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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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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잔인한 날들이 이어진다.
4·19를 짓밟은 5 16, 민주화의 봄을 질식시킨 5 17, 그리고 피의 5 18. 혁명과 반혁명, 희망과 절망, 희생과 배반 등 우리가 알고있는 모든 상반 된 가치가 극적인 충돌을 이루는 날들이다. 그 소용돌이와 잔인의 극점에 5·18은 있다.
그날은 이제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거대한 역류를 몸던져 막으려했던 희생자 3천4백여명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될 날도 머지않다. 이들의 묘역은 이미 ‘성역’으로 내용과 형식을 갖췄다. 그뿐인가. 묘역은 이른바 뭇 대선주자들이 출사표를 던지는 자리가 된지 이미 오래다. 미명에 기습 참 배하건 한낮 경찰의 경계 속에서 한잔 술을 올리건 그곳은 자신의 꿈을 도덕적으로 인정받는 성소가 됐다.
그렇다면 5·18은 ‘다 이루어졌는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곳 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때까지….” 5·18의 상징적 인물 윤 상원·박기순씨의 영혼 결혼식에 헌정된 이 곡은 불행히도 여전히 뭇 젊 은 가슴을 때리고 피를 뜨겁게 한다. 두 사람에 대한 추모의 정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의 역류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초의 삶을 철저히 자본에 예속시키고 항구적인 정권재창출의 안전판을 만들고자 했던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파동, 집권을 위해서라면 국가마 저 팔아먹을 수 있음을 보여준 한보 사태, 앞선 군사독재자들의 개인사적 목표였던 축재와 부정부패.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거리엔 대통령의 하야를 겨눈 화염병, 그 아들 김현철씨에 대한 사법처리를 압박 하는 투석이 등장했다. 80년 당시 최규하 대통령과 같은 우유부단에 질려 버린 양심세력과 지식인의 개탄도 다시금 고개를 든다.
다행히 국민들의 생각은 태산같이 진지하고 그 눈은 미래를 향해 빛난다. <한겨레21>의 조사 결과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는 사람은 30%에 그 친다. 그들의 분노가 예전같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참고있을 뿐이다. 조 사는 진정한 참회와 새로운 출발 대신 정치적 회피나 담합으로 역류할 경 우 또 다시 분노는 폭발할 것임을 보여준다. ‘위법 사실이 드러날 경우 ’ 하야해야 한다는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는 48%에 이른다.
모든 책임론은 당사자의 진퇴를 화두로 제기되기 마련이니 하야 요구를 원망해서는 부질없다. ‘해피엔딩’이란 하나도 없었던 전임자들을 돌이 켜 볼 일이다. 그들을 최악의 파국으로 몰아간 것은 허물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허물을 온전히 드러내고 용서를 구하는데 인색했던 데 있었다. 강은 산을 거스르지 않고 산은 강을 넘지 않는다. 정권의 역류 또한 결코 민심과 역사를 타고넘지 못한다. 5·18은 ‘역리’를 거부하고 ‘순리’ 를 펼침에 그 뜻이 있을 것이다. 오늘의 5·18이 또 다른 6·10항쟁을 기 다려 그 뜻을 드러내서는 않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식이건 아비이건 그 허물을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