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 다른 학생들이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배우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다름을 존중하면서 누구에게나 밝고 건강하게 다가서는 사람이 되기를
▣ 김정미 여행전문가·지호, 지민 엄마 babingga@hotmail.com
처음 아이를 이곳에 데리고 오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선진국에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모습과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없을 때 자유와 고요와 느림을 보여주고 싶었고, 숨쉬기 위해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오는 바람을 호흡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광활한 초원을 보면서 인간과 동물과 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지구를 보여주고 싶었기에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선택한 것이다. 아마도 여행전문가를 엄마로 둔 아이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어느새 나의 핏속에 녹아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은 까닭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그저 엄마가 가자니까 쉽게 따라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린 뒤 갑자기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과 ‘까만’ 사람들을 보며 새로움보다는 두려움이 컸나 보다. 아이는 사람들과 만날 때면 엄마 치마 뒤로 숨어 사람들을 흘겨봤다.
“까만 사람도 껍데기가 벗겨져요?”
6달만 지내기로 한 시간 제약 탓에 서둘러야 할 것이 많았다. 우선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인 큰아이 지호를 어딘가에 보내야 했다.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하고(이곳에서는 우리보다 1년 일찍 초등학교가 시작한다) 사람들 소문으로 아루샤 최고의 명문학교라는 브리니에카스를 찾았다. 교실로 들어서니 그득하게 들어선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겨우 5~6살 된 아이들에게 밖에서 노는 시간은 주지 않고 하루 종일 공부만 시킨단다. 매일 자연에 나가 그저 흙바닥에서 뛰놀 것이라 생각했더니 예상이 확 빗나간 것이다. 다른 학교도 가보니 상황은 마찬가지다. 탄자니아는 공산화 이후 스와힐리어밖에 배우지 않아서, 영어를 배우며 외국 문물을 빨리 받아들인 케냐보다도 경제 사정이 못해졌다. 그러다가 최근 10여 년 동안 뒤늦은 ‘대변혁’을 겪었다. 탄자니아는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경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1992년부터 ‘친미’ 정책을 실시한 이후 온 나라에 영어 배우기 붐이 한창이었다. 수업은 영어와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를 동시에 가르친다니, 아이들이 한국말까지 3개 국어를 갑자기 받아들이다가 혼란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영국인이 교장으로 있는, 그중 공부를 제일 덜 시키는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학교 준비물을 사기 위해 우리가 사는 집에서 서쪽으로 신도시 같은 분위기의 고급 쇼핑몰에 갔다. 행색이 초라한 흑인 할아버지는 두 현지인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건물 벽에 기대서 있고, 아이들은 서로 마주 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마치 시골에서 도시로 처음 구경 나온 듯했다.

△ 지호(맨 윗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같은 반 친구들. 초등학생도 교복을 입는다. (사진/ 김정미)
|
그때 지호만한 아이가 다가와 조그만 랜턴을 만지려 하자, 지호가 질겁하며 내 뒤로 숨었다. 지호가 난데없이 질문한다.
“엄마, 저 까만 친구 머리에 있는 하얀 눈이 뭐예요?”
자세히 쳐다보니 하얀 버짐 같은 것이 온 머리에 피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피부병인가봐”라고 대답했더니, 가뜩이나 낯선 곳에서 온통 검은 사람밖에는 볼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싸여 있던 아이는 깜짝 놀라며 “엄마, 내가 다닐 학교에는 하얀 친구도 있고 노란 친구도 있고 까만 친구도 있다고 했는데, 그 친구들이 피부병이 있으면 나 어떡하지요?”라고 되묻는다.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다르게 생겼고 생각도 다르고 피부 색깔도 다른 거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단다. 백인은 피부가 하얗지만 햇빛에 약해서 빨리 빨개지고 피부도 잘 벗겨지고 빨리 늙어요. 하지만 햇빛이 약한 곳이나 추운 곳에서는 잘 살 수 있지. 흑인은 까맣지만 햇빛에 강하고 피부가 매끄러울뿐더러 잘 늙지도 않고 탱탱한 공처럼 탄력이 있어.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운 곳에서 더 잘 살 수 있지. 또 노란 사람들은 까맣지도 않고 하얗지도 않기 때문에 추운 곳 더운 곳 상관없이 잘 살 수 있어요”라고 했더니 이렇게 반문한다.
“엄마, 그러면 까만 사람도 우리처럼 해수욕장에 갔다 오면 껍데기가 벗겨져요?”
“잘 모르겠다. 나중에 문지기 아저씨에게 물어보자”고 했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물어볼 때 껍데기가 벗겨지면 하얗게 되는지 아니면 그냥 까만지 꼭 물어봐줘.”
남자와 여자 구분하기가 힘들어
3개 언어를 동시에 해야 하는 걱정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물론 어느 것이 스와힐리어인지 영어인지 몰라서, 아이들은 이말 저말 섞어쓰고 있긴 하지만, 문화와 생김이 다르고 다른 말을 쓴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단 한 가지 아이들의 불만은 자기는 열심히 이곳 말을 배우는데 왜 그들은 한국말을 배우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단골 질문은 같은 반에서도 여자와 남자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 나는 걔가 지금까지 남자인 줄 알았는데, 글쎄 오늘에서야 여자인 줄 알았어요” 한다. 어떻게 여자인지 알았느냐는 나의 말에 “오늘 선생님이 ‘여자들 일어나세요’(Girls, stand up!) 했는데, 글쎄 걔가 일어섰다니까요. 이제 걔하고는 몸싸움을 안 해야겠어요.” 남녀 모두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머리에 딱 붙어 있는 탓에, 우리처럼 여자아이면 어김없이 긴 머리를 하는 것만 보아온 아이에게 느낌으로 구분하는 법을 알려주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정신없이 시작한 학교 생활이 어느새 몇 달이 흘렀다. 아이들의 머리는 하얀색 바탕의 스케치북 같은지라, 모든 것을 빨리 받아들였다. 아이들은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있고 생각이 다른 사람이 산다는 것을 어느새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야!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누구에게나 밝고 건강하게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