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야기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로버트 번스의 ‘즐거운 음주’

헤어짐이 있는 곳에선 어디서나 불리는 구성진 노래 <올드랭 사인>. 이 시는 스코틀랜드의 민족 시인 로버트 번스의 생애를 그대로 담고 있다. 1 8세기 영국시단은 시어가 정형화되어 대부분의 시가 진부했다. 이때 스코 틀랜드 방언으로 쓴 로버트 번스의 시는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술을 좋아했으며, 위스키를 스코틀랜드의 나라 술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스코틀랜드 각지를 고루 다니면서 시를 짓고 술을 마셨다. 그 의 시에는 서민적이고 민속적인 것이 총망라됐다. 어떤 농부의 장날 술주 정 이야기, 부도덕한 목사, 악덕 지주, 시골 처녀 총각의 사랑 등이 사실 적으로 묘사돼 있다.

그가 표현한 음주의 즐거움은 다음의 시에 나타나 있다.

“축복의 한잔이여!/ 활기의 근원이여/ 어떠한 공부보다도/ 위트에 불을 붙이고/ 지혜를 다져주네/ 위스키 한잔이면/ 시름이 오간 데 없네/ 걱정 말게나 만취할 일 없으니/ 우리의 관념을 간지르게나/ 밤이고 낮이고.” 그는 식구가 많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가족 부양에 따른 삶의 뼈 저린 아픔과 몇차례의 실연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낭만과 여유가 있었으니 술은 그의 시름을 승화시키는 활력소였다.

“현자여 눈을 감으라/ 철학적 냄새를 거두고/ 위스키의 이름을 그리스어 로 말해 보려마/ ‘생명의 물’이 아니던가/ 스코틀랜드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여/ …/ 자유와 위스키는 함께 하나니/ 꿈을 향해 용솟음칠진저.”

그는 당시 산업혁명으로 사라져가는 스코틀랜드 민요와 설화를 낱낱이 조 사하여 친구와 함께 민요집을 펴내면서, 스코틀랜드인들의 생활에 깊이 박혀 있는 위스키 문화를 찬양했다.

이런 낭만의 시인을 스코틀랜드인들은 애칭으로 로비 번스로 부르면서 잉 글랜드인들이 워즈워드를 기리는 것 이상으로 번스를 사랑하고 있다. 오 늘날에도 해마다 1월15일 밤에는 친지들이 모여 로버트 번스의 생일을 기 린다. 번스 나이트는 스코틀랜드 민속 명절이 됐다. 로버트 번스의 ‘셀 커크 그레이스’를 암송하며 시작하는 이날 밤 행사는 위스키를 건배하고 스코틀랜드의 전통음식인 하기스를 들며, 밤 늦도록 대화와 노래를 한다. 한잔의 위스키를 마시며 인생의 고뇌와 사랑, 낭만과 그리움을 노래한 로 비 번스는 영원히 스코틀랜드인들의 가슴 속에 있다.

이종기/두산씨그램 생산팀장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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