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아프리카 초원학교 칼럼 목록 > 내용   2006년01월11일 제593호
마사이는 하나다

흙집을 짓고 야생동물과 함께 사는 마사이의 삶을 보며 떠올려본 우리의 삶
흙벽돌 외갓집과 겨울 고구마, 열강이 그어놓은 국경선으로 갈라진 사람들…

▣ 구혜경/ 방송작가·세원, 윤재 엄마 peace@ktrwa.or.kr

우리가 사는 아루샤는 한국식으로 치자면 시골의 작은 읍내다.

거리엔 늘 노천시장이 열리고, 옥수수를 구워 파는 장사치며 아이스크림을 가득 채운 리어카 장수가 돌아다닌다. 현대식 건물이 전혀 없는 야생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려면 40분쯤 나가야 한다. 하지만 아루샤를 벗어나면 펼쳐지는 것은 그저 초원뿐이요, 보이는 것은 소떼를 몰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걸어가는 마사이들과 그들이 사는 마사이촌이 전부다.

마치 우리네 싸리나무 울타리처럼, 울타리를 쳐서 마을을 표시해놓은 것이 마사이촌이다. 소똥과 흙을 이겨 만든 마사이들의 집은 냄새가 좀 나지만,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보면 손바닥 크기의 창문 하나만이 바깥으로 나 있다. 흙집이라 힘이 없어서 창문을 크게 만들지 않는 것 같다.

“당신 부족은 뭐냐”

우리 농촌에 불었던 취락구조 개편의 바람이 일기 전인 1970년대 후반, 내 외갓집이 바로 마사이집처럼 황토흙과 짚을 섞어 만든 흙집이었다. 지금이야 찜질방으로 환영받는 것이 황토집이지만. 그때 짚이 듬성듬성 보이던 흙벽돌의 외갓집 방 한쪽에선 누에가 고치를 만들고 있었고, 겨울밤이면 외할머니가 고구마를 깎아주셨다. 소똥과 흙을 섞어 만든 마사이집을 보니 흙벽돌 외갓집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들도 여기서 자신들 나름의 단란한 생활을 꾸려가고 있으리라.


△ 초원에서 소떼에게 물을 먹이는 마사이 주민들. 사자도 마사이와 마주치면 슬금슬금 뒷걸음을 친다고 한다. (사진/ 구혜경)

수많은 소떼가 움직이니 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멀리서 보면 흙바람이 이는 것 같다. 목동은 트레이드마크인 붉은 천을 두르고, 여러 가지 색깔의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로 치장을 했다. 하지만 맨발에 막대기 하나가 전부다.

언젠가 국내에서 마사이처럼 걸으라는 말이 유행했을 만큼 마사이들의 걸음걸이는 독특하다(가볍다). 그 걸음걸이에 어떤 비결이 숨겨져 있는 듯, 그네들의 곧고 잘 뻗은 다리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나는 한 번도 살찐 마사이를 본 적이 없다. 왜 마사이들은 살도 찌지 않고 날렵하냐고 물으니, 마사이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대부분 나무 열매를 따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리를 해서 먹는 경우에도 기름이나 설탕, 소금 같은 양념을 하지 않고 단지 구워서만 음식을 해먹는다. 또 마사이들이 평소에 많이 걷기 때문에 체질적으로 굳어진 것 같다고 한다.

이곳 탄자니아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있다. 크게 나누면 60개 정도지만 세밀하게 나누면 120여 개나 된다. 친한 부족끼리는 서로의 말을 배우지만, 친하지 않으면 그 부족의 말을 배우지 않는다. 마사이도 마사이만의 언어가 있는데, 깊은 숲 속에 사는 어린 마사이는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를 배우지 않은 듯 간단한 스와힐리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여기서 가끔 듣는 질문이 “당신 부족은 뭐냐”는 것이다. “우리는 부족(tribe)이 없고, 그저 하나”라고 말하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따지고 보면 경상도, 전라도 지역을 나눠서 한때 서로가 소원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부족이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것도 좁은 나라에서.

얼마 전 이곳의 대표적인 국립공원 응고롱고로에 갔을 때다. 분명 야생동물들이 사는 지역인데 많은 마사이들이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살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걷는 마사이, 나무 아래 쉬는 마사이. 심지어 우리가 사파리차를 타고 코끼리를 보고 있는데, 마사이들이 소를 몰고 나아가 코끼리 옆에서 물을 먹이는 것이 아닌가? 방금 전 사자를 본 아이들은 어떻게 야생동물들이 사는 곳에 사람이 같이 살 수 있냐고 의아해했다. “마사이들은 야생동물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살 수 있고, 사람이 위협하지 않으면 동물들도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단다.” 난 그렇게 얘기해줬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사자도 마사이와 마주치면 슬금슬금 뒷걸음을 친다고 한다. 이제는 도시로 나와 살고 있는 마사이도 있지만, ‘오리지널 마사이’는 응고롱고로 자연보호 구역 같은 숲에 사는 마사이가 아닌가 싶다.


△ 시골의 작은 읍내를 연상시키는 아루샤의 노천시장. 온갖 장사치들이 늘어서 손님을 부른다. (사진/ 구혜경)

케냐와 탄자니아 마사이는 다른가

한 마사이에게 “케냐에도 마사이가 있고, 탄자니아에도 마사이가 있는데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다. 마사이의 답은 “같다”는 것이었다. 나라가 다른데 어떻게 같으냐는 내 질문에, 그는 “우리는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가졌다”고 답한다. 그 역시 내게 북한과 남한은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다. 나 역시 “우리는 하나다. 같은 말과 글을 쓰고, 생긴 것도 같다”고 답했다. 답을 하고 보니 마사이의 현실과 우리네 현실이 다르지 않다.

케냐와 탄자니아라는 국경이 나뉘기 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던 마사이들. 하지만 열강(제국주의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그어진 국경선 때문에 같은 부족이지만 다른 나라에 속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적 전통을 지닌 같은 부족, 한 민족이지만 각기 다른 나라에 속해 있다는 현실은 문화적 변화와 차이를 가져왔고, 정체성의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 모습이 우리네와 얼마나 비슷한지…. 우리 역시 열강의 이해관계 속에서 나라가 나뉘었고, 이제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다. 지금 마사이족이 처한 현실과 무엇이 다르랴.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전부인 소떼를 끌고 가는 마사이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아루샤로 향했다.