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칼럼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DEPECHE MODE, ULTRA.

고딕(혹은 고딕 록)이라는 음악이 있다. 펑크가 거리를 휩쓸다가 소리소 문없이 사라지고 난 뒤인 80년대 초반이 시대적 배경이고, 이때 지하실의 나이트클럽에 시커먼 옷을 입고 시체처럼 은둔하던 일군의 야간생활자 무 리들이 만들어내고 또 즐기던 음악이다. 고딕은 영국적인 너무나도 영국 적인 현상인 ‘청년 하위문화’의 일종이 되었고, 아직도 구미 각지에서 ‘컬트’적 현상을 낳고 있다. 고딕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세계사 시간에 배운 게르만족의 하나인 고트(goth)족, 미술사 시간에 배운 11세기의 서 양 건축양식, 그리고 문학사 시간에 배운 19세기 후기 낭만주의의 괴기소 설 정도가 나의 교양이다. 어쨌든 고딕이란 말이 음습하고 기괴한 분위기 와 반서양문명, 정확히 말하면 반기독교문명의 상징이라는 점은 대충 알 듯하다.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오늘 소개할 두 음 반을 고딕 문화와 관련해서 듣는 것도 좋을 듯하다.

디페시 모드는 ‘뉴 로맨틱스’라고 불리던 예쁘장한 틴아이돌 그룹들의 후발주자로 시작하였지만, 외모에만 승부를 걸지 않고 신시사이저의 능수 능란한 사용으로 신스팝(Synth Pop)이라는 말을 팝의 한 장르로 정착시킨 밴드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고딕의 음울한 분위기를 전자음향으로 표 현했고, 그 탓에 본의 아니게 고딕 신스팝(Gothic Synth Pop)이라는 복잡 한 수식어를 탄생시켰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이들은 이번 신보에서 특유 의 어둡고 ‘고혹적’(이는 이들의 레코드 홍보 카피의 핵심이다)인 분위 기를 이어나가면서 힙합, 블루스, 고스펠까지도 손을 뻗치고 있다. 힙합 리듬의 <베럴 오브 어 건>(Barrel of a Gun) 같은 곡은 비오고 기분 우울 한 날 청승 떨면서 인생의 깊은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곡이다.

반면 닉 케이브는 엽기적 가사와 해괴망칙한 음악을 울부짖던 오스트레일 리아의 밴드 버스데이 파티(Birthday Party)의 리더 출신이고, 영화 <베 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가 여자를 만나러 간 클럽에서 유인원 같은 인 상으로 악을 썼던 그 인물이다. 2년 전에도 <살인 발라드>(Murder Ballad )라는 앨범에서 온갖 엽기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의 비범한 정신세계를 조 명하기 위해 어떤 평론가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까지 동원했을 정도이다 . ‘비인간적인 면도 인간성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이 그 주장의 요체 였던 듯하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밥 딜런이나 레오나드 코헨 등의 싱어 송라이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차분하고 부드럽다. 소녀를 교살하는 장면을 묘사하던 가사는 검은 머리칼을 쓰다듬는 가사로 바뀌었고, 박쥐 울음소 리 같은 기괴한 사운드 이펙트가 난무하던 사운드는 피아노와 통기타 위 주의 사운드로 바뀌었다. 변절 어쩌구 하는 건 자유다. 그렇지만 적어도 닉 케이브는 자신의 현재의 감정이 아닌 것을 표현하지는 않는 듯하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무력하면 무력한 대로. 고독하면 고독한 대로. 나 이먹으면 나이먹는 대로. 한마디로, 하고 싶은 대로.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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