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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돈벌이에 한국이 멍든다

(사진/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전근대적 노무관리로 현지인의 불만을 사는 일이 많다. 한국과 베트남의 합작회사에서 텔레비전을 생산하고 있다.)

해외 현지 한국기업의 노동자들은 지난 5월1일 ‘서글픈’노동절을 맞아 야 했다. 현지 진출 한국기업의 최저임금 위반, 노조파괴,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추행 논란 등이 인도네시아, 온두라스, 멕시코, 베트남 등지에서 잇따랐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인근 공단지역인 탕그랑의 수십개 한국기업 노동 자들은 노동절을 파업 속에서 보냈다. 이들이 이렇게 ‘분노한 이유’는 한국기업들이 최저임금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지 노동단 체의 주장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신문 <피가로>는 현지 한인회가 오히 려 “인도네시아 정부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개입하지 않으면 현 지 투자기업들을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신문은 한인회가 구체적 이전 국가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이 가장 유력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업철수 내세우며 구사대까지 동원

또 남미 온두라스 수출자유지역에 위치한 한국기업 ‘기미통상’ 노동자 들은 노동절에도 회사의 어용노조 결성기도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 기미통상의 경우 지난 96년 가을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회사는 곧 이에 대한 보복행위로 60명의 노동자를 대량 해고했다. 노동자들은 이런 회사 쪽에 대항해 곧바로 파업에 들어갔다. 이후 노동조합은 노조 합법화를 위 해 6개월간의 냉각기간을 갖자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지난 4월12일로 냉 각기간이 끝나자 회사쪽은 ‘노동조합 활동 인정’이라는 노동자들의 바 람을 저버리고 노조와해 차원에서 적극적인 활동가들을 다시 해고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어용노조 결성 움직임을 보였다. 또 ‘구사대’ 구실을 하 는 노조파괴자를 현장에 투입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런 소식은 온 두라스 국외로 퍼졌고, 미국 섬유노동조합연맹마저 “한국기업들의 문제 는 온두라스지역 내에서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 들 기업에서 일하는 온두라스 노동자들도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싫 다”면서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한다 고 미 섬유노련은 전한다.

이 밖에 멕시코 현지의 한국기업 효승에서는 지난 3월 초 발생한 여성추 행 문제로 계속 시끄러운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샌디에 이고의 한 민간단체는 인터넷에 “현지 대우전자에 생산부품 전량을 납품 하는 하청업체인 한국기업 효승에서 멕시코 여성 노동자들이 한국 관리자 들로부터 성적, 육체적 학대를 당했다”는 자료를 올렸다.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을 위한 지지위원회’(SCMW)라는 이 단체는 또 “이들 한국 관리 들은 심지어 이를 거부할 경우 일자리를 빼앗겠다고까지 위협했다”고 주 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성희롱 폭행사건은 16건이나 접수됐다. 이에 대해 효승쪽은 “문화적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노동자쪽은 관리 자에 대한 고소 고발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업의 반노동자적 행태는 사회주의 베트남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촉 구하게 만들기도 했다. 베트남 총노동조합연합이 호치민시에 위치한 삼양 통상의 한국인 관리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노 동절을 맞아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삼양은 지난해에도 노 동자 구타문제로 한국인 관리인이 형사재판을 받았던 기업이다. 사회주의 하에서 노조가 파업을 조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임을 감안할 때, 삼 양에서 벌어진 ‘갈등’을 베트남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심각하게 받아들 이는지 쉽게 알 수 있다.


‘70년대식 노무관리’로 이윤추구 혈안

이렇게 해외진출 한국기업이 각국 노동자에게 ‘우울한 노동절’을 ‘선 물’한 배경은 하나같이 똑같다. ‘70년대 한국식 노무관리’를 해외에서 되풀이하려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외국기업의 현지화에는 5 년의 세월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도 이 기간 동안 현지문화, 언어, 생활관습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그런 데 인권의 무풍지대로 값싼 노동력을 찾아가는 한국기업인들은 현지에서 인권운동이나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민간단체들에 의해 1차적인 감시의 대 상이 되고 있다. 이런 몇몇 해외진출 기업들의 ‘70년대식 노무관리’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도덕성이 마비된 채 기업 이윤만을 추구하며 뻗 어가는 나라”로 굳혀버릴 수 있다는 것이 현지 소식통들의 충고이다.

만국의 노동자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노동절에 벌어진 해외 한국기업에 대 한 노동자들의 규탄시위는 바로 이들에 대한 ‘한국 노동자 시민의 강고 한 연대’를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미경/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간사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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