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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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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애/ 영화평론가
감독 윤인호/출연 김의성,김정균
제이콤의 저예산영화 프로젝트 1호인 윤인호 감독의 <바리케이드>는 어느 새 한국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35mm 장편 극영화 속에 담아냈다. 그동안 문학과 연극, 단편영화의 영역에서 이런 주제가 간간이 다뤄지곤 했지만 극장상영용 상업영화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그것도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새삼스러 운 일이었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바리케이드>라는 상징적인 영화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어느새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피지배자에서 지배자로 위치가 바뀌어버린 우리 사회가 재빨리 만들어낸 또하나의 위계질서, 새 로운 경계와 구획의 예리한 단면을 볼 수 있을까?
<바리케이드>의 배경은 변두리에 위치한 허름하고 영세한 세탁공장. 이곳 의 중심인물들은 한식과 용승, 그리고 불법체류 노동자들인 칸과 자키, 부토이다. 영화는 우리네 부모세대들의 아메리칸 드림과 외국인 노동자들 의 코리안 드림을 대위법적으로 병치시키는 기본 골격을 세우고 이 안에 한식과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 용승과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의 관 계라는 서로 다른 두개의 흐름을 전개시켜 유난히도 경계나누기와 구획짓 기에 민감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투영시키고자 한다.
본국인 방글라데시에서 대학까지 버젓이 나왔지만 한국에서는 형편없이 천한 대우를 받는 칸, 어눌한 한국말 때문에 구박당하고 어리숙한 천진함 으로 인해 멸시당하지만 동생의 병원비를 벌어야 된다는 생각에만 집착하 는 자키, 칸과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한 줄기 희망을 걸고 살아가지만 한국인 사장에 의해 강간당하는 부토. 한식의 눈에는 이들이 지닌 코리안 드림이 아버지를 유혹하고 아버지를 배신했던 아메리칸 드림과 오버랩된 다.
7년 전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허황한 꿈을 안고 미국으로 떠났지만 치명적 인 허리병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온 아버지. 하지만 아직까지도 자기를 능욕한 미국을 잊지 못하고 빨간 말보로 담배와 고기반찬 타령만 하는 아 버지. 한식에게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은 아버지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 이 되고 일그러진 아버지의 모습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이 해하는 열쇠가 된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용승은 자신의 처지가 더 갈래야 갈 데도 없는 가장 밑바닥이라는 비관에 빠져 매사에 거칠고 폭력적으로 대응한다. 용 승에게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기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들임과 동시에 자기 내면의 분노를 터뜨릴 수 있는 대상화된 타자들이다. 그는 이 외국인 노동자들과 자신 사이에 견고한 벽을 쌓고 그들을 철저하게 열 등한 존재들로 취급한다. 그러나 그는 차츰 이들과 자신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바리케이드>가 거둔 최대의 성과는 어찌됐든 대중문화의 영역 속에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문제라는 첨예한 사회문제를 끌어들였고, 이들에 대 한 연민과 이해의 길을 터놓았다는 데 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를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한 틀로 설정된 아메리칸 드림과 코리안 드림의 대위법,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동질성에 대한 강조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한국사회 영입으로 인한 혼란과 이질화, 좀더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얽혀들어가는 한국사회의 노동문제를 평면화시키 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물론 대기업이 기획한 저예산영화 프로젝트,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유통경 로를 통해 배급되고 있는 이 영화의 한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 다. 하지만 이 영화가 추구하고자 한 한국사회 내면의 바리케이드 제거작 업이 자칫 잘못해서 엄연히 존재하는 아메리칸 드림과 코리안 드림의 차 이,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차이를 제거하고, 외국인 노동자들 을 따뜻하게 감싸안으려는 노력이 우리의 시선으로 그들을 재단하고 균질 화시키는 데로 나아가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