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국민회의/‘탈당’이 마지막 책무

김영환/ 국민회의 정세분석실장

올 연두기자회견까지만 해도 당당하고(?) 위엄있게(?) 문민정권의 치적을 자랑하고 노동법 날치기의 불가피성을 강변하고 올 대선에서 분명히 김심 을 관철하겠노라고 호언했던 대통령이 ‘종이호랑이’가 됐다.

대통령은 알았어야 했다. 거산의 우산 속에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소산을 바로 알았어야 했다. 문민정부 초기에 ‘하나회’를 해체하고 안가를 폐 쇄하면서 노도처럼 개혁을 밀고나갔을 때 국민들의 90%는 아낌없는 박수 를 보냈다. 이미 그때 ‘하나회’보다 더 위험한 ‘소산인맥’이 자라나 고 있었다. 대통령이 칼국수를 먹고 있는 동안 그의 아들과 30년 민주화 투쟁의 동지들은 이권개입의 대가로 수십억원인지 수백억원인지 알 수 없 는 엄청난 돈을 챙겼다. 아버지 김심이 아니라 아들 김심을 통해 차기 권 력을 재창출하고 최후에는 아들 스스로 소산이 아닌 거산이 되려 했다는 아찔한 얘기마저 들린다.


‘거산게이트’는 모든 게이트의 종착역

지금 국민들은 단순히 아들과 측근을 잘못 둔 대통령의 책임을 묻고자 함 이 아니다. 노태우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이어받은 부정한 대선자금, 그리 고 선거에서 쓰고 남은 대선 잉여금이 바로 ‘한보게이트’와 ‘현철게이 트’ 그리고 문민정권의 부패와 몰락의 출발점이었다.

노동법 날치기 파동으로 시작된 문민정권의 추락은 한보게이트와 현철게 이트를 거치면서 급가속 페달을 밟아왔다. 이제 최종지점인 대선자금게이 트 즉 ‘거산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최종의 게이트는 여타 무수한 게이트를 관통하는 출발점이었고 모든 게이트를 풀어가는 종착역 이다.

이미 상당수 국민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고 있고 대통령이 총재로 있는 신한국당 안에서조차 대통령의 탈당 얘기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면 서도 신한국당의 대권주자들은 이른바 ‘몸통’과 대선자금을 낱낱이 공 개하는 것은 극구 꺼리고 있다. 과거는 과거고 이제는 미래를 향해 달려 가자며 고비용 정치구조 개선이란 허울만 내걸고 있다.

해방 이후 일제의 잔재를 말끔히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50 년간 부패와 부정의 악순환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만약 지금 우리가 대선자금 게이트를 말끔히 넘어서지 못한다면 고비용 정치구조 개 선은 공염불이 될 것이고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부정과 부패를 청산한다 는 것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21세기 주역이 될 우리 어린이들은 ‘줄을 잘 서야 성공한다’‘방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현실의 모 습에서 그들의 가치관을 정립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모든 공은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국민들은 아직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는 검찰과 대선자금의 공동 수혜자인 신한국당의 대권주자들이 이 게 이트를 풀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대선자금을 그대로 이양시키고 당적의 잉크만 지운 노태우 대통령식의 탈 당이 아니라 특정정당 후보의 후견인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으로 마지막 책무를 다하기 위한 탈당을 충심으로 촉구한다. 집권당의 위기를 수습하 고 집권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내각이 아니라 국가의 위기를 수습하고 공정한 대선을 위한 중립내각을 촉구한다.

우리는 대통령의 하야라는 사태는 대통령 자신의 오욕을 떠나 국가적 위 기의 심화라는 점에서 원치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 스스로 모든 게이트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인 대선자금 게이트를 풀고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올 12 월 대선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관리책임자가 되는 것이 대통령이 문민정권 의 황혼기에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믿는다. 그 길만 이 경제정세로 보거나 남북정세로 보거나 국민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 새로운 21세기 대장정을 나서야 할 이때, 그 첫단추를 꿰는 일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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