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큰 기쁨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부천시 상동초등학교 교사 신상희씨

부천시 상동초등학교 교사 신상희(36)씨는 지난 4월 초 수업중 난데없는 전화를 받고 몹시 당황했다. 전화선을 타고 흘러나오는 굵직한 목소리는 무언가를 꼬치꼬치 캐묻는 투였다. “신상희 선생님 좀 부탁합니다.” “ 예, 전데요.” “85년도에 경북 문경초등학교에서 5학년 담임을 하셨죠. ” “예, 그런데요.” 신씨임을 확인한 상대방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 며 사투리로 바뀌었다. “선생님예, 저 태영이입니더.” “태영이라, …. ” 그래, 얼굴에 주근깨가 많이 나고, 약간 들창코이던 아이. 12년 만에 듣는 제자의 목소리였다.

신씨의 기억 속에 그때의 추억들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태영이는 운동회 때 응원대장을 했다. 활달하고 농담도 잘하고, 구김살이 전혀 없던 개구 쟁이였다. 코 찔찔 흘리고 다니던 종필이, 아버지가 세탁소를 운영하던 택성이, 제일 키가 작았던 정기, 그렇게 서로 어울리던 한패였지.

며칠 뒤, 태영이는 부천 송내역에서 일찌감치 신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씨가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막 달려와 손을 덥석 잡는다.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청년이 됐지만, 저에게는 코흘리개 아이 때의 모습 그대로 인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같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태영이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렵게 자라왔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죠.”

태영이네 집은 지지리도 가난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잦은 불화까지 겹 쳐 큰아버지 댁에서 밭일을 도와주며 학교를 다녔다. “학교만 오면 신이 났다고 하더군요. 제가 늦게까지 공부를 가르쳐 주고, ‘오징어’ 놀이를 하며 같이 놀아주니까 집안걱정을 잊을 수 있었답니다. 태영이가 워낙 쾌 활해서 이런 속내를 감추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태영이는 미련없이 공고를 진학했다. 대학은 못갔지만, 그 어렵다는 대기 업에 취업했다. 이제 군을 제대하고 막 복직을 앞두고 있단다. 담임을 맡 았던 이후로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꿋꿋하게 커준 태영 이가 대견스럽고 기특하기만 하다. “복직하고 첫 월급을 타면 다시 찾아 오겠다”며 태영이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나로부터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이 얼 마나 기쁜지요. 지금은 제가 여러모로 힘들거든요. 태영이가 나를 기억하 고 찾아주었다는 것 그 자체가 저에게는 큰 힘이 돼요.”

이용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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