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
|---|
(사진/"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 한다." 신세대 패션은 하나의 유행이 속도감 있게 다른 유행을 빚어내며 공존한다.)
5월11일 일요일 서울극장 2관. 영화 <비트>가 막 끝나고 객석에 불이 들 어왔다. 객석은 영화 속 이민(정우성)처럼 19~21세 정도의 20대 초반 청 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등에는 하나같이 이스트팩을 매고 있어 단체관람 객 같은 인상마저 줬다. 영화는 오토바이에서 양팔을 벌리고 온몸으로 바 람을 맞으며 도로를 질주하는 민의 클로즈업으로 끝난다. 재미있다. 특히 민과 비슷한 또래들에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한 여성관객은 손수건으 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
이 영화가 비수기임에도 개봉 9일 만에 24만(서울 10만8천)의 관객을 동 원하며 신세대 팬들을 끌어들인 이유는 이미 신문이나 영화잡지를 통해 소개된 것처럼 인기만화라는 프리미엄에다 스텝프린팅 기법, 들고 찍기 등 형식적 완성도의 덕을 많이 봤지만,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다룬 그 내용 때문일 것이다. 관객들은 ‘X나게’, ‘다구리’ 등 자신들 만이 쓰는 비어와 은어가 영화라는 ‘공식 공간’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 지자 자지러진다. 그 언어를 이해하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 같다. 스무살.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를 극단적으로 치르는 민, 로미, 태수의 이 야기는 뽀다구 나는 뿅카(오토바이, 구체적으로 HONDA CBR 600)처럼 빠르 게 전개된다. 한마디로 <비트>는 제목처럼 눈부신 속도와 음표 위에 점을 찍은 스타카토 같은 불안정한 비트로 표현할 수 있다.
간결한 논리로 자신의 감성 표현한다
‘두드리다’, ‘때려 눕히다’, ‘이기다’, ‘박자’ 등의 뜻을 지닌 비트는 영화가 아니어도 이미 오늘날 신세대의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80 년대 젊은이들을 관통하는 코드는 ‘논리’였다. 80년대 젊은이들의 똑소 리나는 논리력은 기성세대들에겐 때론 당돌함과 버르장머리 없음으로 비 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신세대들에게 ‘논리’란 축축 늘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하품나는 것일 뿐이다. 요즘 신세대들의 대화는 짧고 간결하다. 논리적이기보단 감각적인 분절음(비트)으로 이뤄 진다. 대화도 “싫어” “왜?” “그냥”. 이런 식이다. 그들의 의식상태 처럼. 설교를 듣고 싶지도, 남을 설득하고 싶지도 않다. 주주클럽의 노래 처럼 ‘나는 나’일 뿐이다.
이러한 비트감은 신세대들이 빠져든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 타난다. ‘비트’의 전도사는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 난 알아요>로 랩을 처음 들고 나왔을 때 신세대들은 분절된 랩이 자신들 의 감성을 담아내는 최고의 것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게 됐고, 스스로 비 트의 노예가 됐다. 이후 빠르고 딱딱 끊어지며 톡톡 튀는 비트감 있는 랩 이 신세대 가요가 됐다. 80년대 가요의 주류가 1/4박자였다면 언타이틀의 <날개>, 룰라의 <연인>, 벅의 <맨발의 청춘^gt 등 요즘 히트곡들은 대개 1/ 8박자나 스타카토로 이뤄져 있다. 또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가수나 노래가 쉴 새 없이 바뀌는 것도 ‘비트’가 지닌 속도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을 지칭하는 단어까지도 신세대, X세대, Z세대 등으로 쉴새 없이 바꿔나간다. 속도가 더욱 잘 드러나는 것은 패션이다. 상업주 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90년대 패션은 몇 개월 단위로 끊임없이 모습을 달 리한다. 힙합, 갱스터룩, 구제품, 모즈룩, 젠더리스룩, 최근의 에스닉룩 에 이르기까지 신세대 패션은 하나의 유행이 속도감 있게 이전의 유행을 밀어내며 공존한다. 서로 다른 패션이 어울려 더 빠른 ‘비트’를 보여주 기도 하는 것이다.
‘비트’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느껴진다. 93년의 <질투> 이후 최근의 <별은 내 가슴에>에 이르기까지 요즘 드라마는 비트있는 사건 전개와 수 많은 반전으로 이뤄진다. 예전처럼 자질구레한 일상사를 늘어놓거나 얽히 고 설킨 줄거리를 풀어내기보다는 단순한 스토리라인에 신세대의 기호, 생활양식 등 풍속도를 짧은 대사와 빠른 심리묘사 속에 담아낼 뿐이다.
새로운 흐름 만드는 주류문화로 우뚝
‘비트’는 이러한 속도 외에도 강렬한 폭발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 <비 트>에서 주인공 민은 체벌교사의 몽둥이를 빼앗아 교무실을 때려부순 뒤 학교를 뛰쳐나오고, 돈을 뜯어간 불량배를 쫓아가 당구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통쾌한 액션을 보여준다. 후련하다. 분절, 속도감, 파괴력 등 젊음의 상징 ‘비트’가 담고 있는 이미지 중 ‘비트’를 가장 잘 나 타내 주는 부분이다. 스무살 언저리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은 사실 민처럼 모든 걸 때려부수고 싶을 때가 많다. 입시중압감, 미래에 대한 불안, 이 성에 대한 긴장, 콤플렉스 등등.
이런 저항과 폭발을 뜻하는 ‘비트’의 원조는 90년대 신세대가 아니라 두꺼운 ‘일반상식’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50년대 말~60년대 초의 서구 젊은이들이다. 5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노스 비치와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등지에 방랑적 예술가들이 모여 기성사회에 대한 저항운동을 벌였 다. 그들은 자신들이 관습적이고 획일적인 사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 여주기 위해 한결같이 허름한 옷을 걸치고 정치와 사회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행동했다. 대신 마약, 재즈, 섹스 등 고도의 감각적 해방을 통한 개인적 해탈과 정화를 주창했다. 이것이 비트운동이요, 여기서부터 비트제너레이션은 시작된다.
제임스 딘을 우상으로 만든 영화 <이유없는 반항>(1955)은 바로 이 원조 비트세대들의 이야기다. 17세 고등학생 짐 스타크(제임스 딘)는 따스한 사랑을 잃은 집안분위기 속에 우울하고 난폭하고 말도 없다. 영화에서 제 임스 딘은 기성세대가 공자왈맹자왈 하자 “제발 그만하라”며 아버지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등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들 만큼의 저항아로 등장한 다. 저항아는 짐만이 아니다. 짐이 치킨게임(낭떠러지 앞에서 차를 타고 달려 먼저 멈추는 사람이 치킨(겁쟁이)이 되는 게임)을 제안하는 폭력서 클 보스 버즈의 여자친구 주디(내털리 우드)에게 “왜 이런 게임을 하느 냐”고 하자, 주디는 “아무 것도 안 할 순 없으니까”라고 말한다. 또 짐이 분위기를 잡으면, 주디는 “심각한 건 질색이야”라고 한다. 지금의 신세대와 너무 닮아 있다. 그리고 매력 만점에 우수어린 짐도 오늘날 <비 트>의 민과 너무 닮았다.
그러나 그 원조 ‘비트세대’와 지금의 ‘비트세대’는 여러 모로 다르다 . 과거 소수문화였던 비트문화는 이젠 젊은이들의 주류, 지배문화다. 얌 전한 모범생이 소외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지금의 비트세대의 저항은 ‘ 다수의 폭력’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자신의 언저리 세대들마저 자신 들의 행태로 유도하고, 문화 전반을 이끌 만큼 엄청난 다수다. 모든 문화 가 이 비트세대들에게 무한정으로 제공되고, 때론 ‘이유없는 칭송’을 듣기도 한다. ‘신세대’는 오늘날 연령을 떠나 현대도시인에겐 종교적 추앙대상이요 지배 이데올로기다. 그래서 이제 비트세대들의 저항은 저항 이 아닌 기득권층의 권력활동 같은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또하나, 이젠 ‘저항’마저도 소비를 통해서만 이뤄진다는 점이 비트세대 저항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오토바이가 없는 민의 저항을 생각할 수 있는 가? 극중 내용과는 상관없이, 일류 미장원에서만 손질이 가능할 것 같은 얍삽한 헤어스타일, 수십만원대 가죽잠바, 그리고 오피스텔, 록카페. 민 이 지닌 것 중 어느 것 하나 돈 없이 되는 게 있는가? 이젠 저항도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트세대들을 더욱 폄하하자면 저항의 모습은 있을지언정 진 정한 저항은 없다는 사실이다. 조그마한(?) 일에도 분노하고 참지 못하는 비트세대지만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일에 대해선 조금의 손해도 입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힘 앞에선 꼼짝도 못한다.
지난 5월10일자 <인권하루소식>은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출범식이 열린 한 대학정문 앞에서 전경들이 신분증과 가방검사를 벌였는데, 자신들의 학교를 가로막고 벌인 이 불법적인 불심검문에 어느 누구 하나 이의를 다 는 학생이 없었고 심지어 신분증을 꺼내들고 걸어오는 학생도 있었다”라 며 ‘불감증에 걸린 대학생들’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감동과 저항을 잃어버린 세대의 배설구
‘이유없는 반항’은 절대 하지 않는 오늘날 비트세대들이다. 친구의 죽 음 앞에 모든 걸 팽개치고 다시 오토바이를 달려, 장렬한 최후를 맞는 < 비트>의 민은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하긴 민이 그처럼 마구 반항할 수 있던 것도 스트리트 파이터로서의 천부적 실력을 지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트세대들이 <비트>의 민에게 환호를 내지르는 것도 자신들의 저항을 민이 대신 충족시켜 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극장 앞에서 몸에 착 들어붙는 티셔츠, 안재욱이 유행시킨 테리우스 헤어스타일에 오른쪽 귀에 이어링을 꽂은 한 신세대(20)는 영화 <비트>에 대해 “꼬리꼬리하다 (그저 그렇다)”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비트세대는 쉽게 감동하지 않 는다. 민의 영웅담 또한 일시의 대리만족이 끝나면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지.
비트세대는 지금까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장황한 이야기에 영화 속 < 비트>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비틀스 노래처럼 이렇게 말할 것이다. “L et it be”(냅 둬).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