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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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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 패션평론가
“사람이 만든 문화는 모두 ‘즐긴다’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사회학자 보이진스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문화는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모양이 다. 패션을 뜻하는 말인 ‘way of life’, ‘style de vie’(불어), ‘mo dus vivendi’(이탈리아어)도 모두 사람살이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 다. 패션은 바로 우리의 사는 모습인 것이다.
‘패션’(fashion)의 어원은 고대 라틴어 ‘factio’에서 찾는다. ‘fact io’란 원래 ‘행위, 행동, 동작’ 또는 ‘움직인다, 살아있다’라는 뜻 이고 나아가 ‘새롭게 한다. 창조한다’라고 쓰이기도 한다. 패션은 이처 럼 바로 ‘변화’다. ‘패션’을 일컫는 말은 이외에도 많다. 모드(mode) , 보그(vogue), 붐(boom), 크레이즈(craze), 팬(fan), 패드(fad). 모두 빠르게 바뀌는 유행의 바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패션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그 시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 삶의 모습뿐 아니라 변 하는 모양과 속도 뒤에 숨은 속뜻을 가려 읽을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패션은 옷감 짜는 기술, 장사일 뿐 아니라 당대 사회의 이상과 현실을 비 추는 거울이기도 한 때문이다.
패션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17세기 말에서 근대 패션의 문을 열었던 디자이너 워드(C.F. Worth, 1826~95)의 시대까지 패션이라는 말이 뿌리내 리고 꽃을 피우기까지는 프랑스에서조차 3백여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 야했다. 그에 비애 패션역사 1백년에 지나지 않는 우리 패션은 정말 엄청 (!) 빨리 달려왔다.
프랑스 패션역사 3백년, 미국의 2백년, 일본의 1백년에 비교해서 우리 역 사는 길게 1백년(1895년 고종임금의 복제칙령 반포 기준)이요, 짧게는 40 년(1956년 노라노씨의 첫 패션쇼 기준)이다. 그렇게 짧지만은 않지만 우 리의 ‘패션과 문화’ 수준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그 까닭은 물건너 온 패션이 도입과정에서 뿌리를 잘못 내려 ‘분재 안의 꽃나무’처럼 일반 대중과 유리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Too rich, too soon’ - 너무 빨리 부자가 된 나라 한국. 패션문화도 우리 사회의 모양 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나라의 것은 모두 좋다는 문화사대주의의 잘 못된 생각으로 일그러져 껍데기 문화로 어지러운 오늘. 문화경영, 문화수 출의 시대에 끝없이 외국 것만 좇아, 우리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우습게 여기는 오늘. 우리 문화의 앞날은 캄캄하기만 하다. 패션문화 또한 다르 지 않다.
지난해 서울을 다녀간 파리콜렉션의 자크 뮤클리에 회장이 남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well global, better native)이라는 말은 그래서 값지다.
“패션문화는 맨 위, 맨 앞에 우뚝 선 사람을 선두로 세모꼴 형태로 만들 어진다”는 프랑스 패션평론가 르네 질라트(Rene Gilard)의 <욕망의 세모 꼴> 이야기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패션문화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 눔의 모양이며, 어울림에서 그 바른 뜻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바른 옷, 바른 삶이 바로 패션이다. 옷을 제대로 입는다는 것은 먼저 제 모습, 제 몸매에 걸맞도록 차려입기요, 다음 제 주머니 넉넉하게 차려입기며, 끝으로 탁 튀어서 홀로 잘나기보다는 이웃과 더불어 잘 어울 려서 좋은 모양 차리기다. 이는 착장규정(着裝規定)일 뿐 아니라 올바른 사람살이의 올바른 생활규정이기도 하다. 서양인형처럼 더 말라보이고 길 어보이려는 못난 마음으로 검정옷과 검정 빛깔 화장에 얼룩덜룩 물들인 물감머리며 너덜거리는 쫄티바지, 블랙진에 백금을 입혀 한 장에 1백만원 씩하는 청바지 등 공주병·왕자병의 몸살을 앓는 요즘 사람들의 ‘거품패 션’을 지켜볼 때 착잡하기만 하다. 일찍이 춘추전국시대의 순자(筍子)가 그의 ‘말세론’에서 따끔하게 던진 지적. 남성의 여성화- 용부(容婦), 음란하고 퇴폐적인 풍속- 속음(俗淫),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 기복조(基 服組), 광기의 음악- 성악험(聲樂險), 나라를 위한 마음이 없는- 지리(志 利). 현재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패션은 신데렐라 유리구두의 꿈으로 그리는 시대정신이며 이상이라는 지 적은 은 언제나 옳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