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DJ “하야는 참아다오”

(사진/야당은 모처럼 신이 났지만 `막가파식'으로 나갈 수도 없는 처지다. 국민회의 브리핑룸에서 당 관계자가 대선자금 문제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가 터져나오면서 야당이 모처럼 신이 났다.

김 대통령의 사과와 대선자금 공개를 촉구하는 야당의 성명과 논평이 연 일 기자실에 수북이 쌓일 정도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야당으로서는 그동 안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한푼도 안 받았다’는 등 대선자금에 관 해 초연한 듯 뻐기던 김 대통령의 ‘거짓말’을 밝혀낼 수 있게 됐다. 더 구나 검찰이 김현철씨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선자금의 몸체와 함께 잔여자 금 은닉 문제를 터뜨려줌으로써 속된 말로 ‘손 안 대고 코풀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뇌사’까진 좋으나 ‘사망’은 안 된다”

그렇다고 야권이 이번 기회를 통해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힐 때까지 공세 를 계속할 지는 미지수다. 물론 현재로서는 한치의 타협도 없이 갈 데까 지 가자는 식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당의 입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 ‘막가파식’도 아니다. 김 대통령의 퇴임 뒤 법적처리 가능성 등을 거론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일정한 한계 속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한계가 바로 대통령에 대한 하야이다. 수많은 야당의 성명이 나 논평의 어디에도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하야라는 단어는 전 혀 찾아볼 수가 없다. 김 대통령을 몰아붙이되 하야까지 가서는 안 된다 는 야당의 태도를 엿보게 한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경우에는 언론과 여론뿐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의 집 중적인 하야공격에 굴복해 결국 미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중 대통령직을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우리 야당은 대통령을 공격하면서도 대통령의 하 야는 원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인 것이다. 김 대통령의 하야가 바로 야 당에도 타격을 줄 수 있는 정치상황 때문이다. 김 대통령의 중도하차는 김대중 김종필 총재를 포함한 `‘3김 공동책임론’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이 문제를 통해 김영삼 대 통령을 무력화시킨다는 대원칙에는 동감하고 있으나 최종 지향점은 판이 하게 다르다.

김대중 총재는 오는 12월 대선에서 김 대통령이 철저히 중립을 지키도록 하는 데 공격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 대통령의 신한국당 탈당과 중립 내각구성이 최종 목표인 셈이다. 이를 위해 대선자금과 대선자금 잔여금 문제를 통해 김 대통령을 철저히 무력화시키되 하야까지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적 뇌사상태’까지는 좋으나 ‘정치적 사망’까지 이르게 되면 인공호흡을 통해서라도 일단 김 대통령을 살려놔야 한다는 것이 김대중 총재의 생각이다.

김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선자금문제와 관련한 자신의 의중을 드러냈다. 김 대통령이 한보자금 9백억원과 노씨로부터 받은 3천억원에 한해서만 진상을 밝히면 수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대선자금 전체를 문제삼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한보자금의 경우에는 `‘한보사건 몸통=김 영삼 대통령’이라는 등식을 이끌어내고 노씨 자금수수 시인은 김 총재가 노씨로부터 받은 20억원에 대한 면죄부 구실로 연결된다.


JP는 자나깨나 ‘내각제’

이와 달리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생각은 자나깨나 내각제 개헌이다. 김 대통령에 대한 공격의 목표도 오는 12월 대선 전에 내각제 개헌으로 끌어 들이는 데 모아져 있다. 김 대통령을 조기 내각제 개헌쪽으로 끌어들이려 면 국민회의보다 김 대통령을 더욱 정치적 궁지로 몰아붙여야 한다. 김 대통령이 퇴임 이후의 안전에 대해 걱정할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다달아 야 내각제를 수용하리라는 것이다. 그가 최근 난국 수습 차원에서 여야 영수회담 개최를 거론하는 것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국민회의의 한 고위당직자는 “하야 여부는 궁극적으로 국민여론에 따라 좌우될 사안으로 정치적으로 해결할 상황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 만약 김 대통령이 하야하는 정치적 상황이 오면 김대중 총재가 나서 국민 들을 설득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역설적이게도 김 대통령의 최악의 상황에 대해 두 야당 총재가 버팀목 구실을 해주는 셈이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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