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일하는 날은 운수 좋은 날”불황 칼날 앞에 선 인력시장

(사진/서울 관악구 봉천동 현대시장 입구의 인력시장. 새벽마다 많은 수의 구직자가 몰리지만 취업자는 극히 적다.)

새벽 4시30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신한상호신용금고 옆골목. 미명을 뚫 고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결같이 운 동화를 신었고, 손에는 두툼한 가방을 들었다.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사 내들의 얼굴엔 생활고와 시름이 역력하다. 깊게 팬 주름, 술기운이 남아 있는 눈자위. 그리고 그것들을 서리서리 얽고 있는 피곤함. 어둠이 걷히 자 골목은 1백여명의 사내들로 가득 찼다. 인력시장이 선 것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야”

대부분 아시바(비계), 미장, 공구리(콘크리트) 일을 하는 이들은 평소 안 면이 있는 듯 주고받는 말에 스스럼이 없다. 삼삼오오 모여 근황을 묻고 답하느라 골목이 시끌벅적하다. 갈수록 일감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얘기가 단연 많다. “지난달엔 보름을 공쳤어. 이러다간 애새끼 굶기겠다니까.” “갑자기 비는 왜 오는 게야. 사람잡을 일 있나.”사내들의 목소리가 점 점 높아간다.

5시10분. 봉고차 한대가 들어섰다. 갑자기 골목이 조용해진다. 사내들은 잽싸게 봉고차를 포위하듯 에워쌌다. 사람들의 눈가에 섬광처럼 기대가 스친다. 드디어 흥정이 시작된다. “연립주택 공사인데 일당 12만원에 식 사 제공이야. 미장공 2명만 빨리 와. 경력은 3년 이상.” 차에서 내린 오 야지(공사반장)가 목청을 돋우자, 사내들이 술렁거린다. 조건에 맞지 않 았는지 뒤로 물러서는 사내의 푸념이 날카롭다. “쳇, 아시바는 안 사나. ”

5시30분. 골목은 파장 분위기다. 이미 봉고차 3대가 들어와 사내 10여명 을 싣고 떠났다. 이날 사람을 싣고 떠난 봉고차는 그게 전부였다. 일부는 가방을 챙겨들고 무리를 지어 인솔자를 따라 자리를 떴다. 오야지의 전화 연락을 받은 중간다리가 인부들을 추려 떠난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30명 가까이 골목을 빠져나갔다. 남은 60여명의 사내들은 체념하는 기색이 역 력하다.

이날 이곳에서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행운아들이다. 불황의 칼날에서 적 어도 이날만큼은 비켜났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대부분 은 봉고차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시장도 5시면 파했다. 그만큼 흥정이 왕성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절반도 일감을 얻지 못한다. 구직에 실 패한 사람들은 6시가 넘도록 골목을 서성거리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 발길 을 돌린다. 공구리일을 한다는 50대 남자는 “일자리를 찾는 사람은 지난 해보다 훨씬 늘었는데 일감은 가뭄에 콩나듯 한다”며 혀를 찬다. 매일 새벽 이곳을 찾는다는 그는 닷새째 허탕을 쳤다고 한다.

6시30분. 인력시장이 완전히 파했다. 하루를 공치게 된 사람들의 신세한 탄이 골목을 울린다. “이제 이곳도 떠나야 할까봐. 와서 뭐하겠어. 일감 만나기가 나랏님 뵙기보다 힘드니.” “형님 말이 맞습니다. 예전 같으면 요즘이 좋은 때 아닙니까. 건축철이라 이모저모 조건을 따져가며 일했잖 아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야. 한 달에 보름 일하고, 보름 놀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나는 지난달엔 10일도 나가지 못했어.”

인력시장에 몰아닥친 불황의 찬바람은 이렇게 매섭다. 일감은 없는데, 사 람은 넘쳐난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이들에겐 최악의 상황이다. 지 난해까지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직업소개소니 생활정보지니 해서 일자 리와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가 늘었지만, 인력시장은 질긴 명맥을 이어왔 다. 일할 사람과, 일감을 가진 사람 사이에 균형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황이 그 균형을 일시에 깨뜨리고 말았다.


업주들, 월급제는 안 한다

7시. 서울 중구 북창동 남대문시장 맞은 편 속칭 요리사 시장. 중국음식 재료를 파는 도매상이 몰려 있어 자연스럽게 요리사 시장으로 형성된 이 곳에도 구직대열이 늘어섰다. 점퍼 차림에 두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사 람들이 출근 인파에 섞여 한명 두명 늘어나더니, 10분도 못돼 1백여명으 로 불어났다. 북창파출소를 중심으로 좌우에 사람들의 무리가 잇따라 생 겨났다.

7시30분. 음식재료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면서 거리에 아연 활 기가 돈다. 하지만 정작 사람을 ‘팔고사는’ 흥정은 좀체 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일자리를 찾는 이들의 추근거림이 유흥업소의 호객행위를 방 불케 한다. 행여 무심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사람 구하느냐”는 질문 의 벽에 가로막히기 십상이다. 그만큼 요리사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발길 이 뜸하다.

김상만(37)씨는 3주일째 이곳을 헤매고 있다. 면장(면발을 뽑는 이)인 그 는 한달 전 일하던 중국음식집에서 잘렸다. 주인이 “요즘같은 불경기에 밑지고 장사할 수는 없다”며 주방인력을 4명에서 2명으로 줄인 것이다. 주방장과 칼판(재료 다듬는 이)은 살아남았지만, 면장과 아라이(접시닦이 )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신 주인이 어깨너머로 배운 솜 씨로 면장 노릇을 한다고 한다. 접시닦이는 칼판의 몫으로 떨어졌다. 김 씨는 그때 이후 이곳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일자리를 찾는다.

7시50분. 김씨에게 흥정이 들어왔다. 오토바이를 탄 40대 남자가 나타나 더니 면장을 구한다는 거였다. 마침 곁을 지나던 김씨가 잽싸게 달라붙었 다. 그러나 김씨는 말을 꺼내자마자 퇴짜를 맞아야 했다. 구로공단 근처 에서 장사를 한다는 남자는 일당제로 일할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한달 1 9개(19만원)를 제시했던 김씨는 17개로도 일할 수 있다며 물러섰으나 남 자는 막무가내였다. 아쉬울 건 조금도 없다는 투였다. 결국 김씨가 백기 를 들고 말았다. 김씨는 일당 6만원에 사흘 동안 일하기로 하고, 오토바 이에 올라타고 말았다. “당장 쓸 용돈도 없다”는 게 김씨의 항복이유였 다.

이곳에서 구직자와 구인자를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소개꾼들도 통 수입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월급제나 돼야 수수료를 챙기겠는데, 월급제 를 원하는 업주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한 소개꾼은 “불황이 닥 치면 서민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고, 서민손님이 많은 중국음식집부터 불똥이 튀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장사가 안 되니 경비를 줄이려할 것이 고, 그러자면 인건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장기가 있는 이들은 좀 낫다. 이도저도없이 오직 몸뚱이 하 나가 전부인 잡부들에겐 불황의 터널이 길고도 길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현대시장 입구의 인력시장은 사정이 더욱 나쁘다. 잡부들의 인력시장인 이곳에선 새벽마다 많은 수의 구직자와,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취업자로 나뉜다.


일당 후불,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것도 옛말

(사진/"일감이 있을까..." 새벽 인력시장에 봉고차 한대가 들어선다. 갑자기 골목이 조용해지며 사내들은 잽싸게 봉고차를 포위하듯 에워싼다.)

이곳엔 거의 매일 1백여명의 사람들이 일감을 찾아 들어온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일자리를 잡은 사람은 20여명에 그친다. 봉고차 서너대가 와서 사람들을 태우고 떠나면, 그걸로 파장이다. 남은 이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강동기(52)씨는 요즘처럼 일감구하기가 힘든 적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일당이 후불로 나오는 게 잦아졌다. “1주일 동안 두대가리 반(이틀 일에 야근)밖에 못했어. 그 일당도 사흘 뒤에야 받았지. 하루 벌 어 하루 먹는다는 말도 이제 다 옛날얘기인 셈이지.”

최근엔 이곳에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졸지 에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품을 팔러 거리로 나선 것이다. 딱히 기술이 없 어 잡일이라도 얻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나온 이들의 모습은 더욱 무겁다. 성아무개(33)씨는 “두달 전 다니던 중소업체가 문을 닫아 다른 직장을 찾았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 혹시나 해서 나와봤다”고 말한다. 성씨는 파장이 된 뒤에도 쉽사리 시장을 떠나지 못한다. “기술이 없다보니 경쟁 력이 없어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땐 애초에 명함도 못 내밀죠. 혹시 늦 게라도 사람을 구하러 나온 이들이 있을까 싶어 어슬렁거리는 겁니다.” 직업소개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개업 10년째인 관악구 신림동의 직업소 개소는 아침 8시부터 일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곳에는 하루 30~40명 꼴로 실업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개중엔 40~50대의 명예퇴직자들도 꽤 눈에 띈다. 하지만 일자리는 하루에 3~4개밖에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5분이 멀다 하고 걸려오던 구인전화도 가뭄에 콩나듯 뜸해졌다. 그것도 경비원이나 운전직을 찾는다는 게 고작이다. 소 개소쪽은 “사람장사 10년 만에 이처럼 극심한 일자리 가뭄은 처음”이라 며 쓴웃음을 짖는다.

중구 만리동의 일일취업안내소에도 구직자들이 폭주한다. 하루 평균 50여 명이 다녀가지만, 일감을 얻는 이는 10명이 채 안 된다. 그러다보니 일하 는 사람들의 단가가 떨어지고 있다. 일당은 하늘도 못 움직인다는 이 세 계의 철칙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 관계자는 “공사판 잡부나 파출 부는 올해 초부터 일당이 6만~7만원에서 5만~6만원으로 떨어졌다”고 말 한다. 그래도 일자리가 없어 난리다.

현재 서울시내에서 인력시장이 서는 곳은 10여군데로 추산된다. 한때 봉 제사 시장, 악사 시장, 요리사 시장 등으로 분화가 이뤄졌지만, 요즘은 그때처럼 명확하지 않다. 악사 시장 같은 건 거의 유명무실해지고, 대부 분은 건축 잡부가 모이는 노동시장이다. 소규모 인력시장에서는 일손이 필요한 사람이 직접 와서 노동자를 구해간다. 그러나 노조가 있는 큰 인 력시장에선 주로 노조사무실을 통해 취업이 이뤄지고 있다.


인력시장의 철칙도 무너지고…

인력시장은 경기의 부침을 가장 민감하게 받는 곳이다. 인력시장이 지금 까지 곡절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탄력성 때문이 었다. 경기가 나쁘면 침체했다 경기가 좋아지면 부활하는 끈질긴 생명력 을 자랑했다. 철근일을 10년 넘게 했다는 50대 남자는 “경기가 아무리 나빠도 인력시장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 나 인력시장이 이번 불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금 인력시 장은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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