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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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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연 김 대통령만 자유로울 수 있을까. 김현철씨 측근인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한솔그룹에 맡겨 관리해온 70억원이 대선자금의 일부일 것으로 검찰은 심증을 굳히고 있다.)
옛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사냥할 때 목표물에 명중하지 않을 경우 원래 던진 제자리로 되돌아오게 만든 활모양의 사냥도구를 즐겨 사용했다 . 이 사냥도구는 사냥에 실패했을 때 이를 찾아헤매는 불편함없이 바로 다시 사용할 수 있어 원주민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도구였다. 그러나 이 편리한 사냥도구는 가끔 원주민의 몸을 가격해 치명상을 입히는 ‘살인무 기’로 변하기도 했다. 이 사냥도구 이름이 바로 부메랑이다. 이른바 ‘ 부메랑효과’는 여기에서 유래됐다.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 만든 것 이 도리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김현철 비자금은 김 대통령 책임”
최근 김영삼 대통령은 바로 이 `‘부메랑’으로 인해 하야논란까지 일으 키며 정치적 낭떠러지로 밀리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의 부메랑 은 바로 대선자금과 대선자금 잔여금이다. 지난 95년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자금사건 등으로 구속했던 그 자신이 다시 괴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전·노 두 대통령을 구속할 당시 정치자금으로 받은 돈을 개인적으로 치부했다는 점을 가장 부도덕한 이유로 꼽았다. 역설적으로 보면 정치자금으로 받은 것을 정치에 사용했으면 면죄부를 줄 수도 있었 으나 개인적인 축재에 이용했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최근 김현철 비리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대선자금뿐 아니라 비 자금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검찰수사를 통해 의혹들이 점차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대선자금과 관련해서는 한보가 지난 92년 대선 당시 모두 8백억~9백억원 의 자금이 김 후부쪽에 전달했다는 구체적인 얘기가 야당은 물론 검찰 주 변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돈은 ‘엄청난 이권에 대한 대가’ 즉 5조 원에 이르는 편법 대출을 보장받는 등 대가성이 강한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어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선자금 잔여금의 경우에도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한솔그룹에 맡 겨 관리해온 70억원이 대선자금의 일부일 것으로 검찰은 심중을 굳히고 있다. 김현철씨의 측근인 박태중씨가 관리해온 출처불명의 1백32억원과 이성호 전 대호건설 회장이 관리해온 수백억원의 자금 등도 모두 대선자 금 잔여금일 가능성이 많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치자금을 축재 에 이용했다하여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전임 대통령과 죄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이런 의혹들이 김영삼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김현철씨가 대통령의 차남이라는 점과 김기섭씨의 그동 안 역할 등으로 미뤄볼 때 김 대통령이 설사 지시를 하지않았다 해도 그 로 인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노 비자금사건에 이어 김영삼 대통령 비자금의혹사건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 회의는 이미 “대선 잉여금 은닉은 전두환 노태우씨의 비자금과 같은 것 인 만큼 분명한 처리방침을 밝혀야 한다”며 두 사건을 동일시하고 나섰 다.
특히 김 대통령쪽이 전두환 노태우씨를 단죄한 죄목을 자신이 범했다는 점에서 국민적 비난의 강도는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축재한 돈의 액수 가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이중성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한보 대선자금, 뇌물성격 강해
현재까지 검찰조사에서 드러난 사실로는 김 대통령과 전·노씨를 같은 반 열에 놓고 볼 수는 없다. 전·노씨는 재임중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직접 재벌총수들로부터 돈을 챙긴 반면 김 대통령은 취임 전인 대선기간중 받 은 것들이다. 전·노씨의 경우 대부분 재임중 특정사업과 관련한 특혜성 대가로 받은 것으로 판단돼 포괄적 뇌물수수죄가 적용됐다.
김 대통령이 노씨로부터 당선축하금과 정권인수금으로 수백억원을 받았다 는 야권의 주장도 있다. 만약 김 대통령이 노씨로부터 이런 자금을 받았 다면 포괄적 뇌물죄로 처벌받은 노씨의 뇌물을 받았다는 점에서 법적 책 임 이전에 도덕성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는 대선자금 잔여금 은닉 부분으로 모아진다 . 김 대통령이 취임 초 ‘기업으로부터 한푼의 돈도 받지 않겠다’는 선 언의 순수한 의도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5년 동안의 ‘통치자금’을 취 임 전에 챙겨놨기 때문에 ‘깨끗한 척’한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비껴갈 수 없다. 신한국당 내부에서도 “만약 김현철씨가 대선자금 잔여 금을 관리해왔다면 국민의 돌팔매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모든 책 임은 김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국민들이 전·노씨와 무엇이 다 르다고 생각하겠느냐”며 우려하고 있다.
돈의 성격이나 법적인 문제에서도 김 대통령은 안전하지 않다는 게 정치 권의 중론이다. 대선자금 잔여금을 관리해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법적으 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대선자금 잔여금이 법적으로 완벽하게 피 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잔여금에 대한 뇌물 여부 판단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한보로부터 받았다는 6~8백억원의 폭발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정태수 한보총회장이 김 대통령쪽에 이 돈을 전달하면서 한 보철강을 잘 봐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지는 이미 오래다. 대 통령이 될 것을 알고서 미리 돈을 주었을 경우에 적용되는 ‘사전수뢰죄 ’에 해당된다. 이미 김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한국당 홍인길 의원은 한보 에 거액을 대출해주도록 은행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됐다.
돈 세탁·분산 예치 닮은꼴
지난 95년 6월 지자제 선거 당시 한보로부터 2억원을 받은 문정수 부산시 장도 사전수뢰죄로 처벌한다는 것이 검찰의 방침이다. 한보가 김 대통령 쪽이나 문 시장에게 건넨 돈의 성격은 대동소이하다. 전·노씨도 재벌들 로부터 자신들이 받은 돈을 정치자금이나 통치자금이라고 주장하며 법을 피해가려 했으나 법원에 의해 포괄적인 수뢰죄로 단죄당했다.
대선자금 잔여금의 관리수법도 전·노씨 비자금사건 때와 너무나 흡사하 다. 전·노씨가 한보와 대우, 쌍용 등 재벌들에게 수백억원을 맡긴 것처 럼 김현철씨쪽도 한솔과 대호건설 등 대기업 등에 관리토록 한 사실이 밝 혀지고 있다. 수십차례의 경로를 통해 세탁한 것이나 여러 은행에 분산예 치한 것도 전·노씨와 닮은꼴이다.
전·노씨가 장세동 이현우씨 등 측근을 통해 비자금을 관리했다면 김 대 통령은 아들인 김현철씨를 통해 관리한 것으로 비교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적 비난의 강도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국민회의의 한 의원은 “김 대통령은 이미 자신의 정적을 단죄할 때 내세 웠던 부정축재혐의를 자신이 뒤집어쓰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이상 도망갈 길이 없다”며 “이제 진상을 솔직히 밝히고 자신의 정치적 거취를 국민 의 처분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자금=한보사건의 몸통=김영삼 대통령’이라는 야권의 빗발치는 공 세 속 에서 김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김성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