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세상에서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출판인 한윤수

(사진/방랑자로 살아온 인생. 그는 세상을 꽤나 넉넉하게 산다. 친구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날은 참 화창했다. 바람은 상쾌했고, 길가의 나무와 풀은 가장 아름다 운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목덜미에 땀방울이 맺히는 게 약간 덥다 싶 기도 했다. 큰길에서 빠져 들어간 시골길은 꽃가루로 분분했다. 마치 함 박눈이 내리는 것 같아 도무지 피할 데가 없었다. 마침 토요일 오후여서 인지 주변의 집과 들에선 나른한 기운이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 기에 한윤수(50)라는 사람이 서 있었다.


맨발에 슬리퍼, 삐죽삐죽한 머리칼

그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머리는 아무렇게나 빗어넘겼는지 굵 은 올들이 삐죽삐죽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손마디는 굵었고, 발 뒤꿈치 는 허옇게 살갗이 텄다. 막 밭일을 마치고, 우물물로 목물한 농부의 모습 이 그럴까. 게다가 그 사람좋게 보이는 웃음이란. 사람들이 그를 ‘세상 에서 가장 친구가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는데, 첫눈에 알아보겠다.

가족들도 비슷했다. 너그러운 웃음만큼은 영락없는 촌사람들이다. 사실 그의 아내와 어머니는 꽤 유명인사다. 둘 다 뻔질나게 텔레비전이며, 신 문이며, 잡지에 오르내린 탓에 거리에서도 몸조심을 해야 할 만큼 유명세 가 만만찮다. 본디 그럴 인물들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두 권의 책이 그렇 게 만들었다(아내는 <고부일기>를 쓴 김민희고, 어머니는 <붕어빵은 왜 사왔니?>를 쓴 천정순이다). 물 같은 며느리와 불 같은 시어머니가 서로 속끓던 사연을 새끼줄 꼬듯 엮은 게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졸지에 스타가 됐다.

한윤수는 그 두 책에서 우스꽝스런 악한으로 등장한다. 아내에겐 고집불 통에 천하의 술꾼으로, 어머니에겐 아내 품에서 헤매는 못난 놈으로 도마 에 오른다. 그래도 그는 허허 웃는다. 오히려 그런 얘기를 까발려 유명세 를 치러야 하는 고부가 고소하기만 하단다. 게다가 그에겐 예전에 없던 강력한 무기까지 생겼으니. 어쩌다 고부가 눈싸움을 할라치면 제깍 그 무 기를 휘두른다. “어허! 고부간에 사이좋다는 건 온세상이 다 아는데 어 디서 함부로 눈살을 찌푸려?” 그러면 두 사람은 고양이 앞의 쥐다.

그는 정작 자신에 대해선 “멋대로 살아 별로 내세울 게 없다”고 손을 내젓는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데, 말해 뭐 하겠느냐는 투 다. 소 닭보듯 뚱한 눈으로 들려준 게 겨우 이 정도다. 대학 졸업하고 인 쇄소 취직. 먹고살기 힘들어 제법 그럴듯한 회사로 옮김. 출판사 차려 내 고 싶은 책 뚝딱뚝딱 찍어냄. 그러다 책 하나가 잘못돼 석달간 도망다님. 출판에 정나미가 떨어져 다짜고짜 시골로 들어옴. 농사짓고 가물치 기르 며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무지 속 썩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출 판사 차림. 그러는 동안에도 친구들과 어울려 고기 구워먹고 술 마시기는 계속함.

그래버리니 더이상 묻기도 뭐 하다. 막걸리 한통 갖다놓고 사발을 주거니 받거니 해야 인생보따리가 풀어질 것 같은데, 참 난감하다. 닭이 소보듯 한참을 뚱하고 쳐다보니, 씩 웃으며 그제사 손님대접을 해준다. “연미복 을 입고 아름다운 여자랑 춤추는 영화를 보고 촌놈이 홀딱 반해 외교관을 꿈꿨다”는 게 첫 보따리였다. 외교관이 되어 국제 사교무대를 주름잡으 리라 다짐했다는 것 같은데, 그 뒤집힌 현실에 쓴웃음이 절로 난다.

어찌어찌 서울대 외교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 내내 책이나 보고, 놀고 먹었단다. 막상 학교에 가보니 그게 착각인 걸 알았던 것이다 . “외교관이 되려면 집이 부자든지, 아니면 부잣집 딸과 결혼하든지 둘 중의 하나는 돼야 한다”는데 그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화려한 국제 사교무대를 포기했고, 대신 낭만으로 가득 찬 문리대 사교무대에 등 장했다. 김삿갓을 빗댄 한삿갓이란 별명은 그렇게 생겼다. ‘세상에서 가 장 많은 친구’를 얻은 것도 거기서였다.


출판일과 스트라이크를 배우다

그때 어땠는고 하니 부랑아 뺨친다. 집에서 올라온 하숙비 빼돌려 유흥비 로 탕진했다. 그러다 주머니가 비면 물주를 만날 때까지 쫄쫄 굶었다. 잠 자리는 강의실에서 해결했다. 겨울이면 특히 고생이 심했다. 콘크리트 강 의실에 온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개발한 게 ‘강의노트 난방’이 었다. 깡소주로 열을 낸 뒤, 강의노트를 한장씩 찢어 불태워가며 친구들 과 밤을 샜다고 한다. 그래도 젊은 기운이 팔팔했다. 추석 때면 기차 지 붕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고향으로 갔는데, 조치원쯤 가면 몸이 완전히 얼어 동태가 됐다나.

그렇게 대학을 마치고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인쇄소에 들어갔다 . 언제고 출판사를 차리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 거기서 잉크 냄새나는 밥을 먹으며 출판일을 배웠다. 그러다 스트라이크도 배웠다. “토요일도 평일처럼 일해야 하는 게 못마땅해 직원들이랑 들고 일어선 것”이다. 사 장은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으면, 오후에는 쉬게 해준다고 약속해놓고는 입을 씻었다. 주동자로 찍힌 그는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76년 출판사 ‘청년사’를 차렸다. 출판계에서 의식화 출판사 1호 로 통하는 곳이다. 기획도, 출판도, 판매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 정말 재밌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첫 책이 멕시코의 혁명영웅 판초빌라 의 전기였다. 친구가 번역하고, 또다른 친구가 삽화를 그려 낸 책이었다. 애초에 인세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표지 코팅비가 없어 거리를 지나다 친구를 만나면 “너 술 사줄 돈있지 내놔”라고 윽박질러 돈을 뜯던 시절 이었다. 그런 책을 보따리에 넣고 다니며 팔았다. 명륜동 서점가를 돌며 한두권씩 떠넘겼는데, 갈데없는 외판원이었단다.

그러다 수배자가 되고 말았다. 79년 노동자들의 일기와 수기를 모아 펴낸 책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이 불온서적으로 찍힌 것이다. 책은 판금됐고 , 그는 공안당국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책을 낼 때부터 틀림없이 안 될 걸 알고, 2만부를 찍어 확 풀 작정이었지만, 저쪽에서 제본부수까지 아는 마당에 통할 리가 없었다. 책은 풀지도 못하고, 휴지가 돼버렸다.

출판에 정나미가 떨어졌고, 도시가 싫어졌다. 식구들 반대를 무릅쓰고 경 기도 고양 시골로 들어갔다. 청년사는 후배에게 물려줬는데, 그 사연이 재밌다. 그가 출판사를 팔려고 하자, 지금은 고인이 된 판화가 오윤이 호 통을 쳤다. “그 출판사가 니 건 줄 알아.” 그 말을 듣고보니 정말 대꾸 할 말이 없더란다. 청년사는 그야말로 친구들 모두의 것이었으니까.


많을 땐 70여명까지 들이닥쳐

시골생활은 힘들었지만, 속은 편했다. 채소를 기르고, 낚시터를 운영하고 , 가물치를 길렀다. 농사법은 이웃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해가며 배웠다. 친구들은 이제 야유회 삼아 그의 집을 찾았다. 마당엔 항상 가마솥이 걸 렸고, 일요일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많을 땐 70명까지 그의 집에 들 이닥쳤다고 한다. 죽어나는 건 아내와 어머니였지만, 그는 나몰라라 친구 들과 어울렸다. 지금 그 친구들 가운데 꽤 높은 정치인도 있고, 관리도 있고, 교수도 있다.

그는 얼마 전 출판계로 돌아왔다. 다시는 책을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는 데, 갈수록 그게 아니었단다. 그의 말대로 배운 도둑질을 어찌할 수 없었 다. 책이란 친구 같은 것이어서 항상 그리웠다고 한다. 그의 친구사귀는 법이란 게 별것 아니다. “사람에게 바랄 게 뭐 있나,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 가족을 묶는 것도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짜고치는 고스톱인데, 싸워 뭐 하냐”는 것이다. 그는 참 세상을 넉넉하게 산다.

사진 박승화/ 자유기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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