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나무잎벌레 등 수시로 찾아오는 낯선 벌레들과의 우정
수개미를 볶아 먹는 관습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 문화의 차이일 뿐
▣ 구혜경/ 방송작가·세원, 윤재 엄마 peace@ktrwa.or.kr
우리 집에는 민달팽이 한 마리와 아보카도 나무 한 그루가 우리와 함께 산다. 등에 딱딱한 껍질이 없는 민달팽이는 목욕탕에 살고 있고, 아보카도 나무는 낡은 페인트통 안에 뿌리를 박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또 늘 우리랑 살진 않지만 가끔 놀러오는 도마뱀도 있고, 사마귀나 딱정벌레 그리고 이름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벌레들의 방문도 받는다.
엄마가 되니 벌레도 다르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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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재가 주먹만 한 민달팽이를 내밀었다. 툭 건드리면 몸을 움츠린다. (사진/ 구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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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내가 벌레를 좋아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등 나름대로 곤충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사람으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한때 나도 벌레라면 끔찍하게 싫어하고 무서워하고 징그러워하던 여자였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아이를 키우고 함께 곤충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상하게 그 녀석들이 그다지 징그럽지 않더란 말이다. 나뭇가지를 꿈틀대며 기어가는 애벌레를 보면 ‘참 색깔 묘하네’ ‘희한한 녀석일세’ 하는 생각이 든다. 생김새만으로도 징그럽다고만 느꼈는데, 이젠 그 녀석들도 나와 내 아이와 함께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할 친구란 생각에 미치면 친근하게까지 느껴진다. 아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고 하더니…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아줌마가 되지 않았다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값진 변화다.
사실 알고 보면 이런 작은 동물들이 억울해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 이를테면 거미나 도마뱀은 작은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에 사람에게 해가 될 것이 별로 없다. 다만 사람들이 그 모습이나 이름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두려워할 뿐이다.
아이들은 아침에 이를 닦으며 오늘은 목욕탕 어디쯤에 민달팽이가 기어다니고 있는지 찾아본다. 밤사이에 얼마나 움직였는지, 혹은 지난번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지는 않은지. 그러곤 집안을 돌아다니는 새끼 도마뱀을 잡으려고 뛰어다닌다. 새끼 도마뱀의 꼬리는 약하기 때문에 조심해서 잡아야 꼬리가 잘리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문을 꽁꽁 닫아도 작은 틈새로 쌩하니 도망가버린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 흔히 봤던, 하지만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보기 힘들어진 땅강아지 생각이 난다. 집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땅강아지. 다른 곤충과 달리 만져보면 매우 보드라운 벌레였다. 지금처럼 장난감이 풍족하지 않아 땅에서 노는 것이 일상적이었던 시절, 땅을 파고 들어가는 땅강아지나 땅에서 노는 우리나 피차가 땅강아지였던 셈이다.
땅강아지는 지렁이와 함께 흙을 부드럽게 하는 대표적인 땅갈이 벌레다. 지렁이와 땅강아지가 많으면 자연 그대로의 밭갈이가 될 뿐 아니라 땅이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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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도 모르는 낯선 벌레가 집안을 헤맨다. 나뭇가지를 닮은 벌레는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다. (사진/ 구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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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땅강아지는 볼 수 없지만 낯선 곤충들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하루는 집 난간에 나뭇잎이 떨어져 있어서 “왜 나뭇잎이 여기 있지?” 하고 손으로 집으려다 기겁했다. 나뭇잎과 너무나도 흡사한 벌레 한 마리가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날개가 마치 마른 나뭇잎같이 생겨서 낙엽인지 곤충인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또 비가 온 뒤 아침이면 마당에는 낙엽처럼 발 디딜 곳 없이 수개미들의 날개가 떨어져 있다. 처음엔 뭔지 몰라서 현지인에게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꿈비꿈비’란다. 영어이름은 모르겠고, 꿈비꿈비라고 하는데 비 오는 날에 많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난한 사람들은 비 오는 날에 이 꿈비꿈비를 잡아서 볶아먹는다고 한다. 약간의 기름을 넣고 볶아먹는다고 하는데, 옛날 우리네 가난했던 시절 메뚜기를 구워먹던 것과 비슷하다. 어디나 먹을 것 없는 시절엔 그저 자연의 모든 것이 먹을거리다. 꿈비꿈비는 비타민A가 많다고 한다. 없어서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너희는 뱀도 먹지 않느냐
이곳 사람들은 거리를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치나 치나”라고 장난을 건다. “중국 사람? 중국 사람?” 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묻는 소리가 “중국 사람이냐”이고 다음이 일본 사람, 그리고 마지막이 한국 사람이다. 꿈비꿈비를 가르쳐준 현지인도 우릴 중국인으로 봤는지, 이걸 먹느냐 했더니 너희 중국은 개구리도 잡아먹고, 뱀도 먹지 않느냐고 한다. 하긴 우리나라도 정력에 좋다고 겨울잠 자는 개구리를 잡아서 먹는 사람이 있으니…. 그래서 아주 소수만 그런 착각에 잡아서 먹지, 우리는 이상한 것은 별로 안 먹는다고 변명했다. 모든 것이 문화의 차이이니 우리가 개구리 잡아먹는 것과 이들이 꿈비꿈비를 먹는 것이 별반 다를 것 없다.
꿈비꿈비뿐만 아니라 비가 오니 민달팽이도 여기저기서 보인다. 가만히 두면 몸이 아주 길게 늘어나는데, 10cm를 훌쩍 넘기는 장신이다. 손으로 툭 건드리면 몸을 움츠린다. 그러면 길이는 줄어들고 몸은 통통하게 된다.
아이들 눈에는 등 뒤에 껍데기도 없으면서, 엄청나게 큰 달팽이가 신기하기만 하다. 아이와 어른이 달팽이 한 마리를 두고 시시덕거리고 있으니, 뭐 때문에 저러나 싶어 안면 있는 현지인이 다가온다. 기껏 달팽이 한 마릴 두고 낄낄거리고 있냐며 달팽이를 먹을 거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다음에 비가 오면 꼭 꿈비꿈비를 볶아서 같이 먹자고 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