요청은 피 하기 힘든 압력인데다 정경유착이 가져오는 달콤한 열매를 기대하는 기업 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기업이 일단 정치권에 줄을 대기 시작하면 다른 기업도 보험성 자금을 내놓게 돼 이런 약속은 쉽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성격을 갖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경 련이 이런 식으로나마 재계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정치권에 주는 무게는 결코 작지 않다. 신한국당 대선주자의 한 측근은 “이제 어차피 그런(합법적인 선거자금 모금) 방향으로 나가야하 는 것 아니냐”면서도 “이제 손을 벌리기가 더 부담스러워졌다”는 반응 을 보였다.

한편 그동안 재계의 정치자금 제공에 가장 큰 거부감을 보여온 노동계는 이번 전경련의 선언에 대해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환영할 만한 일” 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노총 최대열 홍보국장은 “기업이 정치권에 선거자 금으로 내는 돈은 결국 노동자들 몫을 훔친 것 아니냐”며 “뒤늦게나마 재계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와 함께 전경련의 이 선언이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겨지도록 철저한 감시를 산하 노조에 당부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산하 노조에 각각 보낸 올 임단협 지침서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무' 조항을 단체협약에 명시하도록 시달했다. 기업이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권 과 유착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단협에 명문화하거나, 최소한 비자금 조성 여부가 드러나도록 기업의 회계정보를 노동자들에게 공개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노동계의 이런 요구는, 그것이 비록 단협에 명시되지는 않더라도 요구 자 체만으로도 기업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이 “ 정치권에 건네지는 자금으로 임금을 더 올려줘야 하지 않았느냐”고 반발 하고 나설 경우 더이상 대응할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사회개혁선언 통해 정경유척에 쐐기

민주노총은 특히 이달말께 `사회개혁선언'을 통해 정경유착 근절을 비롯 한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의 청산을 쟁점화함으로써 앞으로는 불법 선거자 금이 오가지 못하는 사회풍토를 만들어놓겠다고 벼르고 있다.

기업들도 노동계의 이런 요구가 무조건 싫지만은 않다는 반응이다. 대우 그룹의 한 관계자는 “노조가 이같은 요구를 한다고 해서 단협에 명시하 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전망하면서도 “정치권이나 지역의 유지들이 기업에 마구 손을 내미는 관행을 타파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될 것”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정치권이 정치자금법 개정작업에 나설 경우 정치권과 재계, 노동계 모두가 동의하는 모범답안이 마련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 특히 노동계는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규정'이 지난 3월 노동법 개정으 로 폐지됐으면서도, 여전히 노조의 정치자금 지원을 금지한 정치자금법 조항의 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 조항이 폐지돼 노조의 실질적인 정치 참여가 이루어질 경우 사용자 집단도 그에 맞설 자구책을 강구할 것 이기 때문이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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