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물 빼먹는 사탕수수, 구수한 구운 옥수수, 한낮의 열기 달래주는 코코넛
공장 과자처럼 화끈하진 않아도 감칠맛 나는 열대 군것질에 푹 빠져버렸네
▣ 김정미 여행전문가·지호, 지민 엄마 babingga@hotmail.com
이곳에서는 적당한 과자 간식이 없다. 문 밖만 나서면 슈퍼가 널려 있고 제과점이 흔한 서울을 생각하면 엄마로선 행복한 일이다. 두 아이의 보챔을 뒤로하고 어딘가에 검문소처럼 들르지 않고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일을 생각하면, 이곳엔 아예 ‘검문소’가 없으니 맘이 편하다. 아이들도 보채지 않는다. 대신 다른 간식거리를 찾았다. 집 앞을 지나다니며 소년이 파는 사탕수수다. 긴 대나무처럼 생긴 줄기를 짊어지고 허리에 칼 하나를 차고 저 멀리서 덜렁덜렁 걸어오는 사탕수수 소년을 보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고 튀어나간다.
무궁무진한 코코넛 사용법
사탕수수는 가지를 치지 않고 높이 2~6m까지 길게 자란다. 줄기 하나는 20~30개의 마디를 가지고 있다. 줄기에는 설탕 원료가 되는 당분이 10~20% 들어 있다. 아이들은 이제 사탕수수 가운데 어느 부분이 가장 단지를 알 정도다. 줄기의 중간 부분에 가장 당분이 많고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가장 적다. 아이들은 단골손님답게 당당히 얘기한다. 가운데 쪽으로 10마디만 달라고 하면, 사탕수수 소년은 한마디에 15cm쯤 하는 사탕수수 10마디를 툭 자른 뒤, 단단한 겉껍질을 쓱쓱 벗겨서 건네준다. 입에 넣어 꽉 깨물면 달콤한 물이 입 안 가득 머문다. 꼭꼭 깨물어 단물을 다 빼먹고 나면 껍질을 뱉고 또 다른 마디를 베어 문다. 단맛을 좋아하기는 어른도 마찬가지여서 동네 어른들과 같이 사 먹으며 정담도 나눈다. 사탕이나 초콜릿 맛은 어느새 잊어버렸는지 오후 4시가 되면 사탕수수 장수가 또 다른 검문소가 돼버렸다.

△ 이제 사탕수수의 단물이 '공장제 과자'의 단맛보다 좋다. 아이들은 줄기 가운데 부분의 단맛이 가장 좋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진/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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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간식은 옥수수다. 현지 말로 ‘마힌디 야 쿠초마’인데, 말 그대로 숯불에 구운 옥수수다. 종자의 모양과 성질에 따라서 여러 종류가 있는 듯한데, 소화 흡수가 잘되고 칼로리도 쌀, 보리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옥수수는 단백질이 적다. 그래서 우리는 완숙 전에 수확해 간식으로 이용하지만, 이곳에선 완숙 뒤에 걷어서 씨알을 말린 뒤 갈아서 주식인 ‘우갈리’로 쓴다.
구워서 먹는 옥수수는 완숙 전에 수확하는데 무척 부드럽다. 서울에서 별로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던 나는 한동안 천지에 널린 옥수수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맛을 접한 이후에는 아이들이 원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사게 되는 ‘옥수수 중독’이 돼버렸다. 길모퉁이에서 바가지만 한 작은 화로에 숯불을 피워 즉석에서 구워 파는 옥수수는 다 먹고 나면 입 언저리가 시커멓게 된다. 하지만 고소한 맛에 정신을 잃는다.
어쩌다 비가 와서 파는 사람이 없으면 큰 아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 우리 집 가는 길에 있는 옥수수 밭에서 몇 개 따가지고 집에 가서 구워먹자.” 모두 주인이 있는 밭이라고 열심히 설명을 한 뒤 아이의 칭얼거림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언가 허전하다.
또 하나의 매력적인 간식이 코코넛이다. 한낮 아프리카의 뜨거운 열기는 무엇이라도 달구겠다는 듯 이글이글 타오른다. 건조하면서 뜨겁다. 무언가를 마시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다. 그럴 때 갈증을 달래주는 게 연한 녹색의 열대과일인 코코넛이다. 코코넛 열매 안에는 물이 있다. 두꺼운 껍질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싶지만, 흔들어보면 ‘찰랑찰랑’ 경쾌한 소리가 난다. 코코넛은 거리의 리어카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코코넛 하나를 골라 커다란 칼로 위를 툭 잘라서 구멍을 내고, 꽂아주는 빨대로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속이 시원해진다.
사실 현지인들은 이 물을 먹기 위해서 코코넛을 사지 않는다. 열매 안쪽의 하얗게 젤리처럼 생긴 과육이 이 열매의 생명이다. 단맛과 고소한 맛이 나 그대로 먹거나 기름을 짠다. 과육을 깎아 말려서 과자로 먹기도 하는데, 내가 터득하기론 술안주로 딱이다. 여행자로 다닐 때는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코코넛의 세계였다. 그런데 살다 보니 코코넛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현지인들은 기름을 쓰지 않고 이것으로만 요리를 한다. 코코넛을 쇠막대기로 반으로 깬 뒤, 한쪽을 붙잡고 동그란 작은 코코넛 전용 칼로 안의 것을 모두 긁어낸다. 과육이 수북하게 눈처럼 쌓이면 따뜻한 물을 부어 손으로 꼭 짠다. 3번을 짜는데 첫 물은 진해 우유처럼 뽀얗고, 마지막은 쌀뜨물을 여러 번 헹군 것처럼 희미하다. 진한 첫 물은 요리에 넣는데 달콤한 향이 나고 음식이 부드러워진다. 마지막 물은 밥을 할 때 밥물로 쓰는데 고소한 향과 함께 영양도 배가 된다. 요리 외에도 과육을 짠 기름은 식용유로 쓰고 비누나 화장품을 만드는 데 쓴다. 나도 코코넛 로션을 무척 좋아하는데, 값도 싸고 그윽한 향기가 나서 몸에 바르면 건조한 아프리카 기후에서 가려움증을 예방해준다. 열매를 감싸고 있는 섬유층은 카펫이나 로프 등을 만드는 데 쓰이며 단단한 껍데기는 생활용품이나 공예품 재료가 된다. 더 말할 것 없이 코코넛 없는 생활은 ‘앙코 없는 찐빵’이다. 좋은 코코넛은 두드려보아서 소리가 ‘통통’ 하고 맑게 나고 흔들었을 때 찰랑거리는 것이다.

△ 코코넛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긁어낸 과육으로 물을 낸 뒤 각종 요리에 이용한다. (사진/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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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에 널린 아보카도와 바나나
과일은 또 어떤가! 영양덩어리인 아보카도가 지천에 널려 있다. 17가지 비타민과 칼륨을 함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고구마와 함께 삶거나 구워 먹어도 고소하다. 껍질이 울퉁불퉁해 ‘악어 배’로도 불리는 아보카도는 퓨전 음식처럼 크로켓을 만들어 먹는다. 물론 과일 샐러드에도 들어간다.
배고플 때 거리 어디서나 쉽게 사먹을 수 있는 바나나는 탄수화물, 비타민A와 C가 풍부하며 열량이 높아서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날로 먹기도 하지만, 얇게 썰어 튀겨먹고 햇볕에 말려서 ‘건바나나’로도 만들어 먹는다. 요리용 바나나로는 굽거나 쪄서 먹는다.
“아프리카에 와서 무엇을 먹고 살까?”로 고민하던 나는 호사스런 식탁으로 꾸며지는 매일매일의 생활에 감사하며 하루를 지낸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스낵이나 비스킷처럼 ‘화끈한’ 맛도 없고 오래 두고 먹을 수도 없지만, 아프리카 주전부리의 은은한 감칠맛엔 비할 데가 없다. 자극적이고 센 맛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입맛도 점차 이곳에 적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