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검찰“우리는 현철이 밖에 몰라요”

(사진/검찰청사 복도에서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는 심재륜 대검 중수부장.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수사의 초점을 흐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대놓고 말했다.)

‘정태수씨 92년 대선 때 김영삼 대통령쪽에 4차례에 걸쳐 9백억원 줬다 ’, ‘대선자금 정국 위기’, ‘현철씨 사조직 운영비 1백억 이상 지원’ , ‘대선 잉여금 1백32억 현철씨가 관리했다’…. 최근 각 일간지의 1면 을 장식한 기사들은 김현철씨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수사보다 대선자금을 둘러싼 의혹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새 돛을 달고 앞만 향해 달 리던 검찰이 역풍을 맞은 듯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 터다.


온통 지뢰밭… 터지기 전에 피한다?

이런 보도에 대한 검찰의 반응은 한마디로 불쾌감이다. 심재륜 대검 중수 부장은 대선자금 의혹 보도가 나올 때마다 “대선자금은 이번 수사의 본 류가 아니다”라고 해명하거나 “수사의 초점을 흐리려는 의도가 있다” 고 대놓고 꼬집곤 했다. 급기야 `‘9백억원 제공설’까지 나오자 김기수 검찰총장이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는 보도자료를 낸 데 이어 심 중수 부장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1차 수사당시의 수사진에게 확인해본 결과 정태수씨로부터 대선자금과 관련한 진술을 받은 적이 없다”고 적극적인 진화에 나섰다. 검찰의 반응이 거의 알레르기에 가까운 증상으로 나아가 고 있다.

지금 검찰의 최대 관심사는 검찰 스스로 밝히듯 김현철씨 비리의혹 수사 를 성공적으로, 동시에 최대한 빨리 매듭짓는 일이다. 국민의 여론과 정 치권에 대한 부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검찰로서는 이것만 가지고도 마음이 바쁘다. 순수하게 수사의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현철씨 수사가 힘겹게 진행되고 있는 판국에 대선자금이라는 거대한 뿌리 에 호미를 댄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선자금 문제가 현철씨 비리의혹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검찰의 딜레마가 있다. 지금까지 대선자금 의혹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현철씨와 관련되어 제기됐다. 측근인 박태중 (주)심우 대표와 그 주변인 물의 계좌에서 93년 1∼3월 사이 집중적으로 빠져나간 1백32억원이나, 현 철씨의 사조직인 범민주청년연합을 운영하는 데 들어간 1백억원대 자금의 모태가 대선자금이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이 발견한 현철씨의 1백여개 비 실명계좌에 입금된 돈도 같은 의심을 받고 있다.

현철씨 비리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검찰은 그 출처를 들여다보고, 본 것을 말해야 할 운명이다. 이 뭉칫돈들이 정상적인 돈벌이로 생긴 것 인지, 이권에 개입한 대가로 받은 것인지, 이도저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 슨 돈인지 밝혀야만 이 수사에서 손을 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검찰은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입장과 원칙 을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회피할 생각은 없다”면서 “그러나 대선 자금 잔여분 중 현철씨가 관리하던 부분에만 한정할 것”이라고 ‘제한적 수사론’을 들고 나왔다. `

검찰은 나아가 현철씨 수사과정에서 대선자금의 꼬리가 잡히더라도, 현철 씨의 죄를 묻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사안이 아닌 한 공개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현철씨 수사는 지뢰밭을 걷는 것 과 같다”고 비유했다. 대선자금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현철씨의 돈 줄을 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작전이라면 지뢰를 발견했을 때 조용히 피해가면 그만이지 일부러 터뜨리거나 파내지는 않을 것이 뻔하다.


“결정적 사안 없는 한 전면수사 없을 것”

그러나 검찰의 바람과는 달리 수사결과가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할 경우 검찰 수사는 대선자금이라는 외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현철씨가 굴린 막대한 자금의 원천을 대선자금 이외의 곳에서 찾기 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대선자금이 본격적인 수사선상에 오르게 되면 현철씨와 관련 된 부분만 다루겠다는 검찰의 방침도 단지 희망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은 선거비용을 얼마나 초과지출했는지 보다 그렇게 많은 돈을 끌어 모은 경위에 대해 더 궁금해할 게 분명하다. 검찰 관계자는 “이 부분이 드러날 경우 대통령이 물러나고 국정이 마비되는 사태까지 초래될 수 있 다”고 걱정하면서 “결정적인 사인이 불거지지 않는 한 대선자금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 말은 대선자금을 수사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결정적인 사안이 있느냐는 ‘존재’의 영역에 속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결정적인 사안이 불거지면 수사는 불가피하다”는 말로도 들린 다. 다만, 수사를 촉발할 뇌관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언제 터져나올지, 아니면 영영 묻혀버릴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가능성’의 영역에 남아있다.

박용현 기자/ 한겨레 사회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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