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박태준 여의주 물고 복귀

(사진/지난 5월8일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박태준씨. 보궐선거보다는 대선에 미칠 그의 영향력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선자금의 회오리 속에서도 포항 북구 보궐선거는 전국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물론 그 스포트라이트 중앙에는 포철신화의 상징적 인물인 박태준 전 민자당대표 최고위원이 있다.

이번 보궐선거에 대한 관심은 박씨의 당선 여부와 이를 통한 명예회복 여 부에 있지 않다. 이 문제는 관심 밖이 돼버린 지 이미 오래고 그 대신 정 치적으로 부활한 박씨가 연말 대선에서 어떤 입장을, 그리고 어떤 구실을 할 것인지로 눈길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야권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물론 박씨 탄압의 주역이었던 신한국당마저 주판알 튀기기에 여 념이 없다.


대선 영향력 행사에 정치권 관심 집중

이런 사정은 박씨의 귀국에 쏠린 전국적인 시선, 그리고 언론과의 인터뷰 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연말 대선출마 여부’ 등을 묻는 질문을 통해 잘 나타난다. 이와 함께 박씨를 출마시키기 위해 자민련이 박준규, 박철 언 의원과 최재욱 전 의원 등을 통해 수차례씩이나 일본에 보내 설득한 일이나 국민회의가 박씨와 제휴하기 위해 제시할 지분내용을 흘리고 있는 등도 그 좋은 실례다. 야권은 이미 그를 대선공조 또는 야권후보단일화과 정의 한축으로 이미 상정해 놓고 있는 셈이다.

자신에게 쏠리는 따가운 정치적 시선을 의식한 박씨는 일단 자신의 대선 역할론에 대해 언급을 피한다. 박씨는 대권까지 노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 에 “보선출마하고 대권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대권과 결부시키는 것 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짐짓 역정을 냈다. 그러나 박씨의 말 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박씨가 보선이란 1차관문을 통과 한 뒤 대선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는 바로 정치권의 최대 관심 사다.

박씨의 영향력은 일단 TK(대구·경북)의 반신한국당 정서를 확산시키고 하나로 결집하는 데 강력한 매개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비롯 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당은 이미 박씨의 출마표명에 따라 공천을 포기한 상태다.

비록 두 당은 박씨와 연대한다는 원칙에는 생각이 일치하지만 각자의 정 치적 계산은 다르다. 국민회의는 박씨를 DJ(김대중)와 JP(김종필)의 DJP 연합에 힘을 보태주는 종속변수로 보고 있다. 국민회의 박지원 기획조정 실장은 “김대중 김종필 총재와 박태준씨가 연합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 회의와 자민련의 공조가 중심이 돼야 한다”며 `‘선DJP연합’을 강조했 다. 국민회의쪽 입장에서는 DJ로 대선후보가 단일화된 뒤 TJ(박태준)가 여기에 가세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범야권연대로 승화시키자는 계산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박씨를 끌어들이기 위한 국민회의쪽의 노력은 오래 전부터 시작됐으며 그 역할은 이종찬 부총재가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에 대해 어느 정도 부채감을 느껴온 이 부총재는 일본에 머물고 있던 박씨와 전화연락을 갖고 ‘최대한의 지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제 지지 선언으로 자민련에 보답

박씨에 대한 자민련의 공들이기는 국민회의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TK세 력을 확실히 자민련의 장악 아래 두고 내각제를 조기에 실현시키기 위해 서는 박씨와의 연대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박씨 끌어들이기에 필사적이었 다.

박씨도 자민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지난 5월8일 포항 기자회견에 서 내각제 지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그동안 자신에 대한 자민련의 `‘애정 표시’에 단단히 보답했다. 박씨는 “내각책임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국 민의 절대적 지지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하나 내각책임제를 하긴 해야 할 것”이라고 내각제 소신을 거듭 강조했다. 박씨의 이 언급에 자민련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앞으로 박 전회장과 내각제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협의를 해나갈 것”이라며 자민련과 박씨의 연대를 기정사실화하는 발빠 른 행보를 보여줬다.

자민련은 박씨의 내각제 지지발언을 계기로 여권의 내각제 지지자들을 충 동해 대선 전에 내각제 실시를 기정사실화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박 씨의 내각제 지지발언은 야권단일후보와 내각제 당론채택을 일괄타결하려 는 국민회의에 대한 유용한 압박수단으로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민련 일부에서는 박씨를 야권의 제3후보로 내세우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DJ와 JP 사이의 야권단일화가 안 될 경우 그 대안으로서 박씨를 추 대하자는 것이다. 자민련 충청권 출신의 한 초선의원은 “DJP 단일화가 안 될 경우 JP는 당연히 TJ를 제3의 후보로 밀지 않겠느냐”며 “포철신 화를 창조한 TJ를 `‘경제대통령’으로 잘 포장하면 여권의 어느 후보와 겨뤄도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내에는 박씨가 이번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도 바로 이 런 제3후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들은 박씨가 단순히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복귀하지는 않았을 것 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박씨가 보선출마 이유로 “최근의 경제위기에 대 해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경제개발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경제가 어 려운 시기에 봉사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며 현재의 경제난을 언급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경제부흥을 자신의 이미지로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회의의 한 의원은 박태준씨의 보선출마와 조순 서울시장의 최근 움직 임을 다음과 같이 흥미롭게 비교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잠재적인 제3후보들이 모두 욕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DJ와 JP의 싸움이 결국 사무 라이(박태준씨 지칭)와 산신령(조순 시장 지칭)의 싸움으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DJ와 JP가 서로 양보하지 않다가 결국에는 제3후보 그룹인 박씨와 조 시장에게 대선후보를 물려줘야 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수성 승천하면 신한국과 연대도 가능

물론 박씨가 야권하고만 연대한다는 보장은 없다. 일부에서는 만약 신한 국당 대선후보가 이수성 고문으로 확정되고 야당단일후보가 DJ로 되는 경 우에는 박씨가 이 고문과 손잡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고 문이 평소 박씨와 친분이 있다는 점과 같은 TK라는 점 때문이다.

박씨는 이미 혼미한 대선국면에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92 년 대선 때 우유부단한 처신과 `잘못된 ‘선택’으로 정치적 낭패를 맛본 박씨가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대선국면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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