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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죽음이 떠도는 ‘소각장의 나라’

(사진/다이옥신 비상사태 속에서도 건설중인 도쿄도 소각장. 굴뚝은 210m로 높여 연기가 안 보인다.)

“죽음의 재 다이옥신에 대한 종합 대책을 다시 세워라.”

지난 5월10일 일본 도쿄에 인접한 사이타마현 사야마시에선 1백여명의 주 민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모임 제목은 ‘다이옥신 오염을 없애기 위한 세미나’. 열띤 토론으로 이어진 이 모임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두가지였 다. 첫째는 주민들이 ‘다이옥신 네트워크’라는 환경단체를 자발적으로 초청해 이뤄졌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지난 4월부터 시행된 ‘대기오염 방 지법’을 검토하는 자리라는 점이다.


규정강화 등 대책도 미봉책일 뿐

이날 초점이 된 ‘대기오염방지법’은 다이옥신(플라스틱소각, 종이표백, 금속정련을 할 때 나오는 유기염소 화합물 총칭)을 발암 가능성이 높은 유해 대기오염물질에 포함시켰다. 또 이 법은 신설되는 쓰레기 소각장의 경우 다이옥신 배출농도를 1㎥당 10나노그램(10억분의 1그램)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기존 시설의 경우도 배출농도가 1㎥당 80나노그램 이상일 때는 긴급대책을 강구할 것을 명문화했다. 이에 따라 4월 들어 세 곳의 소각장이 배출농도 초과로 가동이 중단됐고, 현재 2곳이 가동 중단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이 법의 시행으로 전국적으로 2천여개의 소각장을 보유한 ‘소각장 왕국 ’ 일본 주민들이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일본 내 전반적인 여론은 이 조처가 심각한 오염상태에 비춰볼 때 이미 너무 늦은 것이며, 그나마 현재의 다이옥신 오염 극복에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우세하 다.

이런 비판은 몇가지 통계만 살펴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 2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위험도 3(최고 1∼최저 5)에서 위험도 1로 독성을 높게 규정한 다이옥신의 독성은 다이옥신 중 파라지오키신은 치사량이 청 산가리보다 독성이 1만배나 강하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이 원숭이 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여성 불임증의 주요 원인인 자궁내막증이 다 이옥신에 의한 것이란 결론을 내린 상태다. 그런데 오사카 의과대학의 조 사결과에 의하면 20~30대 일본 여성의 20% 가량이 자궁 내막증 증상이 있 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30년 전 약 1%와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다. 또 모유에 포함된 다이옥신 농도는 일본이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높다 .

이 밖에 사이타마현의 경우는 소각장 밀집지역의 유아사망률이 현 평균보 다 훨씬 높게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환경단체인 ‘멈추게 하자. 다이옥 신오염-사이타마현 실행위원회’가 정리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지역의 유아사망률은 70년대만 해도 지역 평균보다 훨씬 낮았다. 이 모든 수치는 바로 일본의 무분별한 소각장 정책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지난 60년 경제성장기에 도입된 소각장 정책은 당시로서는 ‘그럴듯한’ 정책이었다. 쓰레기매립은 넓은 땅을 필요로 했으나 태워없애는 것은 간 단해보였다. 이는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80년대 소각장에서 배출되는 다이옥신이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증 거가 속출하면서 다른 선진국들은 급히 쓰레기처리 정책을 바꿨다. 그러 나 일본만은 계속 소각장 정책을 밀고나갔다. 결국 일본은 현재 서방선진 7개국(G7) 전체 쓰레기소각장의 70%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

이에 따라 일본은 전체 쓰레기의 70%에 해당하는 3천8백만t 가량을 소각 에 의존한다. 이는 미국의 1.3배이며, 독일과 비교하면 4배에 이른다. 소 각장 규모 역시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작기 때문에 불완전 연소로 인해 다이옥신의 다량 발생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연간 약 1.3kg에서 1.4kg에 이르는 다이옥신이 배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일본 환경청의 분석에 의하면, 그 결과 도시인의 경우 다이옥신을 하루 성인체중 1kg당 0.52~3.53피코그램, 농촌은 0.29~3.29피코그램을 들 이마신다. 특히 소각장 주변의 주민은 이보다 최고 6배에 이르는 1.79~5. 0피코그램을 마신다(피코그램=1조분의 1그램). 70kg 성인이라면 최고 3백 50피코그램을 흡입하는 셈이다. 이는 지난 90년 세계보건기구(WHO) 유럽 지역사무국이 정한 인체 섭취허용한계치 10피코그램이나 독일의 목표치 1 피코그램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높은 것이다. 또 일본 기준(83년 후생성 의 기준 1백피코그램, 96년 10피코그램)과 비교해도 매우 높다.


소각장 만능주의가 빚은 실패의 교훈

지난 5월10일 ‘다이옥신 오염을 없애기 위한 세미나’에서는 ‘대기오염 방지법’이 실질적인 처벌규정을 갖추지 못한 점 등이 비판대에 올랐다. 하지만 모임 참석자들은 다이옥신 문제 해결은 시민, 기업, 정부가 총체 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 등도 아울러 지적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총체적 해결’이 일본 정부의 정책에 의해 무시되 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1구 1소각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도쿄도의 경우를 살펴보자. 도쿄도는 ‘다이옥신 비상 상태’ 속에서도 현재 3곳에 쓰레기 소각장을 건설하고 있다. “당장은 쓰레기가 다소 감소하는 추세 지만 경기가 활성화되면 언제 다시 증가할지 모른다는 것”이 담당자의 설명이다. 특히 도심 한가운데 괴물처럼 우뚝 솟은 도쿄 이케부쿠로 소각 장 굴뚝의 높이는 2백10m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이를 두고 도쿄가 쓰레기 를 태우면서도 굴뚝을 높여 “시커먼 연기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된다” 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이같은 우려는 한국의 쓰레기 정책에도 적용된다. 곳곳에 쓰레기소각장이 등장한 한국도 ‘다이옥신 지옥’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특히 정책입안자들이 일본을 기준으로 주변 주민들을 설득하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본의 쓰레기소각장 정책은 우리의 모범이 아 니라 ‘실패의 교훈’일 뿐이기 때문이다.

도쿄=구영구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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